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엮음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느낌으로 읽는 책

 

 


이언 매큐언.

 

서머싯 몸 상, 부커 상, 휘트브레드 상, 영미 작가협회 상 등 영미 문학의 주요 문학상을 모두 석권한 작가. 최근에 개봉한 '어톤먼트'란 영화의 원작자.
그 명성은 익히 들었으나 그의 책을 본 것은 아마도 처음인것 같다. 근데 처음부터 너무 강한걸 만나버렸다. 난 단지 '첫사랑' 그 한 마디를 보고 선택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황순원의 '소나기' 처럼 그런 순수한 느낌부터 드는 단어 '첫사랑'

만일 단어에도 맛이란 것이 있다면 첫사랑이란 단어의 맛은 갓 찌어낸 백설기 처럼 한없이 깨끗하고 고소하고 달콤한 그것일꺼라고 난 생각했었다.

 


그 '강함'은 여덟편의 단편 중 제일 먼저 실린 '입체기하학'에서 부터 바로 시작되었다. 할아버지의 유산이 경매를 통해 산 포르말린 병에 담긴 어느 남자의 성기라니..
그걸 가보랍시고 신주단지 모시듯 떠받들고 매일 밤마다 할아버지의 일기만을 연구하는 그가 싫어서 아내는 그 유산을 깨어버린다. 그걸 뒷처리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생생하다.

 

책에도 향기가 있다면 그 포르말린 냄새가 풍겨 나오는듯한 바로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책에도 촉감이 있다면 그 거시기의 물컹함이 책장을 쥔 내 두손에 느껴졌던 바로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내를 사라지게 만든다. 참으로 황당하게도 말이다. 이 단편소설은 영국 BBC 방송국에서 드라마로 제작하려 했다가 제작진이 무더기로 해고되는 사태를 불러 일으켰다고 전해진다.

 


두번째 작품인 '가정 처방'은 버스안에서 보았다. 나도 모르게 옆자리 아가씨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저 아저씨는 뭐 저런걸 버젓하게 펴놓고 보고있을까란 생각을 할까봐.
왜냐고? 총각딱지를 떼기 위해 엄마 아빠 놀이를 하자고 자기 여동생을 꼬드겨 강간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 충격이란..!! 그제서야 난 생각했다. 이 책은 이성적으로 지극히 상식을 가진 시선으로 내용을 따라 읽으면 안 되는 거구나라고. 잠시 도덕적 잣대는 놓아두고 그 느낌을 따라가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말못하고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는 그 내재적 욕망들의 표현이라고..

 


그 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들도 어느 하나 평범한 것이 없다. 나체 쇼 리허설 도중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동네 똥개마냥 실제로 정사를 벌이는 남녀, 벽장속에서 마스터베이션만 하는 청년 등등..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작품은 '나비'이다. 나비를 찾아 평화롭게 소녀와 숲 길을 걸을때면 마치 한 폭의 수채화 내지는 수묵화가 연상되었다. 근데 그렇게 끝나면 이언 매큐언이 아닌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끝에가서는 바지 지퍼를 내린다. 그리고 어린 소녀에게 수음을 강요한다.
수채화가 바로 춘화도로 돌변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유아살해에 까지 이르다니.. 심하게 가치관이 혼란 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필자가 심하게 오해를 했던 그 아름다운 제목. 표제작인 '첫사랑, 마지막 의식'에서는 연인의 침실뒤에서 정체모를 소리를 내던 존재가 큰 쥐로 밝혀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 쥐를 잡아 죽인다. 벌어진 상처 사이로 새끼 쥐의 모습이 보인다. 새끼를 잉태하고 있던 엄마쥐였다. 순간 난 흠칫했다. 시셀이 저 큰쥐를 먹기라도 해버리는거 아냐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좀이 번져 악취를 풍기던 시셀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근데 그게 첫사랑이랑은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쥐를 잡자 쥐를 잡자 찍찍찍이나 내가 아주 어렸을적인 70년대에 매월 25일은
'쥐잡는 날'이라는 표어가 생각이 날 뿐..

 


여러모로 충격적이고 독특한 소설들이었다. 앞서 필자는 유난히 고상을 떨었지만 (아니 그게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겠지만) 우리 인간속에 내재된 그런 욕망들을 솔직하고 적나라 하게 풀어내는 솜씨는 단연 일품이다.

 

구식 안경을 걸친 이언 매큐언의 지적인 용모를 빗대 '학교 선생처럼 생긴 사람이 글은 악마처럼 쓴다'라고했던 '옵서버'지의 표현이 가장 절묘하게 들어 맞는다. 그리고 그의 소설 전반에 흐르는 몽환적인 느낌과 함께 그 거부하고 싶으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묘한 매력과 여운은 꽤나 오래갈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수많은 이언 매큐언의 팬들에게는 약간 미안하지만 별점은 일부러 하나를 뺐다. 이 책의 제목에 살짝 배신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첫사랑' 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은 황순원 선생님의 '소나기'가 한 수 위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니 양해해 주시길 바라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