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렌즈 - 2007 제31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홍 지음 / 민음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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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한 표지가 기분 좋게 해주는 [걸 프렌즈]를 처음 봤을땐 여자들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 일거라고 지레 짐작했다. 그런데 걸 프렌즈는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단순한 여자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무려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연적들이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남자친구의 여자를 친구로서 받아들일수 있을까? 고까운 마음없이, 질투 없이 우정을 쌓아갈수 있을까? 내 대답은 뻔하다. 절대 있을수 없는 일이다. 솔직히 지금 맺고있는 인간관계도 유지하기 어려운데 그런 요상한 관계를 또 만들고 싶진 않다. 이런 이야기는 영화나 책 속에서만 가능하다.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게 연애하는 거라고 항변하면 할말이 없겠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내 남자를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싫을 뿐 더러,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보일것 같다. 나 라는 여자는 그 사람에게 겨우 이정도 였나? 당연히 1순위인줄 알았는데 나한테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다른 여자에게서 찾는다고 생각하면 자존심도 상한다. 괜히 마음 졸이고 신경 쓰기보단 그냥 편하게 관계를 끝내는게 나을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의 여자들은 그런걸 감수하고서 유진호와의 관계를 유지해나간다. 이 여자들의 마음이 넓은 걸까, 아니면 유진호 라는 남자에게 헤어나올수 없는 강력한 매력이 있는걸까? 모든 사랑이 다 한결같은 모습은 아니겠지만 분명 이들의 사랑은 이해못할만큼 특이하다. 과연 현실에 이런 사랑이 있을까 싶다.

이 책의 화자인 한송이는 딱히 눈에 띄지도 않던 직장 동료 진호와 우연찮게 키스를 하게 된다. 회식 후 들른 술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다 갑작스레 키스를 하게 됐는데 평범해 보이는 이 남자의 키스 실력이 수준급이다. 마치 피겨스케이팅 선수 같다고 표현한 송이의 소감을 들어보면 대충 짐작이 될 것이다. 이 키스 하나때문에 송이는 그와의 만남을 시작하게 되고 만나면 만날수록 대화가 통하고 음식 취향도 같은 그에게서 호감을 느끼게된다. 젊은 시절의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은 결코 아니지만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이 연애가 송이로선 싫지가 않다. 게다가 그와의 섹스는 너무도 즐겁고 궁합도 맞는것 같다. 결혼은 아니더라도 연애 하기엔 딱인 남자다.

하지만 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걸 알게되면서 송이의 혼란은 시작된다. 그것도 한명이 아니라 두명이다. 나 같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겠다. 그렇지만 송이는 일단 그 여자와 만나기로 한다. 불륜 드라마처럼 서로 머리 끄덩이 잡고 싸우진 않겠지만 일단은 자초지종을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진과 보라와 만나면서 송이는 전투력을 상실한다. 서로 눈을 흘기는게 아니라 상대방을 인정하는 분위기이고 그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결국 송이는 이 요상한 관계에 점차 물들어간다. 남들이 보면 이해할수 없는 일이지만 그녀들에겐 가능한 일이다. 다양한 패스트푸드를 전전하면서 다양한 맛을 즐기는 것처럼 사랑도 그렇게 할수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송이를 바람둥이 남자친구를 둔 피해자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을 주도적으로 하는 자율적인 여성으로 묘사한다. 또 사랑의 결말이 꼭 결혼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냥 이 순간을 즐기고 자신을 사랑하는 송이의 모습과 걸프렌즈 라는 이름하에 모인 세진과 보라의 관계에 집중한다. 글쎄, 난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녀들은 과연 행복할까 라는 의문만 생긴다. 책은 술술 읽히지만 난 이들의 사랑과 우정(?)을 이해할수 없었다. 그리고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참 쉽게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작가는 창작의 고통을 느꼈겠지만 내게 강한 인상을 남기지도 못했고 실망만 안겼다. 아무래도 [오늘의 작가상]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겠다. 또 이 책이 상을 받았다면 다른 경쟁작들의 수준은 얼마나 낮을까를 떠올리니 한국 소설의 미래가 암담해졌다. 부디 나의 기우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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