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 + 작별 세트 - 전2권 - 정이현 산문집
정이현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모든것은 계획적으로 이루어진다..

하물며 대출도 계획적으로 하라는 세상이 아니었던가..

 


내 계획에 의하면..

이번에 쓸 독후감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었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읽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한 통의 메일을 받고..

그 계획은 수정되기에 이르렀으니..

 

정이현 작가와 함께하는 2007년 작별의 밤 행사에 당첨되었다는 메일이었다..

올 한해 운좋게도 나를 따라다니던 그 당첨운이 이번에도 빗나가지 않았나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설가란 사람을 만나러 가는 자리라..

그 사람이 쓴 책 정도는 보고 나가야지 예의가 아닐까 싶어서..

정이현씨의 소설도 본 지 좀 오래되었고..

그래서..

 

유난히 예쁜 케이스에.. 예쁜 두권의 책이 들어있고.. 예쁜 카드지갑까지 선물로 주었던..

그 '예쁨'으로 똘똘 뭉쳐져 일찌감치 출간되자 마자 사두었던..

내년에나 보려고 계획했던 정이현씨의 산문집들을 새삼 펼쳐보았더랬다..

 

 

풍선과 작별..

두권으로 구성되어져 있는데..

내가 '작별'을 먼저 선택했던 이유는..

풍선의 '명랑한 사랑을 위해 쓴다'란 부제 보다는..

작별의 '외로운 너를 위해 쓴다'란 부제 때문이었으리라..

 

 


술이 거나하게 취했던 어느 밤이었다..


N분의 1 하자던 친구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여기 내가 쏘께라고..

호기있게 계산을 하던 순간이었다..

 

신용 카드 매출 전표에 싸인을 하면서..

난 그 밑에..

'행복하세요' 라고 적었더랬다..

마치 연예인이 싸인 해주는것 처럼..

 


카운터 아가씨는 별 웃긴놈 다보겠네란 시선으로 빤히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폭소를 터뜨렸다..

-_-

 

 

이 책은..

김영하씨의 '퀴즈쇼' , 공지영씨의 '즐거운 나의집'에 이어..

세번째로 가지게 된 저자의 친필 사인본 이었다..

물론 한두권도 아니고..

몇백권씩 싸인을 해야겠지만..

하나같이 다들 멋대가리 없게..

날짜랑 싸인만 남겨져 있다..

 

다른 문구도 하나 정도 더 적어주면 참 좋으련만..

이번에 정이현씨를 만나면..

꼭 '행복하세요' 내지는 '장가가세요' 등의 문구를 책에 적어달라고 졸라봐야겠다..

 

 

개인적으로 정이현씨의 '달콤한 나의 도시'를 무척이나 재밌게 보았더랬다..

 

그 때가..

서울로 막 상경해 사촌형의 공무원 관사에 얹혀 살다가..

저 사람은 왜 공무원도 아닌데 공무원 관사에서 사냐고 뽀록이 나서..

급하게 독립을 해서 나왔던 그 해였던것 같다..

 


생전 처음으로 혼자 자취란것을 하기 시작했을때..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도 기다려 주지않는 불꺼진 그 썰렁한 원룸..

심하게 몸살이라도 걸릴라 치면..

죽조차 사러 나갈 힘이 없어서..

침대 위에서 연신 식은땀만 뻘뻘 쏟아내던 그 때..

 

그렇게 시작된..

 

외로움과 고독과의 사투..

 

 


그래서였을까..

정이현씨의 소설을 보며..

이땅의 수많은 은수들에게 화이팅을 전했던 그 까닭이..

 

 

 

저녁의 정거장, 길들은 여러갈래로 뻗어있다.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다만 가장 먼저 도착하는 버스에 무작정 올라타지는 않을 것이다.

 

두 손을 공중으로 내밀어 본다.

 

손바닥에 고인 투명한 빗물을 입술에 가져다 댄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서울의 맛이다.

 


( 정이현 作 '달콤한 나의 도시' 中 )
 


 

 


이벤트 당첨 기준은 2007년을 보내는 감상이었다..

 

난 그 감상을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찾았다..

서울이란 낯선 도시에서..

혼자 지내며 맛 본 그 씁슬한 '서울의 맛'..

 

하지만 이젠..

조금은 더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또한 그것을 가슴깊이 느꼈기에..

그때 보다는..

조금은 더 다른 '서울의 맛'을 느꼈던 한 해 였노라고..

 


그리고 난 정이현씨가 그 소설을..

나처럼 어느 '원룸'에서..

그렇게 혼자 살며 써내려간거라고 예상했었는데..

이 책을 보고나니 그 예상이 적중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겐 생각이 있는데..

그 생각들을 글로 펼쳐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무능함에 가슴 먹먹했던 수많은 순간들..

 

그런것들을 정이현씨는 이 책의 머릿말에서..

참 공감되게 표현해 놓고 있어 특히 인상깊었다..

그래서 작가란 아무나 되는게 아닌건가 보다..

 

 

어떤 책은 덮고 난 후에 더 가까이 사귀게 된다.

 

작별하고 나서야 한 사람을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과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맞부딪칠때, 나는 책을 읽는다.

 

철저히 외로워지도록.

 

내 안에 꽁꽁 유폐된 나를 아무도 발견할 수 없도록.

 

그리하여 어떻게도 훼손되지 못하도록.

 

 

 

수많은 '당신'을 만난 것도 책이었고, 수많은 '당신'을 떠나보낸 것도 책이었다.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하여 어쩌면 백 편의 글을 읽었다.

 

백 편의 글을 읽었다는 건, 백 명의 당신들을 떠나보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허공으로 흩어진 작별인사 뒤에 당신들은 내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 정이현 作 '작별'의 머릿글 中 )

 

 

이 책은 전반부에 문학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이현 작가의 그에 관한 사적인 이야기와..

중후반부의 일종의 독후감들로 구성되어져 있다..

뜻하지 않게 내가 모르고 지내왔던 흥미로운 책들을 소개받게된 것도 하나의 큰 수확이리라..

 


그리고 그 중 또하나 인상 깊었던 대목은..

우리 문학에 대해 응원을 해주길 바랬던 그 부분이 아니었을까..

함성이 가득한 그라운드를 달리는 축구선수가 더욱 힘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언제던가 어느 네티즌의 리뷰를 보다가..

이런 대목을 본 적이 있었다..


'난 한국소설을 읽지 않는다.. 우리삶도 너저분한데.. 책 속에서 까지 그런 너저분한 낯익은 거리들의 풍경과 삶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내용이었던것 같다..

 

 

 

글쎄다..


그래도 난..

책을 보다가 내가 익히 아는 그런 거리들의 명칭들..

인사동.. 종로3가.. 연신내 등등..

그런게 나오면 무척 반갑기도 하고..

따로 시간을 내어 그 거리를 다시 찾아 혼자 걸어보기도 하는데..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제주도의 함덕..

94년 대학 과친구들이랑 무전여행 비슷하게 놀러갔던..

마치 포카리 스웨트 CF속에서만 나올법한 그 옥빛 물빛..

 

점점이 어둠 속에 묻혀가던 그 바다 빛깔을 보았다니..

 

72년생으로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기억이 있고..

혼자서 '원룸'에 살았던 기억이 있으며..

왼쪽 눈에만 쌍꺼풀이 있는 사실까지..

 

함덕의 바다는 정이현 작가와 본인과의 공통점에 하나를 더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의 젊은 작가들중..

많은 골수팬들을 확보하고 있고..

많은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며..

선두 그룹에 속해있다는 생각이 드는..

정이현 작가..

 

 

난 그녀가..

조금의 세월이 더 지나고 조금의 연륜을 더 가지게 되어..

지금처럼 이삼십대 여성들에게뿐만 아니라..

박완서 선생님처럼..

오랜 세월동안 좋은 작품을 발표하고..

다양하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그런 작가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녀는..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많이 읽었던 소녀였기에..

 

그리고..

적어도 나에게는..

 

글로나마..

외로움을 다독여주고 위로해주었던..

사람이었기에..

 

 

 

벌써부터 그녀와의 만남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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