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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삶의 여백에 담은 깊은 지혜의 울림
박완서.이해인.이인호.방혜자 지음 / 샘터사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참으로 따뜻하고 솔직한 대화다.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과 예의가 느껴지고 오랜 세월을 보내며 축적된 깊은 지혜가 유감없이 드러난다. 박완서씨와 이해인씨의 대화 속에서, 방혜자씨와 이인호씨의 대화속에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할 바를 깨닫게 된다. 차 한잔 앞에 놓아두고 두런두런 얘기를 하는 4명의 여성들의 대화속엔 번뜩이는 지성과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얻게된 깨달음이 있다. 참으로 귀중하고 새겨 들을만한 내용들이다.
독자들에게 가장 낯익은 인물은 아무래도 박완서씨와 이해인 수녀가 아닐까 싶다. 소설책과 시집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있는 두 사람은 아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었다. 박완서씨가 남편과 아들을 잃게되어 힘겨운 삶을 지탱해 나가고 있을때 그들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어려웠던 시기에 만나 현재까지 소중한 친구로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인지 두분의 대화는 '슬픔'에 관한 이야기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슬픔과 위로, 그리고 신앙에 대한 이야기들 말이다.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에겐 그냥 내버려 두거나 아주 작은 관심을 가지는게 가장 큰 위로가 된다고 한다. 옆에서 과도하게 위로를 하는건 당사자를 더욱 더 힘들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슬픔은 절대로 극복이 아니며 이길수 있는것도 아니란다. 슬픔을 잊기위해선 기억마저 지워버려야 하는데 사람이 그럴순 없는 것이다. 그저 서서히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이 생길때까지 조용히 내버려두고 슬퍼하는것 외엔 다른 기도가 없다. 지독한 슬픔을 견뎌야했던 박완서씨의 깨달음이기에 더 값지게 들리는것 같다.
이렇게 박완서씨와 이해인씨는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문학과 신앙, 그리고 사랑과 기도에 대한 것들까지 말이다. 일반인들보다 더 엄격한 규율과 잣대를 들이대게 되는 수녀 이해인씨의 인간적인 모습도 볼수 있었다. 젊었을 적 자아에 대한 고민과 자신도 인간이다보니 겪게되는 여러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특히 한 자매를 다른 이들보다 더 특별하게 대했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놀라웠다. 박완서씨도 이런 솔직한 모습에 깜짝 놀랐으니 말이다.
가장 힘든 시기에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고 있는 두분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박완서씨가 한참 나이가 많지만 상대방에게 지극한 존경심을 보이고 이렇게 인생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히며 얘기할수 있다는게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나도 몇십년 후, 나와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맛깔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싶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내게 조금은 낯선 사람인 방혜자씨와 이인호씨의 대화속에선 한국에서의 여성의 삶 이라는게 어떤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주었다. 우리 어머니 세대까지만 해도 외국 유학은 꿈도 꿀수 없었고 중학교,고등학교에 다니는 것만도 힘들었던 시대였다. 그런데 이 두분은 가족의 지원을 등에 업고 프랑스와 미국 유학을 다니며 그 시대 여성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그 당시엔 파격적이고 대단한 일이었으리라.
그녀들은 외국 유학을 하면서 자신의 꿈을 키웠고 세계에서 많은 인정을 받는 여성으로서 살게 되었다. 지금도 한국은 우수한 여성 인력을 요직에 활용하는 측면에서 보면 확실히 후진적인 나라다. 그러니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했을 것이다. 또 지금은 여성 국무총리까지 나오게 됐지만 이인호씨가 러시아 대사로 임명됐을땐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남자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러시아 전공을 바탕으로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대사가 되었다. 여성이라는 편견을 깨고 재능있는 여성들을 잘 활용하는 나라가 곧 강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의 글귀 중에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글귀는 "열매가 익어서 꼭지가 똑 떨어지듯이 자연스럽게 생을 마무리 하고 싶다"는 방혜자씨의 말이었다. 정말 무릎을 탁 칠 정도로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요즘 사람들은 웰빙이라는 말에 집착하며 물질,정신적인 풍요를 무척이나 원한다. 돈에 대한 끝없는 욕심을 부려 결국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내면적인 공허함을 얻게 된다. 그런 시대 풍토 속에서 방혜자씨의 말은 많은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과하게 욕심 부리지 않고 내게 주어진 생을 열심히 살다가 마무리 하겠다는 말 속엔 그 무엇보다도 큰 지혜가 담겨져 있다. 존경스러운 4분의 조용하고 열정적인 대화속에서 많은 깨달음과 평안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