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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프스튜 자살클럽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 지음, 이은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죽음마저 받아들이게 만들만큼 최고의 음식을 먹는 기쁨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또한 사람들은 자신이 최고로 좋아하는 음식이 딱 한접시 남았다면 그것을 먹을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 당연히 식욕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그 음식을 먹을것이다. 하지만 그 음식을 먹고난 후에 반드시 죽는다면 선뜻 그 음식을 선택할수 없을것이다.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목숨과 음식을 바꾸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황홀할만큼 굉장한 맛을 내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식탐보다 더 중요한건 살고자하는 욕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니엘에게 우연히(?) 나타난 루시디오의 요리솜씨는 비프스튜 클럽 회원들에게 극도의 기쁨을 주는 동시에 죽음을 선사하게 된다. 그리고 회원들은 기꺼이 이 죽음의 레이스에 동참하게 된다. 올해로 클럽이 생긴지 22년이 되었지만 몇년전 클럽을 만들고 중심적인 인물에 섰던 라모스의 죽음으로 클럽은 쇠퇴기에 이르게 된다. 더이상 그들에게 찬란했던 우정은 찾아볼수 없고 한달에 한번 만나는 모임도 엉망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런 순간에 짠 하고 나타나 회원들의 입맛을 사로잡아버린 루시디오의 존재는 우정과 클럽 존속에 크나큰 희망을 갖게 만드는 계기였다.
그러나 달콤하고 행복했던 첫번째 모임에서 아벨은 루시디오가 건네준 마지막 한접시의 음식을 먹고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이를 시작으로 한달에 한번씩 그들은 모임을 가질때마다 마지막 음식을 먹은 사람의 장례식을 치뤄야했다. 계속 이어지는 의문의 심장마비는 어느 누가봐도 루시디오의 소행이었다. 그렇지만 이 못난 10명의 회원들은 여자친구와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만찬을 계속 이어나간다. 대체 루시디오는 무슨 꿍꿍이로 이런 일을 벌이는지에 대해 그들은 따지고 캐묻지 않는다. 오히려 루시디오를 방해하면 그가 자신들을 떠날까봐 두렵다고까지 말한다. 더이상 최고의 음식을 맛보지 못할까봐 말이다.
클럽의 부흥기땐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았지만 지금은 스스로를 인생의 낙오자라고 말하며 붕괴되고 망가진 비프스튜 클럽의 회원들. 젊었을 적 잘나가던 인생을 더이상 살지못하는 그들에게 죽음은 어쩌면 자신이 받아야할 댓가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어긋나버린 우정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이 만찬에서 빠지면 먼저 죽은 친구들이 불공평하고 억울할것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남자들의 이상한 유대감도 엿보인다. 생애 마지막 음식이 될, 루시디오가 건네준 마지막 한접시의 음식을 먹으며 그들은 반항 한번 하지 않고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들이 가진 유일한 식탐으로 인해 말 많고 탈 많은 인생의 종지부를 찍으려는 듯이.
절대로 이해할수 없는 그들의 모습은 안쓰럽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의 화자이자 유일한 생존자인 다니엘의 말대로 루시디오가 범인인것도 우리는 처음부터 알고 읽었었다. 그가 의도적으로 다니엘에게 접근했고 파리 목숨처럼 회원들의 생명을 너무도 쉽게 죽이는것도 지켜봐왔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만찬에 모두 다 참석해 도망가는 사람 하나 없었다는게 신기할 뿐이다. 클럽이 만들어지게 된 알베리바의 비프스튜 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극도의 흥분과 쾌락을 느끼다 죽음을 맞은 그들. 어느모로보나 불행한 피해자였을 회원들 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나 또한 루시디오의 음식을 사양하지 못할거란 생각이 드는건 왜 일까.
내가 절대로 거절하지 못할 음식을 건네주어서 최고의 행복을 느끼며 죽는 것. 그것이 웬지 모르게 최고의 죽음이란 생각이 드는걸 보면 나 또한 구제불능 일지 모른다. 그나저나 유일한 생존자인 다니엘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지고 다뇨를 루시디오에게 대접받는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그 또한 죽음의 천사를 만나게 될까. 괜스레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