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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의 날씨
볼프 하스 지음, 안성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흥미롭게도 여기자와 작가 볼프 하스의 인터뷰를 통해 소설을 유추해낼수 있게 만든다. 덕분에 처음부터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진 않았다. "15년전의 날씨"가 어떤 내용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자와 작가가 나누고 있는 책에 관한 대담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이지를 거듭할수록 작가가 쓴 책의 내용이 서서히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하고 인물들의 성격,직업,친구 관계 등에 대한 정보를 알수있었다.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처음엔 모호했던 이야기들이 점차 윤곽을 드러내게 되면서 이야기는 흥미로워진다.
작가는 한 프로그램에 등장한 코발스키를 보고 책을 만들게 된다. 독특한 사연을 가진 이 남자에게 매료된 작가는 평소의 게으름을 일순간에 떨쳐버리고 당장 그를 찾아나서게 된다. 그렇게 만난 코발스키와 주변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15년전의 날씨"라는 책이 탄생하게 되고 이제 이 책을 가지고 기자와 작가는 인터뷰를 하게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코발스키의 사연은 과연 어떤 것일까?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매년 똑같은 곳으로 휴가를 떠나게 된 코발스키는 어떤 사건 이후로 그곳에 더이상 가지 않았다. 무려 15년 동안이나 오스트리아 산골 마을에 발길을 끊은 것이다. 풋사랑을 나누었던 휴양지의 소녀 아니를 15년간 보지 않고 의식적으로 잊어버리려 노력한 코발스키. 이제 그에게 산골 마을과 아니는 옅은 추억으로 남아있을만큼 긴 세월이 흘러버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는 그 마을의 15년간 날씨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외웠다. 그는 왜 산골 마을의 날씨를 외웠을까? 그곳에 가지 않게 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멀리 떨어진 산골 마을의 날씨를 외울 정도면 한번쯤 가볼만도 한데 그는 왜 이토록 오랜 세월을 보낸것일까?
하지만 궁금증에 대한 답변은 인내심을 가지고 책을 끝까지 읽어야만 해결할수있다. 총 5일동안 인터뷰가 진행되는데 기자와 작가의 대화를 따라가야만 그 윤곽을 확인할수 있는 것이다. 정말 독특한 형식이라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들의 만담같은 이야기에 중독되어갔다. 특히 이 책엔 유머가 가득한데 시시때때로 삼천포로 빠지는 작가의 모습도 재밌었고, 여성과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바라보는 기자의 기상천외한 상상력도 즐거웠다. 작가가 아무 의미없이 쓴 글을 기자는 어떤 암시가 있는거 아니냐며 물어보고, "15년전 날씨"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사가 혹시 작가의 생각이 아니냐며 따지고 캐묻는다.
같은 문화권 이었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수 있었을텐데 라는 아쉬움은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번역하는게 꽤 힘들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그리고 "은별 오르가즘" 이나 "느낌 테러"라는 단어는 의미가 불분명해 이해가 쉽지 않았는데 몇 페이지 뒤에 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이런 부분이 꽤 많아서 페이지를 수시로 넘나들며 읽어야 했다. 조금 번거롭기도 하고 100%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뒤로 갈수록 궁금했던 부분이 나오면서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분명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면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인터뷰 형식이라 해서 딱딱한 분위기일줄 알았는데 오히려 코믹한 쪽에 가까웠다. 썰렁한 농담이 난무하고 너무 말이 많아 이야기가 옆길로 새는 모습에선 풋 하고 웃음이 나온다. 인터뷰가 종료된 후에 작가와 기자가 나눌 은밀한 진실을 같이 듣고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들의 인터뷰가 즐거웠다. 책을 다 읽고난 지금 볼프하스, 이 작가가 너무 친근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