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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바이올린
진창현 지음, 이정환 옮김 / 에이지21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바이올린의 음색에 반해서 자신의 젊은날을 바이올린 제작에 몸바친 진창현씨의 인생 이야기는 너무도 굴곡지고 드라마틱해 왜 그의 삶을 다룬 책과 드라마가 나왔는지를 짐작하게 만들었다. 일제치하 시절 집에서 하숙한 일본인 선생님의 바이올린 소리를 처음으로 듣고 바이올린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그가 결국 일본에서 바이올린을 제작하기까지의 여정은 식상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눈물없인 볼수없는 나날들 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 시절, 어머니와 여동생을 남겨두고 어린나이에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야했던건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힘겨운 상황속에서 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해야 했지만 모교의 영어선생님이 되고싶다는 꿈이 있었기에 견딜수 있었다. 하지만 조국으로 돌아갈수도 없었고 돌아간다해도 일본의 교사자격증 으로는 선생님이 될수 없었다. 그렇다고 일본에서 교사가 된다는건 더욱더 불가능한 꿈이었다.
린타쿠를 몰며 영어를 배우고 빠찡코에서 일을 하며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도 버거운 현실이었다. 그런 그에게 "바이올린의 신비"라는 강연은 그의 미래를 바꾸는 큰 계기가 되었다. 그 강연을 통해서 바이올린 제작에 청춘을 걸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세기의 명기로 일컬어지는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만들고싶은 그의 열망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는 바이올린 연주보다 더 험난하고 고된,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바이올린 제작에 대해 배울수 있는 교재는 없었고 일본 제작자들은 그가 조선인 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자로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하지만 이런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그는 집념을 가지고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여러번 제작자들의 집을 찾아다니고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바이올린 공장 근처에서 노숙을 하면서 매일 찾아가고 힘든 노동을 하면서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집념은 이 시대 젊은이들이 잃어버린 그 무엇을 떠올리게 한다. 어려운 고비를 만나면 금새 포기하고 상처받은 일이 생기면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나약한 젊은이들과 비교해 진창현씨의 포기하지않는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고된 육체적 노동을 하면서도 자신만의 바이올린을 하나 둘 완성해 나가고 홀로 고군분투하며 서서히 능력을 쌓아갔던 것이다.
이렇게 그가 오로지 바이올린 제작에 힘쓰고 있는동안 조선에 있는 그의 가족은 힘든 생활을 하고있었다. 일제치하에서 해방되었지만 곧바로 전쟁이 발발해 목숨까지 위협받으며 힘들게 살아간 어머니와 여동생의 사연은 가슴이 시릴만큼 안타까웠다. 일본에서 힘들게 살아갈 아들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가슴 뭉클한 모성을 느꼈다. 하나뿐인 아들을 너무도 어린 나이에 일본에 보내야 했고 몇십년이 흘러서야 봐야했던 그 긴 세월동안 어머니의 그리움은 얼마나 절절하고 깊었을까. 또 어머니를 모시고 괴로운 결혼생활을 인내하며 살아갔던 여동생의 사연은 같은 여자로서 더욱 더 가슴아팠다.
진창현씨가 "동양의 스트라디바리"라고 불리게 된 데는 그 자신의 힘겨운 노력도 있었지만 긴 세월동안 묵묵히 어려운 상황을 참고 살아간 가족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들의 꿈을 위해 희생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그 사랑이 없었더라면 진창현씨가 지나온 길은 더 힘들었을지 모른다. 어린시절 약장수의 서투른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며 가슴이 설레였던 어린 진창현씨가 아이카와 선생님의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꿈을 꾸었고 끝내는 바이올린 제작자로 세계에 이름을 떨치게 된 인생사는 너무도 감동적인 한편의 드라마였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가족의 헌신적인 사랑이 이루어낸 금빛 성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