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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빌 브라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신기하게도 다 비슷한 유년의 기억들
본인의 100자 서평 중 일부분이 이 책에 개재되어 있어 개인적으로 기억이 남는 책이 되었다. 빌 브라이슨이라는 작가를 이 책을 통하여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그는 이미 영국 '타임스'로부터 '가장 재미있게 글을 쓰는 생존 작가'라는 평을 받은이라 한다. 그런 거창한 별명은 이 책을 통하여 여실히 드러난듯 하다. 필자는 1950년대를 살아본 적도 없고 미국 근처에도 못 가본 사람이다. 하지만 빌 브라이슨의 유쾌한 수다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1950년대의 미국을 살다온 느낌이 든다.
이 책은 그 빌 브라이슨이 들려주는 유년의 기억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섯살 때 우연히 지하실에서 '썬더볼트' 무늬가 그려진 낡은 스웨터를 발견하면서 자신이 외계에서 온 초능력을 가진 영웅이라고 믿게 되는 '썬더볼트 키드'로서의 생애가 시작된다. 개성이 뚜렷하고 못말리는(?) 그의 가족들과 지인들이 함께 거쳐 온 1950년대 미국 중산층 사회의 시대상들이 브라이슨의 세심한 관찰과 뛰어난 기억력 그리고 유쾌하고 속사포 같은 입담으로 정말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필자의 유년시절과 20년이 넘게 차이가 나고 장소도 지구의 반 바퀴나 떨어진 그 곳의 일들일텐데 어쩌면 이렇게 비슷할 수 가 있는것인지.. 난 미국애들도 소독차 뒤를 쫒아갔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하여 첨 알게되었다. 그리고 브라이슨의 그 낡은 썬더볼트 스웨터 처럼 내게도 그런 잊지못할 추억속의 물건 하나쯤은 있지 않았던가.
내게있어 서랍 속 고이 간직했던 보물들은 야구에 관한 것들이었다. 수집가들에 의해 고가로 거래된다는 정통 야구카드 따위는 국내에 없을 만큼 짧은 역사를 지녔던 우리나라 프로야구였지만 80년대 초반 당시 아직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브X보콘에서 그 야구 카드를 흉내낸 것을 끼워서 팔았더랬다. 실제로 야구카드를 무작위로 뽑는것과 마찬가지로 그것도 어떤 선수의 사진과 싸인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랜덤이었기에 좋아하는 선수의 카드가 나올때 까지 한 2백개는 사먹었던것 같다. 이미 있는 카드가 나오면 친구들과 교환하기도 하고 아무튼 참 열심히 모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선수들의 타율, 홈런, 방어율 등을 매 시즌마다 꼼꼼히 기록하곤 했었는데 그로인해 부모님에게 '공부를 저렇게 열심히 하지'란 아쉬움을 남기게도 했었다. 빌 브라이슨이 썬더볼트 키드의 삶을 살며 그 시절의 영웅이 되길 꿈꾸었듯이 필자또한 그 기록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지니고 살았던것 같다. 지나고 보면 그땐 왜 그랬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랬기에 조금은 더 즐거웠던 그 시절 이었으니 나또한 후회는 없다.
시종일관 유쾌한 이야기만 계속 되는건 아니다. 핵폭탄 이라든지 전쟁이나 이념이라든지 그런것들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던 장들도 보인다. 그러면서 소개되는 그 시절의 신문 기사나 챕터마다 그 시기를 대표하는 사진들이 많이 보이는데 그러한것들을 새삼 다시 살펴보는 일들도 흥미로웠다. 그 중 민방공 훈련을 하는듯한 한장의 사진이 유독 기억에 오래 남는다. 교실안에서 온몸을 웅크리고 바닥에 엎드린 모습들. 요즘은 그거 하는지 모르겠다. 난 그 사진을 보고서 '어.. 우리도 그랬는데'란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다.
이렇듯 장소가 어디든 시대가 언제든 유년 시절의 기억은 항상 아스라한 그 무엇을 전해주나 보다. 이젠 그 시절 옆집 주영이도 애엄마가 되었을 만큼의 세월이 흘렀지만 잠시나마 내 아름다웠던 유년의 그림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어 좋았던 책으로 기억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