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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타 행진곡 - 제86회 나오키 상 수상작
쓰카 고헤이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풍자가 맞는거지?
처음으로 접해 본 쓰카 고헤이의 소설이다. 제일교포로는(본명 김봉웅) 최초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라 한다.
제일교포라고는 하나 작품 전반에서 느껴지는 것들은 지극히 '일본적'이란것이 개인적인 느낌이었다.
필자에게 있어 개인적으로 '일본적'이란것의 감상은 명확히 구분되는 두가지의 상반된 이미지였다.
특히 일본영화를 비롯한 일련의 소품들에 대해선 무척이나 열광했었더랬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러브 레터', '지금 만나러 갑니다',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냉정과 열정사이' 등등의 영화는 얼마나 재미있게 봤는지 모른다. 어쩌면 저렇게 인간의 섬세한 감성을 잘 그려냈을까 하고 연신 감탄을 했던 영화들이다.
마치 우리가 자라온 80년대 일제 가전제품에 열광하는 한편 그걸 부러워하면서도 배아파하고 얄밉게 보이던 그런 기억처럼.
또 그로 인하여 저들을 꼭 따라잡고 말리라 우리 형님 세대들이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게끔 자극을 주었던 것처럼.
그런 기분이 새삼 들게끔 만든 '대작' 아닌 '소품'으로서 가장 관객의 기대에 부합했던 그런 예쁜 영화들이었다.
하지만 문학에 있어서는. 특히 요즘 소설에 대해서는 우후죽순 처럼 쏟아져 나오는 얄팍한 양장의 일본소설들에 비해 항상 우리 문단을 이끌어 나아갈 대한민국 젊은작가들의 소설에 손을 들어줬던 필자였던지라 요즘 일본 소설들중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기가 꽤나 힘들었었다. 물론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나 판단기준에 근거한 것이다.
왠지 가벼워 보이고 장난스럽고 웃겨도 좀 지저분하게 웃긴다고나 할까. 그런 일본식 스타일이 싫었던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긴짱의 존재는 보기에 무척이나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야말로 제멋대로인 영화배우 긴짱. 그리고 그를 한없이 존경하고 사랑하며 따르는 엑스트라 야스. 긴짱의 아이를 임신했으나 버림을 받게된 고나쓰. 이들이 벌이는 좌충우돌 영화판 스토리이다.
처음으로 주연이 된 영화배우 긴짱. 더군다나 라이벌인 다치바나와 동시 출연이라 자신에게 포커스가 맞춰지게끔 하기위한 긴짱의 피나는 노력. 그때문에 덩달아 고생하고 학대당하는 야스를 비롯한 엑스트라들. 그래도 야스는 긴짱이 좋다.
긴짱이야말로 얼마나 카리스마 넘치고 멋진 사나이의 모습인가! 난 긴짱과 같이 일하는것이 행복하다. 긴짱을 위해서라면 대역없이 진검을 맞는 연기도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로인해 어깨에 상처도 있지만 내겐 그조차 영광이다. 그래서 야스는
결심한다. 나의 영웅 긴짱을 위해서 목숨도 마다하지 않고 그 위험한 '계단추락' 장면을 찍겠다고 말이다.
사디스트로 그려지고 있는 긴짱이지만 때로는 엑스트라들을 모두 이끌고 고기도 배터지게 먹여주는등 인간적인 면모도 가끔씩 보여준다. 그런 그가 야스는 한없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날 긴짱이 왕년에 잘나가던 여배우인 고나쓰를 임신시켜 야스에게 데려온다. 평소에 야스가 고나쓰를 흠모하는걸 알았던지라 자기 대신 결혼을 해달라고 떠맡기게 된다.
(여자가 무슨 물건인가.. 대신 떠맡기게.. 참으로 이해 안되는 일본식 스토리다..) 한창 성공가도를 향해 달려가는 긴짱 자신에게 있어 방해가 된다는 표면적 이유말고도 나이 어린 메구미를 사귀기 위한 그런 속셈이 있었다.
그리하여 야스와 고나쓰는 동거를 하게되고 야스의 고향을 방문해 가족들을 만난 이후로는 점차 고나쓰도 야스의 못생긴 외모나 경제적인 무능력 보다도 정작 중요한건 착실하고 성실한 모습과 인간적인 면모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점차 야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데.. 야스는 그 마음도 모르는지 오로지 긴짱만을 위하며 위험한 계단추락 장면에 몸을 내던질 생각만 하는데.. 과연 이들의 운명은..
다소 과장되긴 하였지만 전하려는 메세지 하나만은 뚜렷한 소설같다.
쓰카 고헤이 자신이 제일교포2세라 그로인해 성장하면서 받았던 차별들을 토대로 긴짱으로 대변되는 절대권력. 확대하면 천황. 그리고 야스를 비롯한 억압받는 군상들. 그건 자존감도 없이 권위에 맹종하는 대중들의 모습이다.
작가는 거기에서 절대적 권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순응해가는 대중에게 자립의 의지를 호소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전해진다.
풍자는 풍자로 즐겁게 바라보고 느끼면 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풍자가 맞는거지?
아니면 어쩌나..
나같이 마음약한 사람들은 야스놈 불쌍해서 그 걱정에 잠 못이뤄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