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삼국지 1 - 한중일 삼국의 바둑 전쟁사 바둑 삼국지 1
김종서 지음, 김선희 그림, 박기홍 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는 기쁨

 

 


국내 모 인터넷 사이트에서 절찬리 연재중인 만화를 엮은 책이다. 원작자는 '전신 조훈현'을 썼던 김종서씨이다. 그걸 부부인 박기홍씨가 글을 쓰고 김선희씨가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 그 부부들 처럼 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드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하니 어렵지 않을까란선입견은 안가져도 될 듯 하다. 실제로 바둑을 '둘' 줄 아는 정도의 실력에만 머무르는 필자도 꽤 흥미롭게 보았다.

 


이 책을 접하기전 난 우리나라가 원래부터 바둑에 관한한 세계최강인걸로 알고 있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물론 지금은 세계최강이라 자부한다 그리고 인터넷 바둑또한 우리나라가 최초였다고 할 만큼 그런 국민적 관심도 중국이나 일본에 뒤쳐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주위에도 바둑을 좋아하는 어르신들이나 형님들이 꽤 많은 편이다.

 

 

그 중 한분이 아버님의 친구분이시자 본인 친구의 아버님이시기도 한 '범이 아부지'이신데. 인터넷으로도 저멀리 떨어져 있는 미지의 상대방과 대국을 겨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그분께서는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던 도중 상대방이 재미없다고 접속을 종료해버린 사실도 모르고 이 친구가 왜 이렇게 안오나 그러면서 컴퓨터앞에서 그렇게 앉아 밤을 지새우셨다는 웃지 못할 얘기를 전해들었던 기억도 난다.

 


쿤켄. 즉 조훈현의 일본 시절 스승이었던 세고에 겐사쿠 9단이 조국사가 군입대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가자 자결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대만의 갑부 잉창치가 만든 잉창치배 결승전에서 조훈현과 녜웨이핑이 만나게 된다. 감기몸살로 컨디션이 최저인 상태에서도 녜웨이핑을 잡아내며 조훈현의 유년시절에 관한 이야기로 시점은 옮겨간다. 정식적인 바둑 수업을 받은적은 없었지만 어깨너머로 배우며 신문에 나오는 조남철 선생의 일년치 기보를 줄줄이 암기하고 있던 천재소년.

 


고향인 목포에서 더이상 어린 조훈현을 당해낼 사람이 없자 훈현의 아버지는 서울로 올라가 가세가 기울어도 이 천재 만큼은 반드시 정식적인 바둑공부를 가르치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조남철 선생과의 만남. 이길 수 없는것이 당연하던 그 첫번째 지도바둑의 순간에서 패하게 된 꼬마 조훈현은 어른처럼 서러워 대성통곡했다고 전해진다. 승리를 향한 그 무서운 집념. 될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달랐나 보다. 그리고 조훈현은 조남철 선생의 수제자로 정식적인 바둑에 입문하게 된다. 바둑 삼국지 1부는 이 과정까지를 그려내고 있다.

 


중간 중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조치훈 등등이 잠깐씩 등장하여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 관한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으며 책 말미에는 잉창치배 결승 4국의 기보와 (난 기보란것을 제대로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금과 같은 한,중,일 바둑 삼국지의 구도를 이루게 된 바둑사를 비하인드 스토리로 싣고 있다. 개인적으로 만화보다 이 비하인드 스토리가 제일 재미있었던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인 조국수의 등장전 세계 바둑계는 중국과 일본이 양분하고 있었다. 바둑을 세계에 알렸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선진바둑과 바둑의 종주국이란 자존심으로 똘똘뭉친 중국의 바둑이 1985년 중일 슈퍼대항전에서 맞뭍어 그 자웅을 겨루게 되었다. 중국이 1대 0으로 뒤지고 있던 2차전에서 예상을 깨고 중국의 장주주가 내리 다섯명을 이겨버린다. 그 후 등장한 일본의 고바야시 고이치는 보란듯이 장주주를 비롯한 내리 여섯명을 이겨버린다. 하지만 마지막 중국의 주장이던 녜웨이핑은 중국의 우승을 가져왔고 고바야시, 가토, 후지사와 3명은 그간 세계 최강이라 자부했던 일본 바둑의 책임을 지고 삭발식을 거행하였다. 그 후 3년간 중국의 주장으로서 슈퍼대항전을 휩쓸었던 그 녜웨이핑과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자존심 조훈현 국수가 잉창치배 결승전에서 만났다. 대만의 갑부인 잉차치가 만든 그 대회는 우승상금만 89년 당시 2억 7천만원이었다. 당시 분당 1차 신도시의 32평 분양가가 5천만원이었다고 하니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대단한 금액이었는지 상상이 가리라 본다.

 


그 당시에는 중국이나 일본이나 바둑에 관한 국가적 자존심이 상당하였는데 바로 그 이유는 바둑을 잘 두는것이야말로 간접적으로 그 나라 국민들의 머리가 좋다는증거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제 3국들을 무시하는 풍토였는데 당시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잉창치배 제3국의 시드권은 단 한장이었고 그걸 우리나라의 조훈현 국수가 차지한 것이었다. 대회 초대장도 조국수와 단장의 것 딸랑 두장만 보내왔을 정도로 무시했다고 전해지는 그 상황에서 자랑스럽게도 우리의 조훈현 국수가 세계최강이라던 중국의 녜웨이핑을 잡았으니 그 사건은 당시 2002년 월드컵 4강에 버금가는 대단한 일이었던 것이었다. 필자가 중3때의 일이니 뉴스를 통해서 충분히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을 법도 한데 전혀 기억이 없는걸 보니 바둑에 무관심하긴 무관심 했었다보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지금과 같은 한,중,일의 3국 구도가 형성되게 되었다.

 


다분히 정적인 성향의 필자가 독서외의 취미를 한가지 더 가져본다면 가장 적합한 것이 바로 바둑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머리가 안 따라줘서매번 제대로 배우기를 망설이곤 했었는데 위와 같은 바둑사를 접하고 나니 새삼 바둑에 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뭐랄까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는 기쁨을 누렸다고나 할까. 판위의 펼쳐진 그림만 보더라도 장기처럼 화려하지 않고 체스처럼 예쁘지도 않은 바둑이지만 그 속에 녹아있는 치밀한 전략과 승부의 숨막히는 순간들. 이정도면 꽤 멋진 취미가 아니겠는가 싶었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을 바둑판에 많이 비유를 하곤 한다. 바둑에도 '일수불퇴'가 있듯이 우리네 인생사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바둑을 두듯 인생의 승부처 곳곳에서 장고를 거듭하여 신중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법을 이 바둑을 통해 배워봤으면 한다. 그리고 끝으로 대국의 오만과 기세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멋지게 한방 먹이고 민족적 기상을 드높였던 조훈현 국수를 비롯한 대한민국 바둑계의 영웅들에게도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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