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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다이어리 - 나를 변화시키는 1%의 비밀
샌디 그레이슨 지음, 안기순 옮김 / 꽃삽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흐뭇하게 되돌아보는 개인의 역사
개인적으로 일기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이야깃거리가 많은 편이다..
누구나 그러하듯 나의 일기와의 첫만남은 아주 어린 시절 그림일기를 통해서였다..
자발적으로 열심히 쓰고 열심히 그렸던 기억이 난다..
특히 우리 막내고모가 그걸 보고 아주 좋아했던 기억도..
성장기에 받았던 칭찬은 그 효과가 무척이나 오래가는 법이다..
그런 막내고모의 영향탓인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도 남달리 일기를 열심히 또 다양한 방식으로 독창적으로 재미있게 써가는 습관이 계속 이어졌다..
당시에 반 친구들은 만화대본소에서 만화책을 빌려가듯 내 일기를 순서를 정해 대여해갔을 정도였으니..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필자의 일기는 그 형식과 내용면에서 180도 변화를 하게 되었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일기에서 철저히 비밀스런 개인적인 기록의 형태로 말이다..
하루하루 끓어오르던 성욕으로 힘들어 하던 그 시절..
그런 답답함을 토로할 곳이 그 시절에는 하얀 일기장의 여백밖에는 없었다..
생물 교생 선생님을 열렬히 짝사랑하던 기억에서부터..
그 누나가 적어준 주소와 전화번호를 곱게 붙여 놓기도 했으며..
친구의 여자친구를 흠모하던 당시에는 반인륜(?)적인 고백까지..
마치 일기장을 펼치면 동네 술집 작부의 분내음이 확 끼칠것만 같은 그런 일기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난 그런 내 비밀스러운 일기장을 여동생이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내가 여동생의 일기장을 훔쳐보았을때 알았다.. -_-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길다 할 수 있는 내 인생의 역사중에 몇되지 않는 반전의 순간이었다..
암튼 그 때의 그 민망함이란..
그 후로 난 수년동안 일기를 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비록 일기는 아니지만.. 일기의 형식을 빌어 쓰는 그런 글쓰기는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첫사랑을 하게되고..
열심히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했으며..
군대시절에는 고참들의 연애편지를 대필해주고..
상병이후 시절엔 부대의 인사서무병으로 발탁되어 부대의 일기라고 볼 수 있는 '부대일지'를 썼으며..
제대를 하고 복학을 했을 무렵에는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어..
학교 홈페이지에 그런 내 인생에 있어서 사적인 이야기들을 공개적으로 연재하게 되었고..
회사에 입사해서는 회의에 관한 일기라 할 수 있는 회의록을 작성하며 살았고..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쓰고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 생활하는 지금까지..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쓸 뿐..
오래전 그랬던 것처럼 나만이 볼 수 있는 그런 글쓰기는 이제 없어져버린 거로구나라고..
그렇게 내 인생의 얼마간의 추억은 일기쓰기를 중단함과 함께 송두리째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는 아쉬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을 보는 동안 난 그런 아쉬움의 탄성을 여러번 내질러야했다..
저자인 샌디 그레이슨은 그런 일기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 일기가 단순히 개인적인 사생활의 기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제목 그대로 '힐링 다이어리' 즉 일기쓰기를 통한 상처받은 마음의 치유를 위한 글쓰기이다..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대표적으로 종교에 의지함이 있을것이고..
사색이나 운동, 명상, 심리치료, 대화에서 부터..
술, 담배, 마약에의 의지 등 해로운 것까지..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샌디라는 저자의 불우했던 가족사에 관한 부침의 기록이고..
또 그런 불행했던 과거를 일기쓰기를 통해 슬기롭게 극복해낸 저자가 권해주는 체험 삶의 현장이다..
실제로도 저널루션 워크숍을 통한 강의로 많은 이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한다..
내가 해보니 정말 좋더라 그래서 당신들도 해보길 바란다는 일종의 덕업상권의 발로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는것은 일기 쓰기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이다..
어떤 일기장에 어떤 필기도구를 가지고 어떤 시간에 어느 장소에서 어떤 방식으로 쓸 것인가 등등..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단 한문장으로 압축해서 말할 수 있겠다..
'지금 당장 아무데나 쓰라!!'
필자가 가계부를 처음 썼을때의 상황이 떠올랐다..
정말 열심히 써야지 하는 마음에 일부러 만원이 넘는 고급 가계부를 샀었다..
그리고는 형형색색의 볼펜으로 앙증맞은 스티커를 붙여가며 한동안 열심히 가계부를 썼다..
상상해보라..
30대 중반의 노총각이 집구석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 그렇게 가계부를 꾸미는 모습을..
하지만 항상 계산을 해야한다는 압박으로 그 가계부 쓰기는 오래가지 못했고 인터넷으로 자동 가계부를 쓰는것이 훨씬 유용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일기 쓰기도 위와 같지 않을까 싶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잘 쓰고 예쁘게 꾸미는게 중요한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실천해서 꾸준히 쓰는게 중요한것 같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 후의 이야기들은 저자의 사적인 일기 쓰기를 통해서 깨우쳤던 사항들과 주변인들이 일기 쓰기를 통해 변화를 느꼈던 사항에 대한 기록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샌디가 아버지를 용서하고 이해하게 되며 다시 재회하게 되는 일련의 스토리는 무척 감동으로 다가왔다..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참지못해..
샌디는 일기장에 이렇게 분노를 표출했다..
'....
특히 당신과 연결해서는 더더욱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당신은 제게 생명을 준 정자에 불과합니다. 그뿐입니다.
....
저는 당신 없이도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당신은 제게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당신 때문에 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덕택에 결혼식 날 홀로 통로를 걸어가게 될 겁니다.
살아남기 위해 여태껏 홀로 삶을 헤쳐왔듯이 말입니다.
....'
(p.75)
이렇게 샌디는 속에 꽉 막혀 있던 고통과 분노를 종이 위에 쏟아놓으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한다..
필자또한 여러 단체에서 어린 여동생들의 고민상담을 자주 해줬던 경험이 있다..
주로 이성상담이었는데..
내가 그녀들에게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을 준 것은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답답한 자신의 이야기들을 들어주는 대상이 있었다는 사실이 그들에겐 큰 도움이 되었고 또 그로인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것 같았다..
이와 같은 효과를 단순히 일기 쓰기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다니 꽤 괜찮지 않은가..
다시 책속으로 돌아와서..
샌디는 그 분노에 찬 일기를 쓴 7년후..
일기장을 펴들었던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용서에 관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아버지를 용서하는 편지를 보낼까 말까하던 망설임의 순간에도..
일기를 통하여 새삼 그런 용기를 얻게 되었고..
그리하여 20년간 자신을 억누르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후 샌디는 직접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고 현재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것으로 전해짐..)
이 책 중간 중간에 있는 '이런 방법은 어떨까'란 코너는 실제로 일기 쓰기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글을 쓰는데 참으로 유용한 팁같다..
종이를 펼쳐들고 무엇을 어떻게 써야할까 막막한 순간..
그 첫 시작을 풀어나가는 방식을 여러가지 형식으로 잘 설명해주는것 같다..
예를 들면..
나는 생각한다 무엇무엇을 이라는 방식에서 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나가는 방식 등등..
나도 지금 당장 그걸 실천해 볼까..
독후감을 쓰고 있는 지금..
틀어놓은 TV에는 참으로 오랜만에 트윈폴리오(김세환&윤형주) 두 분이 나와서 다정하게 통기카를 치며 추억의 노래들을 들려주고 있다..
그 노래들을 듣고있는 나이가 지긋하신 아줌마 아저씨 관객들의 만면에는 흐뭇한 미소가 가득하다..
나의 입가에도 빙그레 웃음이 지어진다..
난 그런것들이 좋다..
채널을 옮기니..
모 은행 켐페인 광고에서는 불우소년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지도하는 정명훈씨의 열정적인 모습이 비추어진다..
'브룸 브룸'
그들과 나란히 얼싸안고 기뻐하는 대 지휘자의 모습..
난 그런것들도 좋다..
전반적으로 실용적이면서도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데 좋은 시간을 마련해줄 수 있는 좋았던 책이라 평하며 마무리 짓고자 한다..
흐뭇하게 되돌아보는 개인의 역사..
그 역사를 다시 써내려가기엔..
지금 당장이라도 늦은것은 아닐 것이다..
내 안에 그토록 깊이 뿌리내린 상처에서
흐르는 것은 잉크뿐이지만
잉크가 아는 것을 알아내고 싶다.
그래서 끊임없이 쓴다.
- 30년 이상 일기를 쓰고 있다는 쉰다섯 살의 데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