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빛 손톱
아사노 아쓰코 지음, 김난주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다르지만 깊은 사랑

 

 

 

소녀적 감성이 물씬 풍기는 표지에 분홍빛 속지가 상큼한 예쁜 책이라 생각했다. 10대들의 풋풋한 사랑을 그린 연애소설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긴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곤경에 빠진 자신을 구해준 슈코에게 너무나 강렬하게 첫눈에 빠져버리는 루리의 모습을 보고 감이 딱 잡혔다. 아.. 이거 동성애구나.

 


수년전 국내에서도 유행했던 일본의 팬픽이나 야요이 비스무리한 것일까란 생각에 더 보고 앉아있기가 솔직히 불편했다. 필자는 어느덧 그런 문화에 거부감부터 가지는 기성세대가 되어버렸기에.. 그래도 일말의 궁금증과 꽤 술술 잘 읽힌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보았다.

 


우려했던것 만큼 수위가 높지않다. 차라리 남녀간의 사랑보다 플라토닉하고 건전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주인공인 루리와 동식물들과 대화를 하는 미스테리한 소녀 슈코 선배와의 러브라인이 주된 스토리를 형성하고 있고 그 외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꽃집총각 요스케와 나이차가 많이 나는 그의 연인 이혼녀 신코와의 사랑 이야기, 루리의 언니 키라와 삐그덕 거리는 그녀들의 부모님 이야기로 구성되어져 있다. 그 어느 하나 술술 일이 정상적으로 풀리지는 않는 갑갑한 현실의 연속이었다.

 


10대는 그 이름만으로도 질풍노도의 시기라는데 그 어느 상황하나 만만치 않은 형국이니 이 위태한 10대들을 어찌해야 하나. 하지만 그건 필자의 기우에 불과했던것 같다. 하나하나 자신을 둘러싼 껍질을 벗겨내고 진정 서로에게 진실한 모습으로 다가가는 두 소녀의 모습이 인상깊었다.

 


며칠전 잠이 오질 않아 침대에 누워 TV 리모콘을 이리저리 돌리던중 우연하게 한 케이블 채널에서 국내최초로 레즈비언이 커밍아웃하는 프로를 보았더랬다. 배우 정경순씨가 진행하고 대한민국 성적소수자의 아이콘인 홍석천씨가 패널로 나온 프로그램 이었는데 어떤 처녀가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며 커밍아웃을 하고 그간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힘들었던 시절의 얘기들을 해나가는 그런 프로였다. 누가 팸이고 누가 부치였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팸은 레즈비언 사이에서 여성의 역할, 부치는 남성의 역할을 뜻한다.) 그 출연자는 인상적인 답변을 남겼다. 누가 남자고 누가 여자인지는 중요하지가 않았다. 우린 한 사람으로서의 서로를 사랑했던 것이다라고.

 


난 그랬던적 과연 있기나 했을까.. 모든 조건을 다 무시하고 심지어는 성별까지도 무시하고 단지 그 '사람'이기에 좋아했던 순수한 사랑의 경험 말이다. 그래서인지 딱히 할 일이 없어도 보고싶어 만나자던 루리의 말이, 추억을 모으는 일 따윈 이제 그만하라고 고이주워 수첩에 끼웠던 꽃잎을 날려버리며 대신 자신의 손을 내밀던 슈코의 행동이.. 그리고 손잡기전 땀을 말리는 슈코를 향해 '땀에 젖어있든 말라있든 선배손이니까 난 좋아' 그런 루리의 모습이.. 그런것들이 묵직하게 가슴을 울렸다.

 


동물과 소통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십분발휘하여 수의학과에 진학하는 슈코, 그리고 세상의 헛된 소문에 시달리며 부모의 이혼위기등 힘들었던 시절에 순수한 사랑으로 아픔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승화시킨 루리의 모습은 필자로 하여금 우리 여동생들 행여나 나쁜길로 빠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런 큰오빠의 시선을 거두고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였다.

 

 

우리와 다르지만 더 깊은 그녀들의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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