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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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고 소리내어 웃어보긴 참으로 오랜만인것 같다..
 


작가 은희경씨는 필자랑 비슷한 나이인 30대 중반의 어느날..

'이렇게 살다 내 인생 끝나고 말지' 하는 생각에 노트북 컴퓨터 하나 달랑 챙겨 들고 지방에 내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와의 만남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필자가 군복무를 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바로 밑 후임병의 애인으로 부터 제 1 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한 '새의 선물' 이란 책을 선물받았었고..

그 책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은 이후로 난 작가 은희경의 팬이 되었다..

보통 제대를 할때 책같은건 애들 보라고 놔두고 오는게 관례였는데..

그 책만은 챙겨서 집으로 들고온걸 보니..

꽤나 좋아했던 모양이다..

 


살짝 냉소적인 필체..

그리고 무엇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몸소 체험한 그 기억들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지만..

첨으로 접했던 은희경의 소설이나 지금 이 책같은 경우들이 그러하다..

난 실질적으로 중요하고 필요한 공부나 업무에 관한 기억력은 흐리멍텅한데..

유독 쓸데없는 지난일들에 관한 사소한 기억력은 무서우리만치 좋은편이라..

아직도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있는 내 인생의 몇 장면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 장례식을 TV를 통해 보았던일..

어린시절 '똘이장군'에서 항상 붉은 돼지로 표현되던 김일성을 비롯한 빨갱이들의 모습..

중1때 광주민주화운동(당시엔 '광주사태'란 표현을 썼지만..)에 관한 당돌한 질문을 던지던 우리반 부반장..

또 그에 역력하게 당황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머뭇거렸던 양미애 도덕 선생님..

중3때 계명대학교 근처를 지나다 눈물 콧물 질질 짜내게 만들었던 매케한 최루탄의 향기..

 

대충 그 시절들의 향수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난..

무척이나 생각이 많이나고..

그리워지곤 한다..

 

그때보다 몇배는 더 살기좋아진 이 세상에서..

그때보다 몇배는 더 자유로워진 '어른'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 순간에도 말이다..

 


숙제를 안해온 공통점으로 뭉치게 된..

아니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로 얽혀버리게 된 만수산 4인방..

 

책 좋아하고 자기 잘난맛에 사는 형준..

싸움 잘하는 두환..

여자 좋아하는 승주..

설치기 좋아하는 뻥쟁이 조국..

 

그들은..

식어빠진 햄버가 한조각으로 끼니를 떼우며 열몇시간씩 버스를 타며 이동하는 마이너 리그선수들이..

한때 공 하나에 4백만원을 벌던 박찬호와 같은 메이져 리거를 꿈꾸듯..

우리 사회의 메이져 리그에 편입하기 위해 용을 쓰지만..

수많은 에피소드를 남기며.. 실소를 자아내고.. 결국엔 모두 실패하고 만다..

 

그러면서 자위하는 말이 인상깊었더랬다..

소나무밭 대나무밭 잣나무밭..

거기에 있는 소나무 대나무 잣나무는 자기들이 주인공인줄 알지만..

정작 그 밭을 이루는건..

우리네와 같은 수많은 드렁칡과 잡초들이라고..

 


공교롭게도 출근길 뉴스에서 국회의원 재산공개 순위를 들었는데..

1위인 정몽준 의원의 재산이 9974억이라더라..

진정 메이저리거가 아닐 수 없다..

 

그때 난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말의 달콤한 늦잠도 포기한채..

단지 하고있는 일에 대한 책임감 하나만으로..

새벽 여섯시에 회사엘 도착했더랬는데 말이다..

 

어쩌랴..

그저 작가의 말처럼..

삶의 마이너리티 안에서의 동료애로..

서로를 위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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