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들어와서 처음 접하게 된 외국문학은 시였다. 파울 첼란, 폴 엘뤼아르, 고트프리트 벤, W. H. 오든, 로버트 프로스트, 릴케, 엘리어트, 테드 휴즈(그의 아내였던 실비아 플라스도 " 실비아, 오, 얼마나 멋진 이름인저), 자크 프레베르(김화영 역, 번역이 입에 떡떡 붙어서), 기타 등등. 문학회의 시합평회 같은 자리에서는 외국의 기이한 이름 자체가 권화(權化)로 둔갑하는 법이어서 이상한 이름의 시인들에 관한 수사는 계속되었다. 쥘르 쉬페르비엘, 페터 후헐, 안나 아흐마토바,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오십 만젤시탐, 앙리 미쇼…… 이름 수집은 파블로 네루다에 이르러 끝이 났다. 이름 수집이 끝난 뒤, 나는 비로소 시를 읽기 시작했다. 물론 파블로 네루다로부터 시작했다. 그때는 이미 제대할 무렵이었다. 제대하고 나서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도스토예프스키와 숄로호프는 홍명희, 황석영과 번갈아가며 누가 가(假)이고 진(眞)인가 줄쳐가며 읽었다. 버튼판 아라비안나이트, 삼성판 세계문학전집, 삼성판 한국문학전집이 비벼졌다. 그게 공부였는지, 노동이었는지, 시간 때우기였는지 잘 모르겠다. 셋 다였을 것이다."
책 제목에 질릴 때도 되었으니, 이제, 책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