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크래시 1
닐 스티븐슨 지음, 남명성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게 16년전 소설이라고?

 

 

 

우선 가장 놀랄만한 사실 한가지는 이 소설이 1992년에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필자가 기억하는 1992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해에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열렸고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필자는 첫사랑과 헤어졌고 전기 대학에 떨어졌던 고3이었다. 지금과 같은 컴퓨터와는 사뭇 다른 16비트를 넘어서고 윈도우 운영체제 전의 어중간한 컴퓨터가 있었을 것이고 모뎀을 통한 인터넷 조차도 보급되기 전이었다. 당시 최첨단의 전자제품은 바로 '삐삐'였던 걸로 기억이 된다. 그것도 한 학급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뒷자리에 주로 앉아있던 상위 5% 정도만이 허리춤에 차고 다녔던 물건이었다.

 


그 1992년에 이 책의 저자인 닐 스티븐슨은 이미 지금과 같은 사이버 공간인 '메타버스'를 창조해내었고 그 가상현실 속에 우리의 분신인 '아바타'를 선보인 소설을 창작해낸 것이다.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무려 20년 가까이 앞서있었다니. 이젠 워낙에 MMORPG로 불리우는 온라인 게임에 익숙해져 있는 필자이기에 이 정도의 묘사로는 그 표현력의 세련미가 약간은 떨어지듯 보일 수 있겠지만 만일 이 소설을 발간당시인 1992년에 보았더라면 아마도 필자의 전공 자체가 컴퓨터 공학으로 바뀔뻔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매력적이긴 하다.

 


모든 SF대작이 그러하듯 전체적인 줄거리는 의외로 참 간단하다. 주인공인 히로 프로타고니스트는 한국계 혼혈로 뛰어난 해커이자 검객이지만 현실에서는 마피아에게 빚진 돈을 갚기 위해 초고속 피자배달부를 하는 인물이다. 그러던중 그는 가상세계인 '메타버스'에서 스노 크래시라 불리우는 일종의 마약을 접하게 되고 그것이 아바타뿐 아닌 실제 메타버스 접속자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위험성을 알게되고 그 확산을 막기위해 악(?)의 무리와 싸우게 된다. 그 와중에 조력자인 와이티란 소녀 쿠리에를 만나게 되고 (특히 와이티를 묘사한 챕터들이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다.) 알고보니 그 스노 크래시의 배후에는 어마어마한 조직이 있었고 그로인해 판이 커지고 각종 난관을 헤쳐나간다는 스토리이다.

 


이 책을 보면서 새삼 느낀 사실은 필자의 SF적인 감각이 한참이나 뒤떨어진다는 슬픈 사실이었다. 아마도 올해들어 본 책 중에서 가장 오랜시간을 투자해서 봤던 책 같다. 1,2권 한질을 무려 일주일간 보았더랬다. 그래도 책 내용을 따라가기가 벅찬 느낌이었다. 아주 수시로 앞장을 다시 넘겨봐야만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위에서 아주 간략하게 정리한대로 전체적인 큰 줄거리는 저게 다인데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관계들이 왜 그렇게 헷갈리던지. 내용을 쫓아가다가도 디테일한 미래 사회의 묘사에 눈을 돌려 거기에 빠지다 보면 또 앞부분을 홀라당 잊어버리고 그런것의 반복이었던 탓일게다. 개인적으로 그러한 면이 필자에겐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했던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의 장면들은 꽤 흥미진진했다. 와이티의 롤러블레이드를 묘사한 장면이나 선단의 해상전 등등. 영화로 만들었다면 순간순간 탄성을 질렀을법 하다. (실제로 일찌감치 영화화 할 계획이 있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미뤄지는 중이라고 전해진다.) 스노 크래시의 실체가 드러나는 즈음에서 바벨탑이 어쩌니 저쩌니 판이 커질때면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했다. 2005년 타임지가 선정한 현대영미소설 베스트 100선에 꼽혔다는데 필자랑은 코드가 맞지 않았던지 솔직히 큰 '재미'는 못느꼈던듯 하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같은 SF물이라도 쥬라기 공원에서는 재미를 느끼고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감동을 느꼈다면 이건 져지 드래드에서 느낀 복잡함만이 떠오른다고나 할까. 아무쪼록 계획대로 영화화가 된다면 보다 간결하고 깔끔한 전개로 많은 볼거리를 전해주었으면 한다.

 


이 모든 지극히 개인적인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16년이나 앞서 나갔던 이 책의 그 '파격적인 미래 예측'에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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