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 젊은 의사가 고백하는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박정아 옮김 / 알마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00년만에 들려오는 자성의 목소리

 

 

 

가장 최근에 소개팅을 했던 아가씨의 직업은 간호사였다. 흔히 소개팅이 가지는 함정인 랜덤이 아닌 본인이 졸라서 성사시켰던 일인지라 충분히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구석이 많던 분이라 잘되었을법도 한데 결과는 그와 정반대였다. 그 불안한 전주곡은  처음건넨 하는일에 관한 인삿말에서 시작이 되었다.

 


둘이합쳐 나이가 70이 가까워지면 대화의 주제는 당연히 연예인에 관한 가쉽거리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우린 서로의 하는일을 주제로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다. 간호사나 의사와 같은 의료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그 직업이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직업 그 이상의 숭고한 이유와 생명을 다룬다는 사명감 및 희생정신과 봉사의식이 있어야만 가능한것 같다고.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어렵고도 힘든 훌륭하신 일을 하고계시네요라고.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먹고사는건 다 똑같은 그냥 월급쟁이 같은거예요. 앞으로 양호교사로서의 안정되고 편안한 길도 가능하기에 지금 하고있는 겁니다라고. 솔직히 현실적으로 틀린말도 아니었지만 주변에 워낙에 훌륭하신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을 많이 보고 자라왔던 본인의 경험과 가치관에 비추어 보면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친구는 별로 생각이 없는 아이로구나란 느낌이 들기에 충분하였고 그로인해 그 이후의 시간들은 다소 시들해졌던것 같다.

 


그렇다면 너는 무엇이 그리 잘나고 고상하길래 지금 니가 하고있는 일로 인류와 국가에 봉사하고 헌신하고 있냐 반문한다면 난 할말이 딱히 없을지도 모르는 그냥 남들과 같은 월급쟁이일 뿐이고 물론 위의 사례가 극히 일부분임을 강조하듯이.
이 책의 저자또한 앞으로 전개될 이 이야기들이 극히 일부분의 이야기라는것을 강조하며 시작하고 있다. 고귀한 생명을 다룸에 있어 충분히 헌신적이고 의료인으로서의 직업적 소명의식이 투철하신 분들이 이 책의 사례로 등장하는 불량 의료인들 보다는 훨씬 더 많다는게 사실이라고 말이다.

 


보고 있으면 화딱지 나는 사례가 참 많다. 가장 많이 접하는 사례로 환자를 단순히 의학적인 관점에서만 보고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듣는 환자의 입장에서는 인간적인 모멸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그러한 것들. 본인 또한 초등학생 시절 치과치료를받으러 갔다가 스케일링을 해보자고 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케일링을 했던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내 입안을 들여다보던 그 치과의사(이 분은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우리 가족과도 친한 아저씨였다.)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인 '더러운 녀석'이란 말에 무척 상처를 받았던 적이있다. 그 후 성인이 되어 건강검진 같은걸 받으며 스케일링을 정기적으로 하는게 망설여졌을 만큼 그 기억은 끔찍했다.

 


그 외 소위말해 '환자 길들이기'의 의미로 행해지는 행동들 (병실이 없다거나 회진시 무시를 하고 지나간다거나 등등) 및 이 책 저자의 국가인 독일에서 나눠진 사보험,공보험과 같은 보험에 의한 의료혜택 차별, 수술 시간을 단축시키는 경쟁을 해서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말도 안되는 사건들, 출세를 위해 수술을 거부하고 책상앞에서 연구에만 매진하는 의료과장이 저지르는 실수, 자신의 논문을 위해 특별한 사례를 찾고자 수술을 지연시켰던 사례 등등 참으로 천인공노할 이야기들이 꽤나 많이 소개되고 있다.

 


물론 현 시대는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의사들이 있고 언제라도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가 있다. 말그대로 정당한 물건값을 지불하고 편의점에서 떳떳하게 물건을 사듯이 병원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이 받을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건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나온 시대처럼 그런 의사 '선생님'들을 한없이 존경했던 대상으로서의 존재감이 약간은 없어진것 같은 기분이 들곤하지만. 과연 우리가 또는 의료인들 스스로가 '의료행위'를 한다는 사실을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서만 생각하는것이 옳을것인가란 생각은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개인적인 결론은 최소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이들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의료보험제도를 가장 먼저 만들었던 독일에서 이러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딱 100년이 걸렸다고 한다. 역자의 말처럼 이제 우리 나라에서도 이러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길 기대하는 바램이다.

 

 

누차 강조하지만 이건 일부분의 이야기이고 그로인해 지금도 열악한 환경에서 아픈이들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수많은 의료인들과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우던 장기려 박사님, 그리고 지금 당장 성함은 기억나지 않지만 살아계셨다면 노벨평화상이 유력했다던 아프리카에서 병자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하며 오지에서 죽어가신 그 의사 선생님 등 전체를 호도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라며..

 

 

특히 지금 의료인으로서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해드리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