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기러기
폴 갤리코 지음, 김은영 옮김, 허달용 그림 / 풀빛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마음의 육포

 

 

지금으로부터 67년전의 작품이다..

이 소설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폴 갤리코는 오헨리상을 수상했다고 전해진다..

 

'흰기러기'와 '작은 기적'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두 작품은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가진다..

'흰기러기'의 필립과 '작은 기적'의 페피노는 둘 다 외톨이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동물 친구가 있었기에 그들은 외롭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인간과 동물과의 사랑을 넘어선 우정앞에서 새삼 고개가 숙여지고 마음이 훈훈해짐을 느끼게 된다..

 

일전에 보았던 천상병 시인의 전기가 문득 떠올랐다..

팍팍한 이 한세상 즐거운 마음으로 소풍을 왔다가 하늘로 돌아간 천사같던 시인..

 

세상이 그대에게 냉대로 일관할지라도..

그런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한 순간도 져버리지 않았던 모습들..

그들은 항상 세상에게로 먼저 악수를 청하던 사람이었던것 같다..

 


필립은 흉칙한 몰골로 언제나 늘 외톨이였다..

해괴하게 굽은 한 손과 곱사등..

어느 등대에서 그는 날아오는 새들을 벗삼아 그림을 그리며 살아간다..

세상과 단절 된 채로 그렇게..

 

하지만 그는 뒤틀린 몸과 달리 마음만은 항상 따뜻했던 사람이었나 보다..

 

'뒤틀린 몸은 때때로 사람의 심성마저도 비틀어 놓는다.

그러나 필립은 그렇지 않았다.

필립은 사람도, 동물도, 그리고 자연의 모든 것들까지도 넉넉한 마음으로 사랑했다.

그의 가슴은 연민과 이해로 넘쳐 났다.

필립은 자신의 장애도 훌륭히 극복했다.

하지만 자신의 추한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만은 극복할 수 없었다.'


(p.14)

 


그런 필립에게..

어느 날..

사냥꾼의 총에 맞은 흰기러기를 든 소녀가 찾아온다..

저 멀리 캐나다에서 이 곳까지 어떻게 날아온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필립과 소녀 프리다는 흰기러기를 정성껏 돌보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어떤 편견에도 굴하지 않고 점차 서로들에게 익숙해져 간다..

 


"그래. 이제 여기서 살려나 보다.

다시는 다른 데로 가지 않을 모양이야.

이젠 길 잃은 공주님이 아니구나.

이젠 여기가 공주의 집이야.

공주가 스스로 선택한 집...."


(p.41)

 


그러던중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었고 필립은 모국의 군대가 고립된 프랑스의 덩케르크로 그들을 구출하러 갈 결심을 한다..

 

등대를 떠나던 날..

어느덧 훌쩍 자라 숙녀가 된 프리다는 뒤늦게 깨닫게 된다..

 

사람과 자연을 향해 끊임없고 한결같은 마음을 가졌던 사람..

그 필립을 자기는 이제 사랑하게 된 것이라고..

모두가 외면한 자기에게..

마음을 열고 순수하게 다가 온 상처입은 흰기러기를 안고있는 그 꼬마 숙녀의 오래된 그림을 보며..

 


붙잡고 싶었지만 그는 말한다..

 


"사람들이, 그러니까 병사들이 사냥꾼 총에 맞은 새들처럼 바닷가에 버려져 있어, 프리다.

너와 내가 우리로 데려와 보살펴 주었던 다친 새들처럼 말이야.

병사들 머리 위로 밤낮없이 쇠붙이로 만든 송골매, 독수리, 흰바다매 같은 무서운 새들이 날고 있다고 생각해 봐.

우리 병사들은 먹이를 노리는 이 무서운 새들한테서 몸을 감출 곳도 없어.

오래전에 네가 늪에서 데려와 우리가 상처를 치료해 주었던 길 잃은 공주처럼, 길을 잃고 쉴 곳도 없이 맨몸으로 비바람과 싸우고 있어.

도와줘야 해, 프리다.

도움을 기다리는 새들을 구하러 가듯이, 난 병사들을 도우러 가야 해.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야.

이건 나도 할 수 있어.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나도 남자다운 일을 하는 거야."

 

(p.49)

 


그렇게 창공을 가르며 적지로 날아가는 흰기러기를 따라 그는 떠났다..

마치 무언가에도 홀린듯한 사람처럼..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총알을 피해가며 무려 700명의 고립된 군인들을 조그만 7인승 보트로 무사하게 실어 나른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사람들을 위해 희생한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의 보트위를 애절하게 흰기러기 한마리만이..

그렇게 창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무엇이 그에게 그런 힘을 주었는지..

무엇이 흰기러기를 그렇게 멀리 나르게 했는지..

그 모든것은 이제 전설이란 이름으로 전쟁터의 영웅담으로만 전해오고 있다..

 

이젠 없어져 버린 그 등대에..

그동안 그들이 돌보던 수많은 새들과 그림으로 남겨진 그의 유산만이 남아 있는 그곳에서..

프리다는 생각한다..

 

저렇게 떠나지 못해 날개짓하는 저 흰기러기는..

 

바로..

 

필립의 영혼일 것이라고..

 

 

 


참 얇은 책이었다..

하지만 그 여운은 꽤 오래 갈듯하다..

 

서로를 미워하고 밟고 올라가려는 세상..

잠시 천천히 이 짧은 우화를 생각하면..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흔히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한다..

오감을 자극하는 달콤한 아이스크림 같은 책도 있을 것이고..

먹기에는 까칠까칠 거북하지만 몸에는 좋은 현미와도 같은 책도 있을 것이고..

 

이 책은 뭐랄까..

 


씹으면 씹을 수록 잔잔하게 구수함이 전해오는..

 

마음의 육포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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