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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가출 중
미츠바 쇼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상처를 감싸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붕대
이 책의 원제목은 '염세 플레이버'라고 한다. 염세의 향기쯤으로 직역될 수 있겠다. 그것이 무언지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이 세상이 지긋지긋해질 정도로 상처를 저마다의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이들이 이 평범치 않은 가족의 구성원들이다.
치매기가 있는 생선매니아 73세의 할아버지, 매일밤 술에 취해 잠이드는 42세의 엄마, 직장을 그만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의 노릇을 해야하는 27세의 큰아들,
비행과 탈선에 이르는 길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17세의 딸, 달리기만이 전부인 14세의 막내 아들이 바로 그들이다.
보다시피 이 가족에는 가장인 '아빠'가 없다. 가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런 가장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고 나서야 이 삐긋한 가족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흩어져있던 퍼즐조각이 제자리를 찾아가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듯이.
원래 아버지란 바람같은 사람이었다. 한때 세상을 등지고 살 뻔 했던 엄마를 사랑했으니 아버지에게도 사람으로서의 정은 있었나본데.. 결국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 다른 우리 3남매를 가족이란 이름으로 엮이게끔 한 걸 보면 그렇게 완벽했던 존재로서의 아버지 그 모습과는 거리가 상당히 있어보이는건 사실이다.
아버지의 부재와는 별반 상관없이 사춘기인 이 집안의 막내아들인 나는 지금 내 생에 큰 갈림길에 놓여있다. 학교를 계속 다닐것인가 말것인가로 육상을 계속 할것인가 말것인가로. 코치가 말하는 부스터 따위는 느껴보지 못했지만 언제나 나보다 한수 아래로 여겨지던 단치 녀석이 육상을 그만둔다는 내말에 기고만장해 하는 꼴이 보기가 싫어 당분간 육상은 계속 해야겠다. 독립을 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돈도 벌고 운동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다보니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게됬다.
여전히 내겐 무관심한 형제들과 성가시게 구는 엄마,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할아버지 뿐인 집이지만. 난 '시끄러워' 한마디만 하면 된다.
주위의 예상과는 다르게 공부도 꽤 하는 나는 이 집안의 딸이다. 그냥 남들의 눈에 띄지 않을려고 막나가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집에는 일찍 들어가기가 싫다.
그래서 밤일을 한다. 밤일이라고 말하니 뭐 요상한것이 아니냐고? 훗. 날 뭘로보고 그런소리를 하는건데? 그냥 평범한 술집일 뿐이다. 그곳에서 손님들에게 술과 안주를 건네주는것이 전부다. 그런데 이제 그 아르바이트 조차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아버지란 사람이 가출이란걸 하고 나서 부터다. 사람들이 날 불쌍하게 본다.
돈도 걷어다 주고, 공짜돈이 싫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참 기가 막힌다. 집에는 별로 일찍 들어가고 싶지는 않은데. 딱히 할일이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던중 애완동물
가게에서 별로 상태가 안좋은 고양이를 보게되었다. 내가 알게된 나의 '몸값'인 5만엔을 지불하고 그 녀석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일전에 집을 나간 '부장'이라 이름붙인 고양이가 생각이나 '부장대리'라고 이름지었다. 그리고는 가족들에게 그 고양이를 키울꺼라고 선언하였다. 이젠 집에 일찍와도 할 일이 생긴것이다.
난 이 집안의 장남이다. 아마도 아버지란 사람의 가출로 인해 가장 크게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닌가 싶다. 얼마전 직장을 그만둔 사실을 밝힐수도 없다.
아직 학생인 두 동생은 그렇다쳐도 나랑 열다섯살 차이밖에 안나는 새엄마란 사람조차도 치매에 걸리신 할아버지 곁에 붙어있어야할 상황이니 이 집안에서 돈을 벌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세상은 생각만큼 녹록치가 않다. 너무 많이 배운것이 일을 하기에 불리해지는 세상인것이다. 그래도 알량한 자존심에 생활비는 내야
하고 난 오늘도 양복을 입고 공사장으로 출근을 한다. 그곳에서 만난 일본을 좋아한다던 인도네시아인 사부로. 그 사부로에게 이별선물로 라우더와 탑차의 운전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후 뉴스를 통해 들었던 어느 절도 사건에 난 뒷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과 더불어 통쾌하고 묘한 기분을 느꼈다. 여전히 난 고민이 많지만
그간 무관심했던 동생들의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라던지 친엄마를 통해 얼마간의 도움을 받은 일이라던지 뭔가는 좀 바뀌어가는 느낌이 들곤 한다.
여기까지가 각각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한 이 특이한 3남매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다. 그외 엄마와 할아버지의 독백은 아버지에 관한 기억들과
삐걱거리기는 하지만 이 집안과 가족의 근간을 이룬 할아버지대의 이야기들이다. 장남인 류가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듯 이 가족의 구성원들은 정도의 차이와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가장'의 부재로 인해 역설적으로 자기 '가족'에 관한 재고를 하고 나름대로의 재구성을 해가는 나름대로 흐뭇한 모습을 보인다.
막내 스토의 역전마라톤 대회날 이 가족은 한자리에 다 모이게 된다. 얼마나 대단한 성적을 거둘지 그러한것은 이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김영하씨의 단편소설 '오빠가 돌아왔다'의 그 허접한 가족의 소풍날처럼. 이 세상 영원한 내 편인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함께했다는 사실이 중요할뿐.
카나가 무네유키의 낡은 부츠를 신고다니듯. 기억도 안나지만 할아버지가 손자의 응원 도시락을 싸두라고 고함을 지르듯. 시부모와의 추억이 서려있는 화단을 바라보듯. 자존심을 접어두고 생활비를 건네듯 그렇게 이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챙겨가고 있었다.
여전히 완벽하고 완전한건 없어 보이지만 저마다의 상처를 감싸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붕대로 치유하며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