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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리 - Naver 개그 웹툰, season 3
조석 글 그림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나를 웃기다니!!
대통령, 과학자, 장군 심지어는 마징가 제트까지.. 어린시절 친구들의 그것과는 달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 얘기해 본 적은 별로 없지만 나의 어린시절 장래희망은 개그맨이었다. 코미디 프로 참 열심히 봤었더랬다. 소풍이나 오락시간, 체육대회 응원은 항상 나의 독무대였다. 중,고등학생때도 웃겼다. 재수할때는 대구시민운동장 1만3천5백명 앞에서도 웃겼던 적이있다. 대학 들어가서도 웃겼다. 그땐 이미 돈 받고 아르바이트로 불려다니며 사회보고 레크레이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군대서도 사회보고 응원했다. 회사 들어가서도 마이크 잡고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나보다 더 웃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날이 갈수록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난 지금과 같은 생업은 유지하되 어떤 단체나 조직에서 좀 웃긴놈으로만 남아있다.
그래도 아직까지 하나님이 키도 작고 운동신경도 제로인 나에게 준 유일한 재능은 바로 '사람들을 웃기는 재주'란 생각은 변함이 없다. 호나우딩요에게 뛰어난 발을 주었다면 나에겐 현란한 혀를 준것이다. 아니구나.. 호나우딩요는 타고난 깜찍함과 모든 개그맨들이 부러워 하는 얼굴까지 갖추었으니 진정 행복한 녀석이구나. 아무튼 그런 '남을 웃기기'에 온통 신경을 집중했던 학창시절이다 보니 매일 아침 일어나면 드는 생각은 오늘은 무슨옷을 입을까, 오늘 숙제는 뭐였더라가 아닌 오늘은 수업시간에 어떤 농담을 해서 큰웃음 줄까 이것이 전부였던것 같다.
우리 주변에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웃음을 주는 친구들이 많다. 무심코 하는 행동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에 자지러지는 친구들. 하지만 난 타고난 그런면은 전혀 없었던 듯 하다. 그래서 항상 연구했다. 이런 맨트를 날렸을때 상대방이 보일 반응의 경우의 수 수십, 수백가지를 미리 생각해보며 각각의 상황에 민첩하게 재치있는 멘트로 되받아치는 시뮬레이션 따위를 항상 머릿속에 그려보곤 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순발력이란 표현을 썼지만 그 이면에는 그런 남다른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어떠한 '웃음의 법칙'을 알게 되었다. 거의 30년 가까이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이라 고유의 내것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고 부족한 부분은 뛰어난 개그맨들의 그것을 차용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고 이주일 선생님이 돌아가셨을때 TV에서는 그의 옛날 코메디를 많이 방영했었다. 그걸보며 필자는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세월이 몇 십년 흐른 옛날 코메디 일진데도.. 몸개그도 그가 하면 예술이라던 심형래씨의 바보연기도 일품이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고 김형곤씨의 시사 코메디도 인상깊었다. 책을 통해 나에게 세상은 너보다 웃긴 사람들이 훨씬 많다란 진리를 일깨워준 전유성씨의 엉뚱함도 사랑했다. 그리고 코너 구성 및 아이디어 창출에 있어서 단연 발군이라 생각했던 최양락씨 (실제로 최양락씨는 아이큐가 150이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항상 같이 연기하는 후배들이 다같이 웃길 수 있게 맨트 하나하나 연기지도 하나하나를 해줘 유난히 후배 개그맨들의 존경을 받는 선배라고 전해진다.) 특히 좋아했다.
하지만 요즘의 스탠딩 개그는 그 옛날 코메디에 한참을 못미친다. 버라이어티 프로의 개인기와 말장난은 비교대상 조차도 안되니 생략한다. 매주 동일한 구성에 몇몇 대사만 바꿔치는 행태의 우려먹기. 요즘 시청자들의 유머감각으로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비슷비슷한 상황들이 종종 연출된다. 그것만큼 사람 김빠지는 일도 없다. 거기엔 옛날 코메디에서 볼 수 있었던 매주 다양한 상황제시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 말로 하는 코메디는 기본에 '연기'로서의 코미디, 그런 여러가지 종합적인 '웃음장치'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었던 이유 때문이었던것 같다.
필자의 관심분야이다 보니 글이 쓸데없이 상당히 길어진다. 하지만 필자가 그 수많은 웹툰들 중 이 만화를 보고 오랜만에 큰웃음 지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예상치 못한 '웃음장치'의 차별성과 훌륭함을 칭찬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 책에는 각각의 만화마다 네티즌들이 달아 놓은 댓글들까지 공개해 두었는데, 업무시간이나 교양수업 시간에 몰래 보다가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낭패였다라는 말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그만큼 요즘 사람들이 '웹툰'에 가지는 관심은 상당한가보다. 하지만 난 그런 웹툰을 꼬박꼬박 챙겨보지도 않았었고 이 책에 소개되는 만화들 중 우연하게 인터넷을 통해 보았던 만화는 순천의 호나우도가 기억에 깊게 남았던 '진정한 축구' 딱 한편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수많은 웹툰이나 신문지면상의 만화들과 하나하나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감히 말하건데 이제껏 본 요즘 웹툰 중에서는 단연 최고로 웃긴다.
항상 웃음에는 마지막 반전이 그 작용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반전마저도 생각보다 약한 것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반전까지 이끌어 나가는 중간 이야기의 힘이다. 그 전개가 흥미로워야 한다. 그런면에서 이 만화가 가진 그 '웃음장치'는 상당히 훌륭한 편이었다. 앞서 언급한 요즘 오락프로의 말장난 개그에 즐거워 하는 성향을 가진 이들이라도 이 만화 컷컷 구석구석에 살짝 숨겨져있는 재미나고 참신한 표현들을 곰곰히 곱씹어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뭐,지구라도 지키러 가는 줄 알았네 (P.17) GM과 상의하세요 (P.67) 김태희는 200배 더 남습니다 (P.77) 오만한 내새끼 (P.81) 수줍은 소년의 고백 (P.101) 이런 종달새 같은 녀석들 (P.116) 등등이 그것이다.
굳이 비교를 하다보니 서두에 예전 코메디에 비해 요즘의 코메디는 재미없다는 식으로 무시하는 모양새가 되었는데, 순전히 그건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본것이고 또한 옛날 개그맨이나 요즘의 개그맨이나 일주일간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기위해 상상도 못할만큼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이유는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 된 요즘 시청자들의 유머감각과 그로인해 생겨나는 '나 이때까지 웃긴것 많이 봤거든? 그러니까 너희들 얼마나 웃기는지 함 보자' 이런 식의 일종의 닫힌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그런 웃긴걸 많이 접해보지 못했던 그 시대에서는 마음을 활짝 열고 마음껏 웃을 준비가 되어있었기에 말이다.
이 만화가 필자에게 의외의 큰 웃음을 주었던 이유도 별다른 정보없이 백지 상태에서 순수하게 받아들였기에 그 웃음의 강도가 컸던것 같다. 암튼 우울하거나 짜증이 날 때, 그리고 마음껏 웃고 싶을때는 이 만화를 강추하는 바이다. 진짜 웃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