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 머신
하시모토 쓰무구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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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잘 짜여진 드라마를 본것만 같다. 가슴이 시리기도 하고 따스해지기도 하고 주인공들의 감정이 내게로 고스란히 전해져 와서 같이 아파하고 기뻐하고 슬퍼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에 흠뻑 반해버렸다. 작가는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서서히 치유해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너무도 농밀하게 그려내 '연애'이야기 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 관한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다가왔다.

나오코는 너무도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연인을 잃었다. 미치도록 사랑했던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실로 감당하기 힘든 큰 고통이다. 하물며 그 사랑이 자신의 첫사랑이고 연인이 저 멀리 이름도 알수없는 외국의 어떤 섬에서 사고로 죽었다면, 또 그가 눈감은 그 순간에 나 아닌 다른 여자가 있었다면 어떻겠는가.(물론 아무 사이도 아니고 우연히 만난 여행자라고 하더라도) 그의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절망감과 그와 함께 사고를 당해 죽은 한 일본 여자에 대한 묘한 질투감 사이에서 나오코는 오늘도 그를 떠올리며 죽을만큼 슬퍼한다.

그 상실, 그 아픔, 사랑하는 가지의 체취를 내 몸이 기억하고 있고 그와의 추억이 아직도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는데 더이상 그를 볼수 없다니. 나오코는 먼 외국 땅에서 버스 사고로 너무도 허망하게 눈을 감아버린 가지를 일분 일초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잠 못 자는 나날이 계속되고 그와의 추억이 깃든 침대와 그가 읽었던 책을 가지고 있는 나오코에게 가지와의 이별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짧지않은 삶동안 그와 함께 추억을 만들고 사랑을 나누었는데 어떻게 쉽게 잊어버릴수 있겠는가.

그래서 방이 아닌 현관 문에서 자는 나오코의 행동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어느 곳에서도 잠을 잘수 없었던 나오코가 현관 문 앞에서 잠을 잘수 있었던건 문을 통해 보이는 하늘의 별빛 때문이었던것 같다. 학창시절 별똥별 머신 이라는 기계를 만들어 나오코에게 사랑고백을 한 가지를 떠올리면 왜 그녀가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별을 보며 그때의 풋풋하고 떨렸던 사랑을 떠올리고 웬지 가지가 자신의 곁에 항상 있을거라는 위안을 주니까 말이다.

이런 나오코의 옆엔 다쿠미가 있다. 가지와 나오코의 사랑을 옆에서 지켜보던 든든한 친구였던 그가 친구의 여자친구인 나오코를 연인으로 맞이했다. 이들을 모르는 제 3자가 보기엔 제일 친한 친구의 여자와 사귄다는 자체가 입방아에 오를만한 일일것이다. 나오코와 다쿠미도 그걸 알고있다. 자신들이 사귐으로써 가지에게 배신아닌 배신을 한 셈이됐으니까.

하지만 이들은 평생 가지를 잊지않고 언제나 기억하면서 살것을 안다. 나오코에겐 가장 소중한 연인이었고, 다쿠미에겐 너무도 빛난 가장 좋은 친구인 가지를 그들은 결코 잊지않고 살 것이다. 억지로 잊어버리려고 하지도 않고 서로 가지에 대한 추억을 안은채로 그렇게..나오코의 한손엔 가지의 손을, 다쿠미의 한 손엔 또 다른 가지의 손을 잡고 예전처럼 세 명이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것이다. 그렇게 나오코와 다쿠미는 새로운 사랑을 차곡차곡 쌓아갈 것이다. 서로의 손을 영원히 놓지 않은채로 그렇게 서로를 사랑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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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사도의 편지 1 뫼비우스 서재
미셸 브누아 지음, 이혜정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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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 책은 기독교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에겐 조금 어려운감이 없지않다. 그저 예수님과 몇몇 제자들의 이름과 십자가,죽음,부활 외엔 잘 알지못하는 나같은 사람에겐 책을 읽는 속도가 더딜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지루하게 읽게될 가능성이 꽤나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짜임새있는 스토리와 독특한 견해를 따라가는 재미가 무척이나 쏠쏠했기 때문에 꽤나 흥미롭게 읽었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말이다. 종교의 음모론 이라고 하면 거창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런 류의 책들은 식상하면서도 막상 읽게되면 신선하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어느날 안드레이 신부는 결코 봐서는 안되고 알려고 해서도 안되는 진실을 파헤치게 된다. 하지만 그가 의문을 갖고 파헤치려고 하는 진실은 카톨릭 교회의 신앙의 기초를 흔들수 있는 중요한 것이었기에 그는 결국 살해를 당한다. 자신의 절친했던 친구인 닐 신부에게 단서를 남긴채 말이다. 이렇게 현실에서는 안드레이 신부의 죽음을 파헤치는 닐 신부의 추적이 이어지고 먼 옛날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죽음 이후의 일들이 서로 교차되면서 이야기는 이어진다. 솔직히 긴장감은 덜하지만 13번째 제자의 등장과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극적 재미를 더해준다.

특히 우리에게 철저한 배신자로 낙인찍힌 유다에 대한 새로운 가설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는데 그가 죄책감에 휩싸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게 아니라 실은 누군가에 의해서 살해를 당했다고 말한다. 또한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로 인식되어온 베드로는 질투많은 사람으로 묘사되어져 있고 권력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또 예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로 의문의 13번째 제자가 등장하는데 그는 다른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의 진실한 얼굴을 세상에 알리려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인물로 묘사된다.

처음엔 수도회의 사제였던 작가가 어찌해서 이런 글을 썼는지 조금 의아해했다. 다른 누구보다도 믿음이 요구되는 사람이 아니던가. 책을 읽으면서도 작가의 이력이 자꾸 떠올라 의문이 생기기도 하고 웬지 재밌고 신선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책을 덮으면서 작가가 사제였기 때문에 이토록 치밀하고 깊은 이야기가 나오건 아닐까 라는 결론을 내렸다. 작가는 결코 기독교를 부정하고 예수를 부정하는게 아니었다. 예수가 정말로 신의 아들이었든, 아니면 그저 기적을 일으킨 인간이었든 결국 그 믿음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것 같다.

종교가 권력이 되어버린 현 시대에서 이 책은 뜻하는 바가 많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것인지 교회를 믿는것인지, 서로 다른 종교를 수용하고 인정하지 않고 우상화의 논리에 맞춰 비판만 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여러가지로 생각해봐야 할것이다. 열두 제자들의 정치적인 야망에 의해 신격화 되어버린 예수의 진실을 읽고있자니 '종교'와 '믿음'이라는게 어떤 의미로 현실에서 통용되고 있는지 한번 곰곰히 따져봐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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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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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을 '즐기면서' 읽었다.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 속에서 쿡쿡 웃음을 흘리기도 하고 글 속에 담겨진 날카로운 풍자에 가슴이 짠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말도안되는 이야기들을 너무도 진지하고 때론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재능에 그저 놀라움을 연발했다. 아마 이 책을 읽는 순간 독특하고 재기발랄한 이야기에 푹 빠져버리게 될 것이다.

캐비닛을 관리하는 '나'는 그리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어떤 사명감에 불타서 이 일을 시작한것도 아니고 사회에서 격리되고 고통받는 심토머들을 위해 무언가 큰 일을 해내겠다는 의지가 있는것도 아니다. 그저 어쩌다보니 이 일을 맡게된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이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어려운 경쟁률을 뚫고 회사에 입사했건만 하는 일이 없어 너무도 심심하고 또 심심해서 캐비닛을 열어 그 속에 담겨진 이야기를 읽게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권박사의 협박아닌 협박에 굴복해 그의 조수가 된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절대로 믿지 않을 사연들을 늘어놓는 심토머들을 상담해주고 자료를 정리하고 보관하는게 그가 하는 일의 전부다. 그가 상담하는 사람중엔 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람도 있고 고양이가 되고 싶어하는 덩치 큰 남자도 있다. '타임스키퍼'라는 이름의 사람들은 최소 몇시간에서 최대 몇년까지 시간을 잃어버리는 고충이 있다. 또한  '네오헤르마프로디토스'라는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도플갱어를 만나기도 한다. 저질 잡지류의 기사같은 이 심토머들의 사연을 그는 매일매일 듣고 있다.

언제나 나보다 다른것에는 (그게 어떤것이든) 불쾌한 시선과 차별을 두는 이 사회에서 심토머들이 겪는 혼란과 고통은 충분히 짐작할수 있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게이도 아니고 레즈도 아닌 '네오헤르마프로디토스'들은 평생을 외롭고 슬프게 살아갈 운명이고 자신의 죽은 분신을 위해 매주마다 화장을 시켜주는 한 여자의 사연은 참으로 기구하다. 그들은 원해서 그렇게 된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누구한테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채 홀로 쓸쓸히 인생을 보내야 한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연민을 느끼게 되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심토머가 아닌 보통 사람들에게도 이런 편견의 잣대와 냉대는 엄연히 존재한다. 또한 심토머가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감을 보통의 평범한 현대인들도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나'가 다니는 회사엔 뚱뚱하고 말이 없는 손정은 이라는 여직원이 있다. 언제나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며 밥도 혼자 먹고 대화도 하지 않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다. 특히 그녀의 뚱뚱한 외모는 많은 직원들의 입방아에 오르게되고 조롱의 대상이 된다. 대체 내게 왜 이러냐고 소리라도 지르면 속이 시원하련만 우직한 그녀는 자신의 슬픔을 꾹꾹 눌러 담을 뿐이다.

사는게 모욕적 이라는 그녀의 말속엔 짙은 고독과 아픔이 녹아들어가 있다. 과학적으로는 설명할수 없는 심토머들이나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발버둥치는 현대인들이나 결국은 같은 애환을 가지고 있는건 아닐까 싶다. 유머러스한 글 속에 이런 내용이 담겨져 있기에 뒤로 갈수록 웬지 서글픔이 묻어나온다. 마지막 결말이 조금 어리둥절 하긴 하지만 그 전까지가 너무도 훌륭해서 기꺼이 별 다섯개를 주는 바이다. '귀싸대기 맞을 각오가 되있다'라는 작가의 말에서 웬지 모를 자신감과 비장함이 느껴지는데, 앞으로도 흥미롭게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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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만 더
미치 앨봄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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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로 나의 마음을 뜨겁게 적셨던 미치 앨봄이 다시 한번 그 감동을 한 보따리 선사해 주었다.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단 하루만 더" 라는 제목이 얼마나 간절한 말인지를 아주 깊이 깨달으면서 말이다. 날 아낌없이 지원해지고 사랑해준 내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난 과연 감사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것인지, 아니면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건 아닌지 반성을 하게 되었다.

주인공 찰리는 아내와 이혼하고 하루하루를 술에 절어사는, 한마디로 실패한 인생의 전형이다. 그 어느 누구라도 찰리의 현재 모습에서 "성공"이라는 두 글자를 읽을순 없을것이다. 그에게도 꿈많은 어린시절이 있었고 부모님의 많은 기대를 등에 업고 눈부신 미래를 향해 한발짝 한발짝 내딛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걸 차마 믿기 힘들 정도이다. 그래서 그가 하나뿐인 딸의 결혼식에 참석 통보를 받지 못한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는 같이 어울리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같이 있으면 말썽을 피울까 걱정하게 만드는 사람이 된 것이다.

더이상 밑으로 추락할것도 없는 불쌍한 낙오자 인생 찰리. 딸이 보내준 결혼식 사진을 통해서야 딸이 결혼했음을 알게 된 이 비참한 찰리에게 더이상 희망은 없어보인다. 그래서 그는 자살을 결심한다. 아내도 딸도 그의 곁을 떠났고 술주정뱅이가 된 그의 곁에 남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자살을 결심한 그 날, 그의 인생은 죽음과 같은 삶에서 벗어나는 기적같은 일을 경험하게 된다. 이미 죽은 어머니가 생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의 앞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차마 믿기 힘든, 말도안되는 일이지만 그는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어머니가 정말로 그와 함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어머니가 살아계실땐 어머니의 소중함과 관심을 몰랐지만 지금은 조금이라도 어머니와 더 오래 있고 싶은 마음뿐이다. 단 하루만 더..조금만 더 어머니와 함께 있고 싶은 그 마음 말이다. 어머니만이 절망에 빠진 그를 어루만져주고 찰리의 상처와 후회를 보듬어준다. 오직 어머니만이..

죽은 어머니와의 하룻밤의 꿈결같은 만남을 통해 그는 어린시절 어머니와 함께했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자신이 어머니한테 어떤 아들이었는가를 알게된다. 가족을 버린 아버지의 편을 들어 어머니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아프게 했던 지난 날들이 파노라마 처럼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자신을 야구선수로 만들고 싶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했던 그였건만 언제나 자신에게 사랑을 주는 어머니껜 쌀쌀맞게 대하고 끝내는 배신아닌 배신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결코 미워하지 않는다. 남편과의 이혼으로인해 사람들로부터 이혼녀라는 소리를듣고 불이익을 받아도 그녀는 꿋꿋히 아이들을 키워낸다. 돈을 벌기위해 평생 해보지도 않던 청소일을 하고 미용실 일을하며 그녀는 이를 악물고 아이들을 키운것이다. 아들이 자신을 창피하게 여길때도,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심술을 부려도 그녀는 아들을 품에 안는다. 왜냐하면 그녀는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란 그런 사람인 것이다.

찰리는 죽은 어머니와의 기적같은 만남을 통해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만약 어머니가 살아계실때 더 잘해드렸더라면,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한 모든 일들과 깊은 사랑을 깨달았더라면 찰리는 뒤늦은 후회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찰리를 비롯한 모든 자식들이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는건 부모님이 평생 나와 함께 있을거라는 착각 때문이다.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 묵묵히 서서 날 감싸주고 안아줄것만 같다. 그렇지 않다는걸 너무도 잘 알면서 말이다. "단 하루만 더" 라는 간절한 말을 하며 후회하기 전에 지금 내 옆에 계신 부모님께 잘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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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30년 만의 휴가
앨리스 스타인바흐 지음, 공경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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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현실의 규칙적이고 빡빡한 삶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고 또다른 나를 만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쉬지않고 걸어온 인생길에서 잠시 숨을 돌릴수 있게해주고 지나온 내 삶의 자취를 되돌아보게끔 도와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잠시나마 행복해지고 계속해서 꿈꾸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기,바쁜 30여년간의 삶을 잠시 중단하고 여행길에 오른 여성이 있다.

앨리스는 흔히 말하는 성공한 여성이다. 기자로,교수로 많은 사람들과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데 그런 위치에 올라가기 위해선 많은 시간을 일에 매달려야 했을것이다. 앨리스는 일을 즐기면서 열심히 일해왔고 두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냈다. 그러고나니 문득 기자와 엄마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본래의 나로 되돌아가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어졌다. 타인이 기억하는 내 모습이 아닌, 내가 기억하는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그 마음을 난 알것같다.

그래서 그녀는 긴 휴가를 떠나게 된다. 여행 계획도 짜보고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을 스크랩하는 그녀의 행복하고 들뜬 기분이 내게도 전해져 오는 듯 하다. 파리와 런던,옥스포드,그리고 이태리를 혼자 여행하면서 그녀는 최고의 나날을 보낸다. 좋아하는 사람이 묵었던 호텔을 가고 가고싶은 곳을 천천히 여행하며 맛있는 음식을 맛보고 활기차고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만들어가는 그녀의 여행은 여유로우면서도 아름답다.

또한 그녀의 글은 굉장히 섬세하고 마음을 울리는 감성이 있다. 기자라서 그런지 글이 매끄럽고 중년이라는 나이에 어울리는 지혜로움과 삶에 대한 철학이 있다. 절대 가볍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다. 특히 여행을 하면서 만나게 된 일본인 나오히로와의 사랑은 그녀를 중년여성이 아닌 사랑받고 싶어하는 한 여성으로 보이게 한다. 두근거리는 사랑을 느끼는 그녀를 보고있자니 꼭 첫사랑의 열병을 앓고있는 사춘기 소녀의 모습이 떠올라 괜시리 웃음짓게 만든다.

 젊은 사람들의 여행기는 정열적이고 거침없으며 호기심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두근 하기도 하고 얼른 나도 떠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해준다. 젊은 사람들의 여행은 곧 모험이라는 말과 상충되는것 같다. 반면 앨리스의 여행은 조용하고 느긋하다. 시간에 ?기지도 돈에 구애받지도 않은채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는 모습이다. 빡빡한 스케줄을 짜서 몸도 마음도 피곤하게 만드는 여행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만 골라 알차게 보내는 그런 여행의 모습이다.

나도 앨리스와 비슷한 나이가 되면 꼭 한번 이런 여행을 떠나고 싶다. 내 자신에게 엽서도 쓰고 혼자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어나가고 여행 경비를 아끼려고 싼 음식을 찾아헤매는 대신 정말로 맛좋은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다. 한곳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처럼 살고도 싶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도 싶다. 그 나이가 되면 나 자신에게 여행 이라는 선물을 선사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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