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제 7 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1996년의 가을이었다..

난 스물 셋이었고..

상병 정기휴가를 나왔더랬다..

당시 대학 신입생이던 친여동생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느라 혼자 자취를 하고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우수한 인간들만 들어간다던 동생의 학교를 구경하고..

둘이서 맥주를 마시고 노래방을 가고..

동생의 자취방에서 와인을 나눠 마시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 때..

뜬금없이 동생은 내게 물었다..

 

'오빠는 사랑의 조건이 뭐라고 생각해..?'

 

매일 같이 TV를 보며 연예인에 관한 시시껄렁한 농담만 주고받던 우리 남매의 대화의 전력에 비추어볼 때..

그런 진지한 대화가 무척이나 낯설긴 했지만..

맥주탓이었는지..

와인탓이었는지..

 

난..

 

'사랑의 조건은 이해가 아닐까..' 란

 

멋드러진 대답을 했던것 같다..

 

 

 

 

요즘은 바쁘다..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일이 바쁜건 아닌데..

그냥 마음이 바쁘다..

아니 바쁘다고 생각해야지 다른 생각이 안 들거라는..

그런 강박관념탓일게다..

 

 


그러다 보니..

즐겨쓰던 독후감도..

인터넷에서 퍼다 나르는게 요즘의 행태인데..

방금 이 책의 책장을 덮고..

아..

이건 내가 써야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난 항상 서너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곤 한다..

화장실에서..

출퇴근길 버스안에서..

사람이나 밥을 기다리면서..

집으로 돌아와 침대나 의자에 걸터앉아 제대로 자세를 잡으면서..

 


화장실에는 아직도 '지식e'가 놓여있으며..

가방속에는 두권의 책이 있고..

출퇴근길 버스안에서는 '오만과 편견'을..

약속을 기다릴때는 '성학십도'를..

보고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펼친 순간부터..

이틀내내 모든 장소와 모든 시간에..

이 책만을 보며..

나름대로 정한 독서의 규칙을 깨버리게 만들었다..

 

 

그만큼 푹 빠져..

길가는 모르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한번 읽어보세요..

아마 지금보다 조금쯤은..

마음이 따뜻해질거예요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책..

 

 

 


참 이상하기도하지..

 

제일 많이보고..

제일 좋아하는 책들이..

이런 성장소설인데..

주인공이 여러가지 사건들을 겪고..

그 치열한 성장통을 겪고..

결국엔 한 층 더 커버리고..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다라는 결론을 모두다가 전해주는 식인데..

그런데도..

항상 이렇게..

이런 글을 볼 때면..

 

난..

 

매번..

 

그렇게 아리기만 하는건지..

 

 

 

 


주인공 한동구의 집은 인왕산 자락에 있다..

청와대와 중앙청이 가까운 곳이라..

시대의 시끄러움을 벗어나진 못한다..

그리고 그 곳엔..

그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어떤 사장님의 3층 저택이 있고..

그 저택에는..

동구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황금빛 곤줄박이와 함께..

 


동구는 4대 독자지만..

그 귀한 '고추' 대접은 받지 못한다..

 

왜..?

덜 떨어졌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데도 글자를 읽고 쓰기에 어려움을 느끼고..

항상 욕을 입에달고 며느리 갈구기에 여념이 없는 할머니와..

그런 냉대에 항상 침묵으로 일관하며 가슴이 숯검댕이가 되어버린 어머니..

그 사이에 끼어 눈치를 보며 폭력까지 행사하는 아버지..

참 동구네 집은..

깝깝함의 결정판이었다..

 


그러다가..

동구에게..

늦둥이 여동생이 생기게 되었다..

 

할머니가 지어오신 이름은..

'한복자'였다..

 

여동생의 이름은..

적어도 미연이나 희정이 정도는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동구에게..

이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같은 상황인가..

그리하여..

결국 그 여동생은 '영주'라는 예쁜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가족들 서로간에..

어떠한 애정 표현도 해 본 적이 없는 동구네에..

영주는 항상 먼저 팔을 벌려 안기고..

돼지막창같은 그 조그마한 입술로..

앙증맞게 볼에 뽀뽀를 '쪽' 해주는..

동구네의 삶의 활력소였다..

 


게다가 세살때 이미 스스로 TV랑 신문을 보며 글자 읽기를 마스터 해버린 영재라니..

 

그래도 동구는 그런 동생을 질투하기는 커녕..

선생님 선물로 엄마가 카스테라를 만들던 계란반죽에..

영주가 석고가루를 뿌려넣자..

엄마가 돌아왔을때..

그 계란반죽통을 뒤엎어버려..

대신 엉덩이를 맞았던..

 

세상에서 가장 '착한' 어린이였다..

 


이제 동구네 가정에도 웃음꽃이 피는것인가..

 

항상 바보라고 놀림받던 동구에게도..

난독(難讀)증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방과 후 한시간씩 시간을 내어 주시던..

 

박영은 선생님..

 


박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동구에게는 이제..

삶의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이 소설의 시대 배경인..

77년부터 81년까진..

우리 모두에게..

난독(難讀)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그런 연유로 동구가 사랑하던 이들은..

하나 둘 동구곁을 떠나가고..

동구가 노루너미로 갈 생각을 굳힐때 즈음..

 

동구는 그 사람들을 진정 '이해' 하는..

사랑을 배우며..

그렇게 한 층 더 자라나게 된다..

 

 

 


동구의 삶을 지켜준 주변 '어른'들은 참 어른스러웠다고 보여졌다..

 

박영은 선생님은 물론 이거니와..

주리 삼촌.. 동구의 엄마까지도..

그러한 모든것이..

덜 떨어진 한동구가..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떠나면서도..

세상을 아름답고 희망차게 볼 수 있었던..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새삼..

나도 좋은 '어른'이 되야지란 다짐을 했을 정도로..

 

 


작가 심윤경씨는..

수상당시 신인 이었다고는 하나..

글을 참 '아름답고 예쁘게' 쓰는 재주를 지닌듯 하다..

 


'비껴 들어오는 오후 햇빛에 선생님의 볼에 있는 솜덜이 뽀얗게 비쳐 보였다.

우유와 방금 내린 눈송이, 푸르스름한 오이의 속살에 꿀을 더하면 선생님의 피부 빛깔이었다. 반투명한 피부 밑을 흐르는 푸른 혈관은 얕은 바닷속의 싱싱한 해초 같았다.'   (P.94)

 

 

'선생님이 손을 흔들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눈썹을 적신 눈물로 시야가 어룽져 모든 것이 또렷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의 발걸음이 변함없이 경쾌한 것만은 알아볼 수 있었다.

수십억 년의 나이를 먹는 동안 한 번도 누군가를 놓쳐본 적이 없는 늙은 지구였지만, 선생님의 가벼운 발걸음 앞에서는 갑자기 그 집요한 중력도기운을 놓고 마는 모양이었다.

지구가 결국 선생님을 붙들기를 포기하고 손을 놓아버리면 선생님은 미련 없이 날아가버릴 것이다.

나는 선생님이 날아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처음에는 나비처럼 나풀나풀 조금씩 떠오르다가, 날아오르는 일에 조금씩 익숙해진 후에는 허공에 대고 쏘아올린 새총처럼 가뿐하고 시원하게 솟구치는 모습이었다.

여름날, 외갓집 앞의 너른 벌판에서 보았던 종달새가 그렇게 치솟았던가.

버스 안에서 선생님이 손을 흔들었던 것같기도 했지만 이미 날은 어두웠고 버스 꽁무니가 쏟아내는 검은 연기 때문에 앞이 흐려져 박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P.228)

 

 

 


난..

 

그렇게 자기 중심적이던 할머니가 못내 서운했으며..

밥상머리에서 동구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바탕 싸울 기세를 보이면..

책장을 쥐고 있던 손가락에서 땀이 베어나오고..

괴로울때면 악다구니를 부리고 아무리 주먹으로 쳐대도..

허허하고 웃으며 받아주는 주리 삼촌같은 어떤 든든한 대상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소주 두잔에 자신의 사랑을 고백해버린 동구의 모습을 보며 덩달아 얼굴이 붉어지고..

 

 


무엇보다..

동구만큼이나..

여신과도 같은..

박영은 선생님의 향기를 흠모했었나 보다..

 

지난밤 꿈에 나온 여인은..

아마도 박 선생님이 아니었을까..

 

 


'동구야, 걱정하지 마. 네가 클 때까지 선생님이 기다려줄게. 남자 친구도 사귀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고 이대로 기다릴게.

아무 걱정 말고 지금처럼 예쁘게 자라기만 하렴.'

 

 


선생님의 이 귓속말에..

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얼마나 가슴이 벌렁 거리던지..

 

 


'나의 아름다운 정원'

 


책을보는 동안..

 

 

참..

 

나의..

 

아름다운 이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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