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여섯 살 때부터 카메라를 수집했다. 외할아버지가 은퇴해 포트로더데일의 콘도에 살고 있었는데, 거기서 탁자에 놓인 낡은 브라우니 카메라를 보았다. 나는 브라우니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들여다본 순간 그 즉시 사로잡혔다. 마치 작은 구멍을 통해 세상을 엿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 개의 이미지로 시야를 좁힐 수 있어 주위 모든 사물을 다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감수성이 예민한 여섯 살짜리 꼬마를 가장 크게 만족시킨 건 렌즈 뒤에 몸을 숨긴 채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꼬마는 카메라 렌즈를 자기 자신과 세상 사이를 가로막는 벽처럼 사용했다. - 알라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나와 함께 학교를 다녔던 거의 모든 아이들에게 ‘성취’라는 말은 단 하나의 의미, 즉, ‘큰돈을 벌다’라는 뜻으로 통했다. 백만 달러 단위의 연봉. 계급 사다리의 맨 위쪽에 오르거나 안정적인 전문직에 뛰어들어야만 얻을 수 있는 돈. 나는 아버지가 제안한 로스쿨 예비과정을 마쳤지만(틈을 내 사진 수업도 들었다), 마음속으로 늘 다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에게 더 이상 생활비를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면 ‘성취’라는 말과 완전 작별하겠다고. - 알라딘
사람도 없었다. 여름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여름에는 달빛 아래에서 핫도그를 먹는 게 로맨틱하다고 생각하는 피서객들로 붐빌 테니까. 다행히 오늘밤에는 달도 없었다. 내게는 어둠이 절실히 필요했다. 
조심스레 돛을 내리고 갑판으로 내려갔다. 이제 시작할 때라고 생각하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했다. 그러나 ‘하나하나 차례대로 하면 돼’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 알라딘

월스트리트 변호사 벤 브래드포드가 대서양에서 요트 화재와 폭발로 사망한 지 12일이 흐른 지금 뉴욕 주 경찰 수사관은 네 가지 사망 원인을 제시했다. 
뉴욕 주 경찰의 자넷 커트플리프 대변인이 오늘 기자들과 만나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블루칩 호의 잔해를 철저히 감식한 결과, 이 사건의 수사는 이제 종결짓기로 했으며…….’ 
내가 학수고대했던 기사였다. 이제 깨끗하게 해결된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일주일 동안 더 고속도로에서 헤맸다. 갈 곳도 없이. 뿌리도 없이. 떠돌이로. - 알라딘
숨어 지내야 해. 결과적으로 잘 내린 결정이라고 계속 내 자신을 타일렀지만, 내 머릿속 허영의 목소리가 계속 트집을 잡았다. 
‘갤러리 주인 주디 윌머스가 네 사진을 좋아해 전시회를 제안했잖아. 그런데 뭘 망설여? 조건 때문에 너무 까다롭게 굴어 굴러온 복덩이를 몽땅 걷어차다니.’ 
그래도 최소한 내가 갈등하고 있다는 걸 주디에게 들키지는 않았다. - 알라딘
우리는 모두 모니터 앞으로 모였다. 제인은 인터넷 창들을 열어 미국 주요 신문의 1면들을 보여주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시카고트리뷴》, 《마이애미해럴드》,《USA 투데이》등의 신문 초판 1면이 차례로 나타났다. 그 1면들 모두에 죽은 소방관과 애통해 하는 상관을 찍은 내 사진으로 채워져 있었다. 
‘사진 : 게리 서머스 / 《몬태난》지’라는 작가 소개도 빠짐없이 들어 있었다. 
제인이 말했다. 
“이제 게리 서머스 씨는 너무 유명해졌어요.” - 알라딘

나는 브라우니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들여다본 순간 그 즉시 사로잡혔다. 마치 작은 구멍을 통해 세상을 엿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 개의 이미지로 시야를 좁힐 수 있어 주위 모든 사물을 다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감수성이 예민한 여섯 살짜리 꼬마를 가장 만족시킨 건 렌즈 뒤에 몸을 숨긴 채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꼬마는 카메라 렌즈를 자기 자신과 세상 사이를 가로막는 벽처럼 사용했다. 에피파니

"제법 위트는 있지만 뛰어난 사진은 아니야. 너무 머리를 쓴 티가 나니까. 내 사진은 지나치게 사람들의 눈을 의식한 게 드러나. 자기가 찍은 인물사진들과 다른 점이야. 자기 사진들은 우연히 찍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 장 한 장 찍을 때마다 철저하게 계산하고 심사숙고한 게 분명하지. 그럼에도 마치 우연히 찍은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거야. 그건 아마도 대단한 기술에 속할 거야."
죽음에 가까이 가보고 나서야 목전에 임박한 위험이 사진가에게는 더할 수 없이 매력적인 상황이란 걸 알게 되는 것이다. 사진가는 모든 장면을 뷰파인더를 통해 보기 때문에 위험에는 어느 정도 면역이 된다. 카메라가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카메라 뒤에 있으면 어떤 피해도 입지 않을 듯 느껴진다. 카메라 덕분에 위기 상황에 대한 면책특권을 얻는 것이다. 에피파니
...기자는 청소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장면의 세세한 부분들을 모은다. 그 세세한 것들이 한데 모이면 '큰 그림'이 완성된다. 사진가는 늘 상황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영상 하나를 원하지만 작가는 작은 일들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세밀한 묘사가 없는 이야기는 맥없고 심심할 수밖에 없으니 좋은 글을 쓰려면 균형감을 유지해야 한다. 글 전반에 작가의 시각이 담기지 않으면 독자는 작가가 관찰한 바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없다. 에피파니

나는 미국 생활의 자명한 진리 중 하나를 깨닫게 됐다. 일단 인기를 얻으면 어디서나 그 사람을 찾는다. 미국 문화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은 늘 무시된다. 고군분투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취급되기 일쑤다. 발행인, 잡지 편집자, 제작자, 갤러리 주인, 에이전트들을 설득하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사람은 낙오자로 취급될 뿐이다. 성공할 수 있는 길은 각자 찾아내야 하지만, 그 누구도 성공을 이룰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다. 명성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 기회를 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더라도, 자기 판단만 믿고 무명의 인물에게 지원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무명은 대부분 계속 무명으로 남는다. 그러다가 문이 열리고 빛이 들어온다. 행운의 밝은 빛에 휩싸인 후로는 갑자기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고 반드시 써야 할 인물이 된다. 이제 모두 그 사람만 찾는다. 모두 그 사람에게 전화한다. 성공의 후광이 그 사람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에피파니

이제 떠날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식탁 앞에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갖가지 물건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흰 벽, 수공 소나무 캐비닛, 조리대, 주방 기구들, 장식장에 깔끔하게 쌓인 흰 웨지우도 접시들, 메모판에 핀으로 꽂은 가족사진, 냉장고를 장식한 학교 알림장과 애덤의 그림.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놀라게 했다. 공간을 채우고, 시간을 채울 것을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 축적되면 인생이 되는 게 아닐까? 고도

"상대방의 진면목은 나중에야 알 수 있고. 뭐 '경험이란 실수를 좋게 포장한 말일 뿐이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오스카 와일드?" 
"소니 리스턴." 고도

공간을 채우고, 시간을 채울 것을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 축적되면 인생이 되는 게 아닐까? 까이유
누구나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런 자유, 그 텅빈 지붕과 마주하게 되면 두려움밖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란 끝없는 무의 공간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니까, 아무것도 없는 영역을. 까이유
'돈이 곧 자유야' 그렇죠, 아버지. 하지만 그 자유를 얻으려면 일에 몰두해야 하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