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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고로야, 고마워
오타니 준코 지음, 오타니 에이지 사진, 양윤옥 옮김 / 작은씨앗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당신은 동물을 가족이라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동물친구의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난 또 가슴이 아파져야 한다. 왠만한 슬픈영화를 보고도 항상 무덤덤하며 눈물이랑은 전혀 어울릴것 같지않는 경상도 출신의 대한민국 30대 중반 남자인 필자조차도 눈시울을 붉혔던 영화가 있다. 바로 근년에 보았던 '우리개 이야기'란 일본 영화였다. 그때 썼던 영화감상문이랑 중복이 될 듯하니 최대한 짧게 우리개 '보리' 이야기를 언급하고 시작해야겠다.
난 우리개 '보리'를 만나기전 까진 강아지를 비롯한 동물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싫어했다고 해야 바른 표현일것 같다. 근데 참 이상한것이 막상 갓 태어난 그 강아지를 처음 봤던날 그 새하얀 솜뭉치같은 모습을 보고 십수년간
이어져온 동물에 대한 거부감이 일순간에 사라지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되었다. 그리고 보리와의 수많은 추억을 만들어가며 몇년간을 보내게 되었다.
우리 형제들은 다들 공부 욕심이 많아서 남들보다 사회생활을 늦게 시작한 편이었고 그러다보니 결혼도 늦어지고 출산도 다른집 형제들 보다는 한참이나 늦어지게 되었다. 본인의 누나는 서른아홉이 다 되어갈 무렵에 엄마가 되었고 난 언제 아빠가 될 지 아직도 기약이 없다. 그런 연유로 손자를 늦게 보게되신 필자의 부모님께 우리집 '보리'는 단순한 애완동물 이상의 '손자'의 역할을 톡톡히 했던듯하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 집안의 막둥이 같았던 보리가 여동생의 출산을 계기로 개털은 신생아에게 해로울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머나먼 곳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그 소식을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을때 들었던지라 그 아쉬움이 남달랐던 기억이 난다. 지난 명절때 고향인 대구에 가서 봤던것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항상 다른 가족들처럼 별다른 애정표현도 못해주고 무뚝뚝하게만 대했었는데
그래도 내가 좋다고 나를 제일 따르던 녀석이었는데. 그게 못내 아쉬웠었다. 마치 부모님을 임종을 못 지켜봐 평생의 한이 되었다던 효자들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남들에겐 허접한 똥개의 개털이었지만 내겐 실크보다도 더 부드러웠고 남들에겐
참기힘든 개비린내였지만 내겐 세상 무슨 향수보다 향긋했던 그 개비린내가 못내 그리워져 난 그렇게 가슴이 아팠었다.
이 책의 사진을 찍은 오타니 에이지씨는 사람들이 주는 먹이로 인해 기형으로 태어난 원숭이들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그를 주제로한 사진들을 찍으러 다니던 중 이 책의 주인공인 다이고로를 만나게 된다. 앞다리는 반쯤만 자라있고 뒷다리는
그 흔적조차 없는 기형 원숭이였다. 2~3일정도 못살거란 얘기에도 에이지는 그 원숭이를 집에서 기르려고 데려온다. 그건 사람들이 준 음식으로 기형으로 태어나게 된 원숭이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양심 때문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기형 원숭이와의 만남이 자신의 가족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고 얼마나 많은 깨우침을 주게 될거란걸.
예상과는 달리 다이고로를 처음으로 대면한 아이들의 반응은 여느 다른 애완동물을 대하는 반응과 똑같은 '이야 귀엽다'뿐이었다.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어린이들의 시선에는 남들과 다른 모습을 한 '장애'가 아무런 분제도 되질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5개월된 아들을 유산했던 이 책의 저자인 아내 준코씨는 그 날 이후로 눈물의 연속이었다. 저런 모습으로 태어나고서도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다이고로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자신의 젖을 물리고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인간의
젖을 물고있는 새끼 원숭이의 모습.. 그 사진을 보면서 필자는 한참이나 가슴이 먹먹하였다.
질투심이 많은 원숭이의 특성상 가족들이랑 같이 생활하기엔 어려움이 많이 따랐다. 엄마의 관심을 덜 받게된 막내 마호는 눈물을 흘리며 혼자 울다 지쳐 잠든적이 많았다고 한다. 그것이 과연 바른길일까 수없이 고민했지만 준코는 계속 다이고로를 자식처럼 기를 결심을 굳혔다. 그 예상이 적중하여 돌이켜보면 다이고로와 함께한 2년 4개월의 시간은 준코네 아이들에게 세상 그 무엇보다 많은 인생의 가르침을 주었던 값진 시간들이었다.
같이 데리고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의 편견으로 부터 준코의 아이들은 장애란 약간 불편할뿐이지 슬픈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일찌감치 깨우쳤으며 또한 다이고로가 가족들에게 스스로 다가오기 위해 앞발꿈치가 짓무르고 결국엔 데굴데굴 구르기를 성공시켰던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고난을 스스로 극복하는 법과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니 그건 수백권의 책 수백만원의 과외도 가르쳐주지 못하는 그야말로 최고의 교육이 아니었겠는가.
그런 준코의 가족들이 다이고로와 함께 가족으로 생활하면서 배우게 된 인생의 다양한 교훈들 그리고 사랑과 추억..
행복했던 순간들의 다이고로와 함께 찍은 아름다운 사진들로 이 책은 구성되어져 있다.
그리고 인간들에게 엄중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 그 원숭이들을 기형으로 태어나게 만든건 우리 인간들 탓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그런 해로운 간식거리들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미칠 영향을 생각하니 끔찍한 생각마저 들곤 한다.
이젠 다이고로는 이 세상에 없다. 우리집 똥개 보리도 이 세상에 없을듯 하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동물을 가족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 필자와 같은 사람이라면 그 동물친구들의 존재를 아마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건전지가 다 되면 멈춰버리는 장난감 로봇이 아니기에..
그들은 우리와 같이 살아 숨쉬는 작은 심장을 가진 소중한 우리들의 친구였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