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형제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의형제  

감독: 장훈


이야기의 소재는 식상하다. 그 식상함의 근원은 케케묵음이다. 그것은 시의성을 시비 거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은 이 영화에서 소재의 식상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제 대한민국에서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현재를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체감하지 못했던 먼 옛날의 이야기나 마찬가지이다. 바로 이 체감하지 못한 영화의 시대적 상황은 그저 관객들에게 알고 있는 역사적? 과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 드라마를 보고 시의성과 소재를 들먹거리지 않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한국의 시대물들은 ‘현재의 어떤 것이 과거에도 있었다.’라는 설정을 자주 이용한다. 항상 이런 설정은 구미를 당기지만, 단지 이 신기함에 머물 뿐 2시간이 이라는 영화적 시간을 채우기에는 너무나 얄팍한 접근이라 한국의 시대물은 항상 망한다. 어쩌면 이것이 헐리우드 시대물과의 가장 확연한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차이점의 가장 큰 근본 원인은 감독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식과 역사 공부에 있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정말 현(現) 관객들은 그것(소재의 식상함)에 관하여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라고 결론을 말할 수 있다. 그러한 허점을 채울 수 있는 뭔가가 있다면 그것은 용서가 된다. 아니, 그리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큰 장점이 작은 결점을 가려주는 것이다. 그것의 가장 큰 힘은 바로 웃음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연스러운 연기에서 나오는 웃음이 포인트다. 영화는 송광호라는 인물을 통해 그만이 할 수 있는 유머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어쩌면 이것이 강동원이라는 인물보다 더 강조되어 문제가 될 정도다. 어쩌면 두 인물의 비중의 문제가 아니라 두 인물 간의 시점 배분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으로 발생되는 문제는 바로 긴장감. 서스펜스다. 너무나 다른 두 인물이 아이러니 하게도 같이 있게 됨으로 발생하는 유머는 있지만 긴장감은 없다.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남녀 두인물이 어쩔 수 없이 같이 있게 됨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구조다. 이 영화는 너무 이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아무리 강동원이 예쁘다 하더라도 이것만으로 영화를 채우기에는 조금 버겁다. 아니 아쉽다. 관객들의 만족도가 높기에 아쉽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필자도 상업영화로서의 완성도 면에서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여주는 특기가 뛰어나다.

두 인물은 같이 있는 목적이 서로 다르다. 그 목적은 다르지만 상충되지 않는다. 그들 각자의 목적이 상대방을 노려봐야지만, 긴장감은 형성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상황의 설명에만 그치고 있다. 어쩌면 이들의 적은 서로가 아닌 각자가 믿고 있는 외부의 어떤 것에 있다. 이 외부의 인물 혹은 조직들이 이들을 노려보는 시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상황의 아이러니함을 극대로 살릴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라 생각하는데, 영화는 그것을 다만, 감정적 차원 혹은 극의 전개의 한 과정으로만 풀어나가고 있다. 그래서...그리고 극의 전개에 있어서도 다소 무리한 부분들이 돌출된다. 이야기의 핍진성이 다소 약하다. 사건이나 감정의 전개가 우연적이거나, 비약적인 경우가 많다. 강동원과 송강화의 만남부터 베트남 갱의 출연, 부분적으로 들어나는 과잉된 가족애. 이 상업영화는 시대의 구 유물이 되어버린 두 인간을 결국 해피하게 만들고 끝이 난다. 물론 관객들은 강동원이 살아있음에 흡족해하며 극장을 나설 수 있다. 결국 가장 불행한자는 정말 끝까지 나라를 위해 싸운 그림자와 국정원 요원들뿐이다.


시대가 이들을 낳고 변화된 시대가 이들을 버리고....그들은 이 변화된 시대에 적응해야하는 그 실존적 문제가 배제되어 있다. 강동원은 끝까지 자신은 배신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물론 나라가 시대가 자신을 배신했음을 알고도...왤까?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해 조금 모호한 것이 아니라 애매한 입장이다. 모호함은 풍성하지만, 애매함은 결핍이다. 개인적으로 짐작하건데 그가 그렇게 까지 소신을 지켜온 것이 가족 때문이었다면 그 명분을 좀 더 살려줬어야 한다. 그리고 그가 국방대학원 교수를 찾아간 이유가 달랐어야 한다. 조국애의 명분은 가족애의 명분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과거 많은 영화들이 조국애를 더 큰 것으로 그렸지만, 그것은 몇몇 위인들의 이야기다. 과거 곽경택의 영화<해적>에서 이정재가 조국애의 명분을 강조하는 것을 보고 코웃음이 나왔던 게 기억난다. 그게 바로 곽경택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끝까지 그것을 버리지 않은 이유를 보여주어야 강동원이 가지고 있는 실존적 무게감이 더 큰 질량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외피는 공동경비구역 JSA와 비슷하다. 하지만, 구(舊) 인물들이 느끼고 있는 신(新) 시대적 상황의 공기를 잡아내지 못하고 있으며, 주제가 가지고 있는 비애감도 약하다. 긴장감, 서스펜스, 아이러니함도 마찬가지다. JSA 비해 인물들 간의 관계가 너무 느슨하기에 이러한 문제가 생긴다. 영화에서 보이는 직업만이 시대적 상황을 보여줄 뿐이다. 영화는 너무 순진하게 이 직업적 표피만을 가지고 요리하려고 든다. 직업이 가질 수 있는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는 듯하다. 아쉬운 부분이다. 블랙 코미디가 될 뻔한 코믹영화는 항상 아쉽기 마련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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