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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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인간 실격>과 <직소(直訴)>의 두 편이 실려 있지만, 나는 <인간 실격>만을 읽었다. 

*”곧 인간의 알뜰함에 암담해지고 서글퍼졌습니다.”(p.14)
*”’공복’이라는 감각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p.14) - 배고픔은 삶에 대한 가장 격렬한 신호가 아닌가?  
*”저한테는 서로 속이면서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자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야말로 난해한 것입니다. 인간은 끝내 저에게 그 요령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p.27) ? 지나치게 순수하거나, 아니면 바보같거나.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이 저를 죽여줬으면 하고 바란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남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p.32) ? 죽음으로써 ‘인간’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기에!
*”넙치의 말투에는, 아니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말투에는 이처럼 까다롭고 어딘지 애매모호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미묘한 복잡함이 있어서, 거의 무익하게 생각되는 이런 엄중한 경계와 무수한 성가신 술책에 저는 언제나 당혹하고 에이 귀찮아, 아무래도 상관없어, 라는 기분이 되어 농담으로 돌리거나 무언으로 수긍하고, 말하자면 패배자의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p.78) ? 그 ‘애매모호함’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다가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세상이란 개인이 아닐까.’하는 생각 비슷한 것”(p.93) ? 타당한 통찰. ‘세상’이나 ‘상식’ 등은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동원된다.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데 거절하면 상대방 마음에도 제 마음에도 영원히 치유할 길 없는 생생한 금이 갈 것 같은 공포에 위협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p.130) ?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냉정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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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조의 수기를 읽으면서 처음에는 그가 찌질하다고 생각했다. “무구한 신뢰심은 죄인가?”(p.119)라고 묻는 요조에게 나는 ‘너 정도 되면 죄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타인과 완전히 소통하는 것은 본래 불가능하며, 그렇다면 타인의 마음의 문이 더 이상 열리지 않는 곳에 도달했을 때 그 문이 열리지 않음을 한탄하면서 칭얼대기보다는 그 선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삶을 다시 모색함이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고, 요조의 번민은 아이의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 읽은 지금에는 오히려 <인간 실격>이 하나의 시금석과 같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요조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문제는 동시에 요조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삶에 대한 기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문제이며, 그것은 결국 지금 내가 인간에 대해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조가 생각하는 인간의 삶은 애매모호함과 체면치레와 거짓과 속임수의 삶이다: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한번도 자기 자신에게 회의를 느낀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편하겠지. 하긴 인간이란 전부 다 그런거고 또 그러면 만점인 게 아닐까. 모르겠다……”(p.17) 이것이 요조가 생각하는 인간의 조건이며, “사람이 사람을 밀쳐내도 죄가 되지 않는 건가요. 저에게 화낼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p.90)라고 기도하며 그 조건에 대해 회의를 품고, 인간의 삶의 속성인 기만과 위선에 적응하지 못하며, 가까스로 가져보는 희망에도 번번히 배신당하는 요조는 인간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편해지지 못하고 결국은 인간 실격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결국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p.13)라는 수기 첫머리에서의 요조의 고백은, 위선과 거짓과 모호함으로 가득한 인간의 삶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사람 사이의 무구한 소통의 가능성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자의 절규에 다름 아니다.

   혹자는 다자이 오사무를 ‘청춘의 한 시기에 통과 의례처럼 거친 뒤 잊히는 작가’(p.180)라고 평하기도 한다지만, 다자이의 소설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가끔씩, 거듭 읽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예전에 비해서 얼마나 사그러들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기대가 배반당하고 사그러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필연일지라도 다자이를 읽음으로써 조금이나마 그 예정된 패배를 늦출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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