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 따윈 몰라 - Who's Camus Anywa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야나기마치 미츠오 감독은 사실 들어 본 적이 없는 감독이었다. 다만 그의 최근작 <까뮈 따윈 몰라>로 처음 알게 되었다. 작품의 연도를 보면 알겠지만, 그의 작품경력은 오래되었다. 경력에 대한 나열은 생략하겠다.


1982년 작품인 <안녕, 나의 대지여>와 1985년 <히마츠리>의 경우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문화와 차이와 사회와 역사에 대한 지식의 부족이 이 두 작품을 난해한 영화로 만들었지만, 작품의 스타일도 이해를 하는데 어려움을 주기 충분했다. 프로그램에서 본 야나기마치 미츠오 감독의 영화들은 극단적 결말들을 가지고 있다. 특히 <안녕, 나의 대지여>와 <히마츠리>는 더욱더 그러하다. <히마츠리>는 감독이 말하길 신의 의지, 혹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인과관계를 성립시킨다고 했는데, 사실상 이러한 이유를 영화로 표현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또한 이해하기도 어렵다. 물론 <히마츠리>라는 영화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묘사는 등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문학적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영화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는 감독과의 대화에서 은유라는 표현으로 그 인과관계를 설명한다고 했는데, 영화의 은유와 문학의 은유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문학적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지점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의 영화에서 보이는 은유는 절대적인 의미를 지닌다. 영화를 보면서 이것은 이해를 할 수도 있고, 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 은유를 이해 못함이 곧 영화전체의 내러티브를 이해 못하는 것으로 연결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영화의 은유는 상대적이어야 한다. 서사와 맥락 속에서 은유가 깊이를 더해주어야 한다. 은유를 이해하든 못하든 관객들은 평등하게 기본적인 이야기를 이해해야한다. 감독은 <히마츠리>라는 영화가 극과극의 평을 얻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어떻게 보면 실험적인 시도였다고 볼 수 있는 나 결과적으로는 훌륭한 영화는 아니라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영화의 결말이자 최고의 사건인 자살과 살인(그것도 아이들까지 죽이는 살인)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심각한 것이다.


야나기마치 미츠오 감독의 가장 최근작 <까뮈 따윈 몰라>는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본 영화다. <히마츠리>때와 20년의 간극이 존재하는데, 그 긴 세월만큼 영화에 접근하는 감독의 태도가 많이 변화되었음을 느꼈다. 또한 영화학과 학생으로 영화 자체가 자기반영적인 부분이 존재해 재미를 더욱 더해주었다.

이 영화의 소재 까뮈의 <이방인>은 이 책을 읽었던 읽지 않았던 영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차이가 없다. 물론 깊이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최소한 <히마츠리>와 같은 어려움은 없다.


하나의 중심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인물들을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현재의 젊은이들에 대한 감독의 시각이 잘 드러난다. 각 캐릭터들을 개성 있게 잘 표현하면서도 그들을 하나로 잘 묶어내고 있다. 이 영화는 실제 살인사건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 살인사건을 까뮈의 <이방인>을 통해 영화로 형상화한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각자의 인물들은 영화로 많은 고민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은 다른 것들로 고민을 한다. 그들은 본질에 대한 이해보다는 다른 것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자연히 영화를 만드는 것에 있어서 깊이와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항상 혼돈스러워 한다. 무엇이 진짜인지? 고민을 하지만, 결코 결론을 내리지는 못한다. 혼돈으로 인한 분열이 각 캐릭터의 공통된 분모이자 이것이 영화의 갈등이다. 현재의 젊은이에 대한 탁월한 표현이자 감독의 관찰력이 굉장히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러나 문제는 마지막 부분이다. 살인과 촬영의 시점이 교차되는 부분을 말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맘에 든 부분이다. 어쩌면 이 마지막 부분은 영화 내에서 도드라지는 스타일 일 수도 있다. 전혀 다른 시점일뿐더러 이 것이 극의 흐름에 전혀 상반되는 지점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느나 이 혼란이 긴장감으로 다가온다. 또한 감독이 관객에서 강력하게 영화에 대해 말을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물들이 겪는 혼란을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던지는 것이다. 인물을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데서 직접 그런 혼란을 겪는 주체로 관객을 몰아넣는 것이다. 과연 이것은 영화내의 영화촬영 장면일까? 아니면 영화내의 진짜 살인 장면일까? 어쩌면 이것은 필자의 확장된 생각일 수 있으나 이 영화에서 제시된 제재(까뮈의 이방인 혹은 실존주의)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이다. <까뮈 따윈 몰라>는 그 전 작품고의 긴 공백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신선한 의지와 변화된 시도 등이 필자에게는 크게 와 닿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다음 작품에서의 발전이 기대되는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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