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 삶의 여백에 담은 깊은 지혜의 울림
박완서.이해인.이인호.방혜자 지음 / 샘터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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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참으로 따뜻하고 솔직한 대화다.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과 예의가 느껴지고 오랜 세월을 보내며 축적된 깊은 지혜가 유감없이 드러난다. 박완서씨와 이해인씨의 대화 속에서, 방혜자씨와 이인호씨의 대화속에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할 바를 깨닫게 된다. 차 한잔 앞에 놓아두고 두런두런 얘기를 하는 4명의 여성들의 대화속엔 번뜩이는 지성과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얻게된 깨달음이 있다. 참으로 귀중하고 새겨 들을만한 내용들이다.

독자들에게 가장 낯익은 인물은 아무래도 박완서씨와 이해인 수녀가 아닐까 싶다. 소설책과 시집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있는 두 사람은 아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었다. 박완서씨가 남편과 아들을 잃게되어 힘겨운 삶을 지탱해 나가고 있을때 그들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어려웠던 시기에 만나 현재까지 소중한 친구로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인지 두분의 대화는 '슬픔'에 관한 이야기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슬픔과 위로, 그리고 신앙에 대한 이야기들 말이다.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에겐 그냥 내버려 두거나 아주 작은 관심을 가지는게 가장 큰 위로가 된다고 한다. 옆에서 과도하게 위로를 하는건 당사자를 더욱 더 힘들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슬픔은 절대로 극복이 아니며 이길수 있는것도 아니란다. 슬픔을 잊기위해선 기억마저 지워버려야 하는데 사람이 그럴순 없는 것이다. 그저 서서히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이 생길때까지 조용히 내버려두고 슬퍼하는것 외엔 다른 기도가 없다. 지독한 슬픔을 견뎌야했던 박완서씨의 깨달음이기에 더 값지게 들리는것 같다.

이렇게 박완서씨와 이해인씨는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문학과 신앙, 그리고 사랑과 기도에 대한 것들까지 말이다. 일반인들보다 더 엄격한 규율과 잣대를 들이대게 되는 수녀 이해인씨의 인간적인 모습도 볼수 있었다. 젊었을 적 자아에 대한 고민과 자신도 인간이다보니 겪게되는 여러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특히 한 자매를 다른 이들보다 더 특별하게 대했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놀라웠다. 박완서씨도 이런 솔직한 모습에 깜짝 놀랐으니 말이다.

가장 힘든 시기에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고 있는 두분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박완서씨가 한참 나이가 많지만 상대방에게 지극한 존경심을 보이고 이렇게 인생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히며 얘기할수 있다는게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나도 몇십년 후, 나와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맛깔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싶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내게 조금은 낯선 사람인 방혜자씨와 이인호씨의 대화속에선 한국에서의 여성의 삶 이라는게 어떤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주었다. 우리 어머니 세대까지만 해도 외국 유학은 꿈도 꿀수 없었고 중학교,고등학교에 다니는 것만도 힘들었던 시대였다. 그런데 이 두분은 가족의 지원을 등에 업고 프랑스와 미국 유학을 다니며 그 시대 여성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그 당시엔 파격적이고 대단한 일이었으리라.

그녀들은 외국 유학을 하면서 자신의 꿈을 키웠고 세계에서 많은 인정을 받는 여성으로서 살게 되었다. 지금도 한국은 우수한 여성 인력을 요직에 활용하는 측면에서 보면 확실히 후진적인 나라다. 그러니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했을 것이다. 또 지금은 여성 국무총리까지 나오게 됐지만 이인호씨가 러시아 대사로 임명됐을땐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남자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러시아 전공을 바탕으로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대사가 되었다. 여성이라는 편견을 깨고 재능있는 여성들을 잘 활용하는 나라가 곧 강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의 글귀 중에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글귀는 "열매가 익어서 꼭지가 똑 떨어지듯이 자연스럽게 생을 마무리 하고 싶다"는 방혜자씨의 말이었다. 정말 무릎을 탁 칠 정도로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요즘 사람들은 웰빙이라는 말에 집착하며 물질,정신적인 풍요를 무척이나 원한다. 돈에 대한 끝없는 욕심을 부려 결국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내면적인 공허함을 얻게 된다. 그런 시대 풍토 속에서 방혜자씨의 말은 많은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과하게 욕심 부리지 않고 내게 주어진 생을 열심히 살다가 마무리 하겠다는 말 속엔 그 무엇보다도 큰 지혜가 담겨져 있다. 존경스러운 4분의 조용하고 열정적인 대화속에서 많은 깨달음과 평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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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바이올린
진창현 지음, 이정환 옮김 / 에이지21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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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의 음색에 반해서 자신의 젊은날을 바이올린 제작에 몸바친 진창현씨의 인생 이야기는 너무도 굴곡지고 드라마틱해 왜 그의 삶을 다룬 책과 드라마가 나왔는지를 짐작하게 만들었다. 일제치하 시절 집에서 하숙한 일본인 선생님의 바이올린 소리를 처음으로 듣고 바이올린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그가 결국 일본에서 바이올린을 제작하기까지의 여정은 식상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눈물없인 볼수없는 나날들 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 시절, 어머니와 여동생을 남겨두고 어린나이에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야했던건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힘겨운 상황속에서 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해야 했지만 모교의 영어선생님이 되고싶다는 꿈이 있었기에 견딜수 있었다. 하지만 조국으로 돌아갈수도 없었고 돌아간다해도 일본의 교사자격증 으로는 선생님이 될수 없었다. 그렇다고 일본에서 교사가 된다는건 더욱더 불가능한 꿈이었다.

린타쿠를 몰며 영어를 배우고 빠찡코에서 일을 하며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도 버거운 현실이었다. 그런 그에게 "바이올린의 신비"라는 강연은 그의 미래를 바꾸는 큰 계기가 되었다. 그 강연을 통해서 바이올린 제작에 청춘을 걸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세기의 명기로 일컬어지는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만들고싶은 그의 열망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는 바이올린 연주보다 더 험난하고 고된,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바이올린 제작에 대해 배울수 있는 교재는 없었고 일본 제작자들은 그가 조선인 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자로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하지만 이런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그는 집념을 가지고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여러번 제작자들의 집을 찾아다니고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바이올린 공장 근처에서 노숙을 하면서 매일 찾아가고 힘든 노동을 하면서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집념은 이 시대 젊은이들이 잃어버린 그 무엇을 떠올리게 한다. 어려운 고비를 만나면 금새 포기하고 상처받은 일이 생기면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나약한 젊은이들과 비교해 진창현씨의 포기하지않는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고된 육체적 노동을 하면서도 자신만의 바이올린을 하나 둘 완성해 나가고 홀로 고군분투하며 서서히 능력을 쌓아갔던 것이다.

이렇게 그가 오로지 바이올린 제작에 힘쓰고 있는동안 조선에 있는 그의 가족은 힘든 생활을 하고있었다. 일제치하에서 해방되었지만 곧바로 전쟁이 발발해 목숨까지 위협받으며 힘들게 살아간 어머니와 여동생의 사연은 가슴이 시릴만큼 안타까웠다. 일본에서 힘들게 살아갈 아들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가슴 뭉클한 모성을 느꼈다. 하나뿐인 아들을 너무도 어린 나이에 일본에 보내야 했고 몇십년이 흘러서야 봐야했던 그 긴 세월동안 어머니의 그리움은 얼마나 절절하고 깊었을까. 또 어머니를 모시고 괴로운 결혼생활을 인내하며 살아갔던 여동생의 사연은 같은 여자로서 더욱 더 가슴아팠다.

진창현씨가 "동양의 스트라디바리"라고 불리게 된 데는 그 자신의 힘겨운 노력도 있었지만 긴 세월동안 묵묵히 어려운 상황을 참고 살아간 가족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들의 꿈을 위해 희생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그 사랑이 없었더라면 진창현씨가 지나온 길은 더 힘들었을지 모른다. 어린시절 약장수의 서투른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며 가슴이 설레였던 어린 진창현씨가 아이카와 선생님의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꿈을 꾸었고 끝내는 바이올린 제작자로 세계에 이름을 떨치게 된 인생사는 너무도 감동적인 한편의 드라마였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가족의 헌신적인 사랑이 이루어낸 금빛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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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프스튜 자살클럽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 지음, 이은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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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마저 받아들이게 만들만큼 최고의 음식을 먹는 기쁨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또한 사람들은 자신이 최고로 좋아하는 음식이 딱 한접시 남았다면 그것을 먹을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 당연히 식욕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그 음식을 먹을것이다. 하지만 그 음식을 먹고난 후에 반드시 죽는다면 선뜻 그 음식을 선택할수 없을것이다.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목숨과 음식을 바꾸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황홀할만큼 굉장한 맛을 내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식탐보다 더 중요한건 살고자하는 욕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니엘에게 우연히(?) 나타난 루시디오의 요리솜씨는 비프스튜 클럽 회원들에게 극도의 기쁨을 주는 동시에 죽음을 선사하게 된다. 그리고 회원들은 기꺼이 이 죽음의 레이스에 동참하게 된다. 올해로 클럽이 생긴지 22년이 되었지만 몇년전 클럽을 만들고 중심적인 인물에 섰던 라모스의 죽음으로 클럽은 쇠퇴기에 이르게 된다. 더이상 그들에게 찬란했던 우정은 찾아볼수 없고 한달에 한번 만나는 모임도 엉망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런 순간에 짠 하고 나타나 회원들의 입맛을 사로잡아버린 루시디오의 존재는 우정과 클럽 존속에 크나큰 희망을 갖게 만드는 계기였다.

그러나 달콤하고 행복했던 첫번째 모임에서 아벨은 루시디오가 건네준 마지막 한접시의 음식을 먹고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이를 시작으로 한달에 한번씩 그들은 모임을 가질때마다 마지막 음식을 먹은 사람의 장례식을 치뤄야했다. 계속 이어지는 의문의 심장마비는 어느 누가봐도 루시디오의 소행이었다. 그렇지만 이 못난 10명의 회원들은 여자친구와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만찬을 계속 이어나간다. 대체 루시디오는 무슨 꿍꿍이로 이런 일을 벌이는지에 대해 그들은 따지고 캐묻지 않는다. 오히려 루시디오를 방해하면 그가 자신들을 떠날까봐 두렵다고까지 말한다. 더이상 최고의 음식을 맛보지 못할까봐 말이다.

클럽의 부흥기땐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았지만 지금은 스스로를 인생의 낙오자라고 말하며 붕괴되고 망가진 비프스튜 클럽의 회원들. 젊었을 적 잘나가던 인생을 더이상 살지못하는 그들에게 죽음은 어쩌면 자신이 받아야할 댓가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어긋나버린 우정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이 만찬에서 빠지면 먼저 죽은 친구들이 불공평하고 억울할것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남자들의 이상한 유대감도 엿보인다. 생애 마지막 음식이 될, 루시디오가 건네준 마지막 한접시의 음식을 먹으며 그들은 반항 한번 하지 않고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들이 가진 유일한 식탐으로 인해 말 많고 탈 많은 인생의 종지부를 찍으려는 듯이.

절대로 이해할수 없는 그들의 모습은 안쓰럽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의 화자이자 유일한 생존자인 다니엘의 말대로 루시디오가 범인인것도 우리는 처음부터 알고 읽었었다. 그가 의도적으로 다니엘에게 접근했고 파리 목숨처럼 회원들의 생명을 너무도 쉽게 죽이는것도 지켜봐왔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만찬에 모두 다 참석해 도망가는 사람 하나 없었다는게 신기할 뿐이다. 클럽이 만들어지게 된 알베리바의 비프스튜 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극도의 흥분과 쾌락을 느끼다 죽음을 맞은 그들. 어느모로보나 불행한 피해자였을 회원들 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나 또한 루시디오의 음식을 사양하지 못할거란 생각이 드는건 왜 일까.

내가 절대로 거절하지 못할 음식을 건네주어서 최고의 행복을 느끼며 죽는 것. 그것이 웬지 모르게 최고의 죽음이란 생각이 드는걸 보면 나 또한 구제불능 일지 모른다. 그나저나 유일한 생존자인 다니엘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지고 다뇨를 루시디오에게 대접받는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그 또한 죽음의 천사를 만나게 될까. 괜스레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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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1
이시다 이라 지음, 김성기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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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부쿠로에 사는 아이들은 꽤나 위험하고 무서운 녀석들이다. 정말 10대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그들의 삶의 모습은 무척이나 거칠고 가까이가기 두려울 정도다. 하지만 먼 발치에서 보지않고 한발짝 그들에게 다가가면 의외로 순수하고 인정많고 귀여운 모습을 발견할수 있다. 물론 그들은 귀엽다는 말에 진저리를 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비록 그들의 미래가 환하고 밝진 않을지라도 자기 앞에 닥쳐온 사건을 몸으로 부대끼며 이겨내고 해결해 나가는 모습에 빙그레 웃음이 흘러나온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모든 사건의 해결을 맡고있는 마시마 마코토는 어머니의 과일가게를 잠깐씩 도와주는, 일명 백수다. 어른들이 봤을땐 젊은 나이에 일도 하지 않고 공부도 하지않는 그를 보며 걱정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케부쿠로의 아이들에게 마코토는 꽤나 특별한 존재가 된다. 처음엔 친한 친구를 죽게 만든 연쇄살인범을 찾기위해 친구들을 동원하고 결국 범인을 잡게되는데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이케부쿠로 아이들의 평화 해결사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물론 마코토가 원해서 된게 아니라 어찌어찌 부탁을 들어주다보니 그렇게 됐지만 말이다.

마코토는 남자답고 강하고 모든일에 거침없는,흔히 마초스타일의 캐릭터가 아니라 단지 우정을 위해 사건에 뛰어들고 그 공로를 뻐기지 않으며 친구들과의 의리를 지킬줄 아는 사람이다. 또 그가 사건을 해결하는건 무슨 댓가를 바래서도 부귀영화와 명예를 위해서도 아니다. 그래서 마코토는 멋있고 믿음직하고 신뢰감을 준다. 소위 말하는 쿨 한 사람이 바로 마코토가 아닐까 싶다. 겉모습은 한량 백수 일지 모르지만 그 누구보다도 속이 꽉차고 겉멋이 들지 않는 사람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절로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이 떠올랐는데 그만큼 유쾌하게 읽을수 있고 소위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점이 비슷해서이다. 하지만 조금 엉뚱하고 귀엽고 정신세계가 4차원인 가네시로 가즈키 아이들에 비해 이시다이라의 아이들은 전문가들 뺨치는 장비와 조직력을 바탕으로 일을 해결하기 때문에 훨씬 더 영리해보인다. 게다가 엄청난 정보력을 바탕으로 한걸음 한걸음 사건 해결의 열쇠에 다가가는 그들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물론 두 책 다 만화같고 비현실적이라는 부분에선 비슷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우리나라도 예외일순 없지만)을 너무도 자세히 그려내서 어둡고 음산한 느낌도 준다. 아이들의 치기어린 농담과 빠른 스피드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즐거움을 주지만 원조교제,마약,살인,도를 넘는 패싸움 이라는 소재는 그 자체로 서글프고 어두운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에 분위기가 무거워질수 밖에 없는것이다. 꼭 이시다 이라의 소설인 "LAST"의 밝고 젊은 버전을 보는 기분이다. "LAST" 가 끔찍하고 외면하고 싶은 삶의 끝을 보여주었다면 이 책은 마코토와 이케부쿠로 아이들이 어른들이 만들어낸 지저분한 일들을 직접 해결했다는게 다른 점이다.

사람들은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에 모인 아이들을 보며 혀를 찰지도 모르지만 어른들이 만들어낸 사회가 더 위험하고 안타깝고 끔찍하다. 잔인한 폭력을 보여주는 것도 어른이고 여자 아이들의 몸을 노리고 접근해 돈으로 쾌락을 사는것도 어른들이다. 아이들의 패싸움을 뒤에서 조종하며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려는 야쿠자들의 모습에선 비열한 어른들의 세계를 엿볼수 있다. 어른들이 보면 불량청소년들이 어울리는 세계일 뿐이지만 그들도 나름대로의 규칙과 정의가 있다. 그리고 그 규칙이 이지러지는 순간을 고치고 다시 예전의 세계를 만들면서 살아간다. 적어도 그들은 아비규환인 어른들의 사회와는 다른 건강함이 있다. 그리고 그 건강함을 만들어 내는건 바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다. 너무나 멋진 이 아이들을 위해 엄지손가락을 하늘 높이 치켜세우며 "너희들, 정말 멋져!"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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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눈동자 1939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
한 놀란 지음, 하정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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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있어 히틀러의 등장은 씻을수 없는 고통과 재앙을 예고하는 시발점이었다. 유대인을 말살한다는 나치스의 '인종청소'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인들의 가슴에 뼈아픈 역사로 기록되어져있다. 서로 평등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유대인들보다 더 우월한 종자라고 외치는 그들의 행보는 너무도 많은 피를 흘리게 만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수 있었는지, 이처럼 경악스럽고 끔직한 일이 자행되었다는 그 사실을 떠올리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고 두려워진다. 하물며 유대인 학살을 직접 겪은 그들의 심정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세계인들은 두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되는 이런 끔찍한 일을 겪으면서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반성하고 후손들에게 생생한 증언을 하기위해 기록하고 있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를 잃고 수용소에 갇히며 목숨을 부지하기위해 짐승처럼 살았던 그 시대의 아픔을 다시 겪지 않기위해서 말이다. 인간을 개,돼지보다 못한 처우를 하며 사람의 목숨을 너무도 쉽게 여기는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신나치주의'라는 이름으로 활동을하는 사람들이 점차 세력을 떨쳐나가고 있다는 뉴스를 볼때마다 나도 모르게 몸을 부르를 떨게된다. 대체 그들의 머릿속엔 뭐가 들어있는거야! 라는 분노와 함께 자신들을 우월하다고 믿는 그들의 외침에 침을 뱉고 싶어진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의 좋지않은 상황을 개선하는 대신 타인에 대한 분노로 표출하고 있는,세상에서 가장 나약하고 불쌍한 사람들일지 모른다.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지 않기위해 표독스러운 발톱을 내세우고 타인을 공격하는 그런 비열하고 더러운 사람들이다.

'신나치주의'에 가입함으로써 어머니와의 불화로 생긴 분노를 표출하는 10대소녀 힐러리는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게 된다. 그리고 그 위험한 순간에 그녀는 꿈속에서 유대인 소녀 샤나를 만나게 된다. 자신이 샤나의 입장에서 나치스에 의해 자행되는 끔찍한 상황을 겪게되고 유대인들의 비참한 역사를 몸소 체험하게 된다. '신나치주의'에서 활동하는 힐러리가 나치스에 의해 핍박받는 유대인 소녀가 된 것이다. 샤나가 된 힐러리는 아버지의 총살과 어머니와 사랑하는 동생들과의 헤어짐을 겪고 할머니와 함께 수용소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그녀가 살아남기위해 겪었던 일들은 차마 입밖으로 낼수 없을만큼 끔찍한 것들이었다. 냄새나고 맛없는 스프를 먹고 힘들게 일을 하는 동안 또 다른 한편에선 시체를 태우는 연기가 끊임없이 나오는 그런 상황이었다. 이 곳에서 몇달간 버티는 것 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할수밖에 없었고 살아남기위해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는 수용소 선배의 말은 이 곳의 생활이 얼마나 척박하고 무서운지를 알게해준다. 오직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모질고 끔찍한 일을 묵묵히 견디는 샤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를 되풀이한다면 샤나와 같은 아이들은 또 생길지 모른다. 자신의 상황에서 비롯된 분노를 다른 종족에게 분출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긴다면 제 2의,제 3의 히틀러가 생길지도 모른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선 '인종청소'라는 말도안되는 일이 자행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유대인 학살로 우리는 인간의 악행에 경악했고 그 많은 피해자들의 숫자에 망연자실 했었다. 그들의 총부리에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죽었고 그 피는 아직도 마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역사를 되풀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면 더이상 인간에게 구원은 없을것이다. 이런 끔찍한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역사를 똑똑히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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