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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 없다 ㅣ 시가 있는 아침 1
이문재 엮음 / 이레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훈련소를 퇴소하고..
자대 배치를 받은지 얼마 안되었던 신병 시절이었다..
아직까진 뚜렷하게 전투력을 발휘할 수 도 없고..
삽질이나 낫질조차 어설퍼 작업에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우리 입대동기들은 내무반 한 구석에 각잡고 앉은채로 대기중이었다..
그때 말년 병장이던 우리 중대 보일러병이 우리를 음침한 보일러실로 불렀다..
보통 보일러병 같은 소위 말하는 땡보직은 중대에서 타 전우들에게 피해를 주는 관심사병들에게 그 임무가 주어졌던 우리 부대의 전례에 비추어..
그 역시도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였었는데..
끌려간 우리들은 그래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신나게 두들겨 맞았다..
신병들을 두들겨 패는것도 재미가 시들해졌는지..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와서..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하던 우리 동기들에게 그 보일러병은 주섬주섬..
초코파이를 하나씩 던져주었다..
오옷..!!
구타후에 맛보는 눈물섞인 그 초코파이의 달콤함을 어디에다 비하랴..
그때였다..
참으로 생뚱맞게도..
그 보일러병은 그 순간..
자기가 보일러실에서 손수 지은 시라며..
시낭송을 하기 시작했다..
-_-
그 후 각자 느낀바를 발표하고..
별 말 못하는 놈들은 더 맞고..
나처럼 입에 발린 칭찬을 잘했던 놈은 초코파이를 하나씩 더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는..
제대후에 시집을 내었다고 한다..
시집의 제목은..
'보일러실에 핀 꽃'이라던데..
그 진위를 확인할 길은 없었다..
그 후로 12년이란 세월이 지났건만..
어느 누구도 나에게..
시를 읊어주는 이는 못 만나보았다..
그렇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바로 시집이 되겠다..
신현림 시인은 어느 글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시를 읽지 않는 사람과 연애하고 싶을까? 시를 읽지 않고 어찌 인생을 알까?'
라고..
이 사회의 강력 범죄는 시를 안 읽어서 생기는 것이며..
지금 우리나라 고위관리 및 국회의원들 중 시를 알고 즐기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하고 한숨을 쉬기도 했더랬다..
이 책을 엮은 시인이자 경희사이버대 문창과 교수이신 이문재씨도..
(언젠가 거론했던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던 '농담'이란 시를 지었던 그 분..)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텔레비젼 리모콘이나 휴대폰의 전원을 켜듯..
시를 한편 읽고..
시를 삶의 안쪽으로 스며들게 하자고 우리에게 권유하고 있다..
약간은 독특한 재질의 표지에..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 없다'는..
정호승 시인의 '꽃 피는 저녁'의 낭만적인 한 구절이 제목으로 적혀있고..
역시 정호승 시인의..
'좋은 시는 우리를 배고프게 하지 않는다.
좋은 시는 우리의 가난한 영혼을 더 이상 가난하게 하지 않는다.'란
글귀도 적혀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문재 시인들이 뽑은 시들은..
2006년 중앙일보에 연재된 '시가 있는 아침'에 소개되었던 시들로서..
흔히들 잘 알고 있는 명시들과는 거리가 먼 생소한 시들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그 시들은..
우리 삶의 안쪽으로 스며들려는 노력이 깃들어 있는 시들이라 하니..
그 속에 담긴 의미들을 곰곰히 한번 곱씹어 보는것도 좋을듯 하다..
각각의 시 한편한편마다 이문재 시인의 독후감이 개재되어 있는것도 특이하지만..
그의 말대로 시를 읽는 개개인들의 독특한 감상문들이 많이 나오게끔..
시를 우리삶의 안쪽으로 이끌어 들일 수 있게 노력을 경주하는것도..
아름다운 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무척 의미있는 일이되리라 감히 생각해 보았다..
지난 주말 고향에 다녀오면서..
필자는 몇 권의 시집을 들고 왔었다..
랭보, 바이런, 칼릴 지브란, 김수영, 기형도, 오봉옥..
과연 이렇게 '시집'을 만나는 시간과..
'시집'을 올 여자를 만날 시간 사이의 경중에 있어..
무엇에 더 큰 비중을 둬야할지 고민했지만..
이내 '시를 읊는 여자를 만나자'란 명쾌한 결론을 내리며..
허허 웃어버렸다..
끝으로 마음에 들었던 시 몇 편으로 마무리 짓는다..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 성미정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다 그 안에 숨겨진 발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리도 발 못지않게 사랑스럽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의 머리까지
그 머리를 감싼 곱슬머리까지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저의 어디부터 시작했나요
삐딱하게 눌러 쓴 모자였나요
약간 휘어진 새끼손가락이었나요
지금 당신은 저의 어디까지 사랑하나요
몇 번째 발가락에 이르렀나요
혹시 제 가슴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요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그러했듯이
당신도 언젠가 모든 걸 사랑하게 될 테니까요
구두에서 머리카락까지 모두 사랑한다면
당신에 대한 저의 사랑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 아니냐고요
이제 끝난 게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처음엔 당신의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구두가 가는 곳과
손길이 닿는 곳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시작입니다
소금인형 - 류시화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네
기러기 가족 - 이상국
- 아버지 송지호에 좀 쉬었다 가요
- 시베리아는 멀다
- 아버지 우리는 왜 이렇게 날아야 해요
- 그런 소리 말아라 저 밑에는 날개도 없는 것들이 많단다
냇물이 얼지 않는 이유 - 반칠환
겨울 양재천에 왜가리 한 마리
긴 외다리 담그고 서 있다
냇물이 다 얼면 왜가리 다리도
겨우내 갈대처럼 붙잡힐 것이다
어서 떠나라고 냇물이
말미를 주는 것이다
왜가리는 냇물이 다 얼지 말라고
밤새 외다리 담그고 서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