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장난 - 십대를 위한 눈높이 문학 8 십대를 위한 눈높이 문학 8
이경화 지음 / 대교출판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전쟁터로 내몰린 우리 아이들

 

 

 

힘을 가진자는 그 힘을 과시하고 유지하기 위해 약자에게 '지독한 장난'을 가한다. 그 권력에 기생하여 동조하는 무리도 생겨난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기도 하고 어제의 우방에게 뒷통수를 맞기도 한다. 작지만 반란과 폭동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하지만 용서와 화해는 찾아보기 힘들다. 상대방의 약점을 하나 잡으면 하이에나 처럼 물고 늘어지기에 바쁜 약육강식의 세계가 계속된다. 무엇을 보고 하는 얘기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철의 장막이 무너지고 냉전이 종식되기전 국제사회의 팽팽한 긴장을 말하는 것인지 2차 세계대전 같은 큰 전장의 모습을 그린 것인지 그렇게들 생각할 법도 하다. 하지만 이건 우리 아이들이 매일같이 다니는 학교에서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왕따'에 관한 이야기다. 필자는 우선 이 왕따란 단어부터가 상당히 마음에 안든다.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가 이젠 보편화되어 국어사전에도 버젓이 오르게 된 유래는 약 10년전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문제로 불거지면서 그동안 집단 따돌림을 의미하던 일본어 '이지메' 대신에 언론에서 애들이 흔히 쓰던말을 차용하면서 지금처럼 이렇게 대중적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러한 현상이 계속적으로 지속되었으니 이 말은 여전히 남아있는 이유일테고
그러한 사실이 상당히 씁쓸하기만 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그 명칭이 '왕따'가 아니었을 뿐이지 그와 유사한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가한 경험이 있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집단이 가하는 폭력은 그것이 폭력이라고 인지를 못하는데 그 위험성이 있다. 남들도 다 하니까 나도 따라 하는거지란 그 심리 말이다. 그일로 우리는 당시 호랑이 선생님으로 명성이 자자하던 담임 선생님에게 혹독한 단체 기합과 허벅지에 피멍이 들만큼 사랑의 매인지 구타인지를 당하며 그 죄값을 치루었다. 대학생이 되어 시내에서 어느덧 처녀티가 나는 그 애를 우연히 만났을때 유난히 반가워하며 손수 근사한 식당으로 데리고가 비싼 음식을 사주며 아무렇지도 않게 초등학교때 일들을 조잘조잘 얘기를 하는데 순간 뜨끔했지만 이렇게 밝게 어른이 된 모습에 한편으로는 다행이다란 생각이 들어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려지고 있는 요즘 아이들의 '왕따'는 우리때의 그거랑은 그 수위라든지 방법면에서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강산이 두 번도 더 바뀔 세월이 흘렀으니 그도 그럴법하다. 아무래도 폭력적인 매체에 쉽게 노출이 되다보니 실로 악질적이고 잔인해 보이기까지 할만큼 변모한듯 하다.

 


이 책에는 한명이 여학생과 세명의 남학생이 주된 스토리 라인을 엮어나가고 있다. 우선 혜진이라는 첫번째 왕따의 피해자인 여학생은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며 믿음도 신실한 그런 모범생이다. 단지 존경하는 인물을 예수님이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게 되었다. 그 배후에는 혜진이에게 질투심을 느껴오던 은영이란 여학생이 있었고 그런 은영이를 좋아하는 그 학교의 소위 말하는 '짱'인 강민이 있었다. 그런 강민의 사주를 받은 준서가 그 총대를 메고 혜진이를 괴롭히는데 앞장선다. 강민이라는 강한 존재를 항상 갈망하며 그 권력에 빌붙고자 하는 인물이 준서이다. 하지만 혜진이의 상황대처법은 꽤나 성숙했었고 그 모든것이 무대위의 조명이 꺼지면 끝이날 한 편의 연극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불의에맞서 나간다.

 


이쯤되면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괴롭히는 맛'이 떨어진다. 그래서 그 강한 집단은 새로운 장난거리를 찾기에 몰두한다. 말이 장난이지 그건 이 책의 제목처럼 '지독한 장난'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 키작은 준서를 지목하게 되었다. 토사구팽 이라고 했던가. 졸지에 강민의 꼬봉역을 자처했던 준서가 이젠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한번씩 제동은 걸지만 방관을 할것인지 동조를 할것인지 개혁을 할것인지 항상 갈등하는 성원이란 학생이 있다. 성원은 강민이란 그런 강한 존재의 약점을 유일하게 알고있는 존재이다. 강민또한 발육이 남다르기 전에 준서와 같은 작은 몸집으로 불량배들의 장난거리였었다는 과거를 목격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침없는 강민의 폭주는 그런 과거에 대한 보상심리로 추정된다.

 


이 세명의 소년은 공통적으로 프로레슬링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레슬링을 보는 방식은 저마다 다 다르다. 불의에 맞서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하며 정정 당당한 승부를 즐기는 케릭터를 동경하며 닮고 싶어하는 것이 준서의 방식이며, 과정이 어떠하든 간에 결과적으로 챔피언만이 살아남는다는 시각으로 강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강민의 방식이고 선과 악을 두루 넘나들지만 근본적으로는 선이 악을 눌러주기를 희망하며 갈등하는 건 성원의 방식이다.

 


이러한 레슬링을 보는 시각이 '왕따'란 현상을 인식하는 방식과 같아진다. 그리고 이야기는 혜진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녀가 그랬듯이 당당히 맞서는 길을 선택하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듯 작지만 '꿈틀'하며 행동을 취하는 준서로 거듭나며 끝을맺는다. 수많은 숙제를 남기고서 말이다.

 


저렇게 아이들은 처절하게 싸우고 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현실도 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사회와 학교와 어른들은 무얼하고 있었나. 책 속에서도 부모님이나 학교나 '칼'이라 불리우던 선생님조차 근본적인 피해 방지 대책은 찾지 못한채 발등에 놓인 불을 끄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이제 심각성을 주지했으면 사회와 어른들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문제인것 같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우리 아이들을 구해내야 할것이다.

 


책을 보는 내내 명치 쪽이 꽉 막힌 답답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건 오늘 하루 두끼를 연달아 중국음식으로 떼워서 그랬던 이유만은 아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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