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 우리 시대와 나눈 삶, 노동, 희망
하종강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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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배부른 고민 중이란 걸 깨우쳐준 책

 

 

 

이따금씩 이럴때가 있다. 삶이란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것이 아닌 그저 하루하루 저절로 '살아지는'것이 아닐까란 옳지못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요즘의 내가 그랬다. 하고싶은 일과 하고있는 일 사이에서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이걸 그만둬 말어 수없이 갈등하며 하얗게 밤을 지새우던 날들의 연속.
엎친데 덮친격으로 항상 완벽하다 자부하던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에 차츰차츰 금이 가고 있음을 느낄때 즈음 건강에도 적신호가 오고 말았다.
두달전 앓았던 장염이 재발하여 출근 한시간만에 가방 싸들고 집으로 돌아와 창자의 밑둥치 까지 빠질만큼 설사를 하고 감히 산모의 고통이 이런걸까란 생각이 들만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복통에 3일동안 그렇게 누워만 있었다. 소리라도 지르면 그 고통이 덜하였기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악악 신음하던 서울땅 원룸에서의 어느날. 아플때 죽이라도 쑤어 줄 마누라 한명없이 스스로가 보아도 참으로 비참하고 처량하기가 짝이 없었기에 난 생각했다. 내 삶은 참 힘들구나라고.

 


이렇게 책상에 앉아 뭔가를 하는게 불가능한건 물론이거니와 누워서 책보기 조차도 아파서 짜증이 나던 그날. 난 이 책을 보았다.
'아직 희망을 버릴때가 아니다'란 제목이 순간 어찌나 크게 보였는지 모른다. 그때 나의 희망은 설사가 멈추는 것이었다. 더럽지만 사실이었다. 그땐 그랬다.
더이상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통일이 아닌 내 생에 몇안되는 그런 순간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하종강씨는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이시며 30년간 노동 상담을 해 온 분이라고 한다. 그런 그가 노동운동 일선에서 같이 부대끼며 만났던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학창시절 고문을 당하고 경찰에 쫒기던 자신의 이야기와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열악하기 그지없는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이 사회를 향해 진지하게 던지는 질문들을 담은 책이다.

 


80년대 많은 부모들이 대학에 입학한 자녀들에게 이런 당부를 하곤 했었다. 절대로 '데모'하는데는 끼지 말고 공부만 하라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소위 지성인이란 청년들이 그 끓어오르는 피를 참기도 힘든 그런 시대상황 이었겠지만 당시에 중학생이던 난 매번 하교길 만원버스 안에서 매케한 최루탄 향기에 덩달아 눈물을 쏟아내며 그들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도 못한채 참으로 부끄럽게도 말이다.

 


그런 어린시절의 기억탓인지 대학에 들어가서도 학내집회에는 제대로 참여해 본 적이 없었다. 학과 부회장을 하면서 총학생회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냈었는데도 같이
술을 마시던 그 형님 동생들이 수배를 당해 도망을 다닐때 난 묵묵히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던걸 보면 어지간히도 학생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찾고자 하는것에
관심이 없긴 없었나 보다. 지금처럼 등록금 천만원 시대였다면 또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놈이 사회에 나와봐야 뭐가 달라졌겠는가. 버스나 지하철등이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당장의 그 불편함에 그들이 '왜' 파업을 하는지 조차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다수의 이기적인 그저 그런 놈들중의 한명에서 못벗어 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책의 첫번째 주인공인 '검은장갑'도 바로 나와 같은 그저 그런 놈이었다.
소위 말하는 '백골단' 사복체포조 출신인 그는 단순히 휴가가는 재미에 시위학생들을 체포하러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런 경찰생활이 좋아보여서 경찰 채용시험을 봐서 경찰에 말뚝을 박기로 결심하고 지내던중 의경출신은 왠만하면 다 붙여준다는 말에 대충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러간 플라스틱 부품공장에서 프레스에 손이 찍혀 손가락 다섯개가 몽땅 잘려나가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노동자들의 시위현장 최전방에서 진두지휘하는 '검은장갑'이 되었다. 투사가 되었다.
얼마나 기가막힌 스토리인가. 난 아직 손가락도 잘리지 않았다. 회사 때려치우고 시위하러 갈 수는 없지만 최소한 나 하나의 불편함에 그들을 욕하는 그런 과오는 두번 다시 저질러서는 안되겠다는 깊은 반성을 하게 만들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손꼽아 기다리는 그 날이 있다.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이딴거 아니다. 크리스마스도 아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더이상 우리들에게
선물을 주시지 않는다. 담배 한갑 조차도 주시질 않는다. 그 날은 바로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다. 직장인이 공식적으로 회사를 안가도 되는날. 학생들은 어김없이 학교를 가고 자영업자들은 어김없이 아침 일찍 가게문을 열어야 하지만 세금 꼬박꼬박 다 내고 국민연금 까지 매달 착실히 삥뜯기는 우리 직장인들만이 회사를 안가도 되는 바로 그 날이다. 근데 이 책을 통하여 새삼 한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바로 '노동자'와 '근로자'의 차이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현행법상 5월 1일의 명칭은 '근로자의 날'이다.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말 잘 듣고 일벌처럼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만 필요했던 박정희 정부의 왜곡된 경제개발 정책이 우리에게 남긴 상처를 우리는 아직도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참여 정부는 그 명칭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에 그릇되게 만연돼 있는 '노동'이란 단어를 불온시하는 잘못된 인식도 바로잡히기 시작할 것이다.

 

(P.245)

 


KTX 여승무원들이 파업을 할 당시 한 대학에서 승무원들이랑 대학생들간의 간담회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 학생이 질문했다. 왜 당신은 다른 일자리를 빨리 알아보지 않고 300일 가까운 시간동안 그러고 있느냐고. 승무원이 대답했다. 물론 그러면 나 혼자는 편안한 삶을 찾아갈수 있지만 그렇게 해버리면 우리와 우리 후배들을 비롯한 이 땅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금과 같은 차별의 악순화에 시달리게 되지 않겠냐고. 그들은 단순히 돈 몇푼을 더 받고자 모두들 그렇게 목숨을 내놓고 행동을 하는게 아니었다. 그것이 지금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보일지라도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양상을 보이더라도 '전태일 정신'을 이어받아 뭔가가 잘못된 우리나라도 독일을 비롯한 선진 외국처럼 합리적이고도 정당한 노사관계를 확립하는데 초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젠 서서히 그런걸 통해 사람들의 의식은 변하고 있다.
저자인 하종강 선생은 거기에서 '희망'을 보았다고 한다. 당장 그저 그런 놈이었던 필자 조차도 이 책을 보고 생각이 약간은 바뀌었으니 말이다.
하선생님의 따끔한 쓴소리 한마디가 귓가에 들려오는듯 하다. 우리 제발 열등감이라도 좀 느끼며 살자고..

 


끝으로 한가지 인상적인 걸 더 꼽아 보자면. 바로 하종강씨의 아내되시는 분이다. 항상 변변한 양복 한벌없이 노동현장을 뛰어다니는 남편탓에 자신도 후줄근하게 다녔다던 특수학교 선생님. 운동권 학생시절 단지 경제적인 이유로 거사를 머뭇거릴때 난 선생님이 될것이고 세월이 흘러도 그 사회에서 교직자로서의 어느정도 위치는 있을테니 우리 가족이 풍족하진 못하겠지만 오손도손 살 수는 있을것이라고 용기를 주었던 여자친구. 모진 고문으로 기절을 하면서까지 남편의 이름을 입밖으로 내지 않았던 사랑의 힘. 메달도 없이 줄뿐인 금목걸이 하나에 한없이 기뻐하던 아내. 가부장적이거나 마초이즘이 어쩌고 저쩌고 할만한 발언이라 조심스러워 지긴하나. 옛말에 이런말이 있지 않았던가. 사나이가 밖에서 큰 뜻을 펼치기 위해서 집안에서 아내가 지켜야할 도리 같은 것. 정말 사려깊고 멋있으며 든든한 인생의 진정한 동반자로서의 '아내'의 모습. 바로 그 모습이었다. 

 


최근 두달동안 서평이라 표현하든 독후감이라 표현하든 필자는 대략 50여편의 글을 썼다. 그 중 이게 제일 길다. 4천자 정도 될것같다. 아직 덜 가라앉은 장염으로
뱃속은 아주 작살이 났지만 아픈 배를 움켜쥐고 한시간 동안 자판을 두드렸다.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나 하나의 불편함에 그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정규직'인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잠시나마 내 삶은 참 힘들다고 생각했던 나의 배부른 고민이 용서가 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30년간 우리 사회의 약자의 편에서 꾸준히 의로운 길을 걸어오신 하종강 선생님과 필자의 여자보는 '눈'을 틔워준 그의 아내 윤명순 여사님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투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가족이 아닌 사람을 위해 묵묵히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길을 선택하는 모습은 그것이 비록 '작은' 희생일지라도 가족을 위한 '큰' 희생 못지않게 감동적이다.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부당한 권력과 자본에 의한 피해가 뻔히 예상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가족이 아닌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개와 구별되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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