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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 지호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0년전만해도 알기 쉽게 쓰여지고, 번역이 잘 된 대중과학서적은 매우 찾아보기 힘들었다. 직역체에 부적합한 단어선택으로 가뜩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을 더욱 더 어렵게 만든 책이 많았다. (원판이 얼마나 좋았던지 간에) 그 와중에도 학위를 받고 전문적으로 과학서적 번역에 힘쓴 분들이 있어서 지금은 좋은 책들이 조금씩 늘어가는 추세다.

이 책은 94년경에 나온 소위 빨간책이라 불리는 『카오스』, 그리고 노벨상 수상자인 일리야 프리고진의 『혼돈 속의 질서』, 그리고 근래에 나왔던 화제작 『링크』의 계보를 잇는 비평형계, 즉 복잡한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에 관한 책이다.  (번역은 사이언스 북스 쪽에서 활약하고 계시는 김희봉님)

17세기 뉴턴 역학은 결정론적인 세계관을 정립했지만, 20세기에 등장한 양자역학은 미시세계는 결정론적이기 보다는 확률론을 따른 다는 것이 밝혀졌고, 20세기 후반에 다시 각광받기 시작한 카오스 이론은 그나마 남은 뉴턴역학의 자리마저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시 결정론적이고 예측가능한 세계에서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막연한 혼돈으로 바뀌어 갈 무렵 나타난 것이 복잡계와 네트워크 과학이다.

 지구과학(지진), 고체물리(자석), 자연(산불), 경제(주식), 역사(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와 실험, 그리고 알기 쉬운 설명으로 이들이 공통적으로 변화들이 프랙탈 성질을 가진다는 것과 멱함수 법칙을 보인다는 것을 납득시켜준다. 이런 다양한 예와 실험이 이 책을 제목인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Ubiquity 에 어울리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단순함이란 우리가 보고 있는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셀 수 없이 많지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세상 자체의 몇가지 근본적인 규칙이라는 것이다. 내용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로 조직화하는 세상이라는 관점 속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 마저도 나름대로 설명가능한 규칙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하지만 어찌보면 굉장히 암담한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다. 결론은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과 격변은 시스템 자체에 포함된 것이라 어쩔 수가 없고, 누구 탓도 아니다"라는 것이니까. 어떤 사건에서 원인을 찾는 일이 부질없는 일 일수도 있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복잡계 & 네트워크 과학은 아직 진보중이고 발전할 여지가 많으니 실망은 이르다. 과연 인간은 예측불가능성과 격변마저도 통제할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는 또 다른 질문이고 후대 과학자들의 일이 되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뉴턴시대에서 카오스의 등장으로 도래한 예측불가능성에서 조금 벗어나 약간의 빛을 본 것으로 위안을 삼아도 좋지 않을까.  패러다임의 변화는 '시각의 변화'로부터 오는 것이니까. 이로서 우리는 2004년에도 훌륭한 대중과학 서적 한 권을 얻게 된 셈이다.

이 책을 재미있게 보신 분들은 『링크』도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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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표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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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술자리에 가면 많이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젊을 때 '놀아본' 이야기다. 젊을 때 안놀아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이 책은 노는 이야기에 그치는게 아니라 그 와중에도 자기 목표를 찾고 그 다음엔 죽도록 노력해서 자기 분야의 장인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국내에서도 팬이 제법 많은 저널리스트다. 지금까지 집필한 책들에도 인터뷰가 많은 편이지만 이 책의 인터뷰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이 사람이 이렇게 이렇게 해서 성공했으니 그렇게 해봐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그런 방법이 통할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의 인생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몇 페이지로 줄여서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아쉽지만, 압축되어있음에도 이들의 이야기에서 꽤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저자의 취재경력과 꼼꼼함 덕분일 것이다. 성공한 사람을 인터뷰한 책은 많지만 많은 분량때문에 압도되거나 그 사람의 이야기에만 너무 몰두하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여러분야의 장인들의 짧은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나와있는 이런 류의 책 중 대부분이 '개인'이나 같은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다치바나씨는 요즘 젊은이들이 싫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패기도 없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너무 짙다고.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에서도 무작정 관료로 진출하려는 도쿄대생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다르다. 모두가 자신을 인정하지 않아도, 자신의 목표를 기준삼아 자신의 길을 걷고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들로부터 힘을 얻어 결국 장인이 된 사람들이다. 좋은 학교를 나오고, 경력을 쌓아 CEO나 사장이 되어 성공한 사람들과는 다른 길이긴 하지만 큰 맥락에서 통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도쿄대생..>에서 지향하는 바도 바로 저런 젊은이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것일거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 <주먹이 운다>에서 식당주인은 강태식에게 말한다. "내가 권투는 잘 모르지만, 조지 포먼이 마흔 다섯에 챔피언 딴 건 안다. 이제 갓 마흔 넘은 새끼가 무슨.. 똑바로 살아"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과 멀지 않을 거다.

 목표를 세우는 것은 쉽지만 온 힘을 쏟아부어 계속 추진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목표를 달성한다. 젊은 나이에 패기하나로 무작정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로 일을 배우러 간 이들이야말로 인생을 "All-in"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인생을 걸고 있는가?"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는걸까" "아니면 그저 인생을 낭비하고 있을 뿐인걸까"등등의 고민을 다시 하게 되었다. (계속 고민중이다) 내용이야 어찌되었건, 그 사람들이 말하는 바가 어떻든, 이런 고민을 하게 해주는 것 자체가 책(혹은 간접경험)의 장점이 아닐까.

 여러 가지 멋진 문구들이 기억에 남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나를 자극했던 것은 "길이 아니면 미련없이 돌아섰다"라는 말. 정도(正道)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매력있는 것은 어쩌면 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평탄한 길을 걸어 착착 경력을 쌓아나간 사람보다는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사람이 더 멋진 법이니까. 하지만 그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이라는 말이 짧은 말에는 매우 긴 세월과 많은 고뇌가 들어있다. 그것을 말로는 모두 표현할 수 없기에 저렇게도 짧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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