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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피터 싱어 지음, 노승영 옮김 / 교유서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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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와 저녁식사를 - 신현정 시선집
신현정 지음 / 북인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빨간 우체통 앞에서 / 신현정

새를 띄우려고 우체통까지 가서는 그냥 왔다

오후 3시 정각이 분명했지만 그냥 왔다

우체통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그냥 왔다

난 혓바닥을 넓게 해 우표를 붙였지만 그냥 왔다

논병아리로라도 부화할 것 같았지만 그냥 왔다

주소도 우편번호도 몇 번을 확인했다 그냥 왔다

그대여 나의 그대여 그 자리에서 냉큼 발길을 돌려서 왔다

우체통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알 껍데기를 톡톡 쪼는 소리가 들려 왔지만 그냥 왔다

그대여 나의 새여 하늘은 그리도 푸르렀건만 그냥 왔다

새를 조각조각 찢어버리려다가

새를 품에 꼬옥 보듬어 안고 그냥 왔다.

#시읽는_신학도

*시인은 분명 그냥 오면 안될만큼 수없이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냥 왔다. 그냥 왔다는 말이 왜 이렇게 아플까. 그냥 올 수밖에 없었을 시인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모르지만, 몰라도 괜찮다. 그래도 그냥 왔던 경험이 있는 우리 모두는 충분히 애처롭고, 가여운 존재가 된다. 역설적으로 "그냥 왔다"는 말이 편지와 그대에 대한 나의 그리움과 사랑의 크기를 대변한다. 반복된 말은 꼭 그만큼 깊다. "그대여 나의 새여 하늘은 그리도 푸르렀건만 그냥 왔다" 이 문장은 언젠가 다시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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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관조 씻기기 - 제31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189
황인찬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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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종 5 / 황인찬

여름
성경학교에
갔다가

봄에
돌아왔다

#시읽는_신학도

*농담과 빈정과 안도를 한 숨에 뱉어낸 시. 주님, 저는 언제쯤 봄이 올까요? 봄이 오면, 저도 시인처럼 돌아갈까요? 돌아가면 주님 거기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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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399
이수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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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 이수명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무 많은 손들이 있고
나는 문득 나의 손이 둘로 나뉘는 순간을 기억한다.

내려오는 투명 가위의 순간을

깨어나는 발자국들
발자국 속에 무엇이 있는가
무엇이 발자국에 맞서고 있는가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이 있고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육체가 우리에게서 떠나간다.
육체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우리에게서 떨어져나가 돌아다니는 단추들
단추의 숱한 구멍들

속으로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시읽는_신학도

*한 번 읽고나서 이해가 되지 않아, 짧은 해설을 읽고서야, 아, 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우산 하나를 들고 걸어간다. 왼쪽 어깨는 비를 맞지만, 오른쪽 어깨는 그와 함께 우산 아래 있으니 비를 맞지 않는다. 시의 나머지 부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자. 너무 설레고 좋아서 이상한 상상의 나래를 표현한 것이라고. 흥분되는 마음에 정상적으로 생각이 안 되는 거다. 모든 게 장남감 나라, 무지개 왕국처럼 환상으로 보인다. 왼쪽에 비가 내리고 오른쪽에 비가 내리지 않아도 마냥 좋다. 아니, 왼쪽에 비가 내리고 오른쪽에 비가 내리지 않아서 좋다. 사랑하는 이와 작은 우산 아래서 걷는 시인의 마음이 느껴져서 갑자기 시가 사랑스럽고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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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참나무 숲에서 아이들이 온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218
최하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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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 최하림

많은 길을 걸어 고향집 마루에 오른다
귀에 익은 어머님 말씀은 들리지 않고
공기는 썰렁하고 뒤꼍에서는 치운 바람이 돈다
나는 마루에 벌렁 드러눕는다 이내 그런
내가 눈물겨워진다 종내는 이렇게 홀로
누울 수밖에 없다는 말 때문이
아니라 마룻바닥에 감도는 처연한 고요
때문이다 마침내 나는 고요에 이르렀구나
한 달도 나무들도 오늘 내 고요를
결코 풀어주지는 못하리라

#시읽는_신학도

*이젠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고향집에 들렀는데, 마루만 덩그러니 있어 거기 누웠다. 차가운 마룻바닥에 등을 대고 있으니 처연하고 고요하다. 그저 그것만 표현했을 뿐인데, 이 시는 삶의 어떤 적막한 진실 가운데로 우리를 데려간다. 인생은 혼자이고, 죽음은 피할 수 없다. 한순간,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사라지고 고요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겨우 이렇게 고백해본다. Forgive me all my trespasses And take me to your glory*.

*본회퍼의 시 제목.
*레미제라블 Epilogue 가사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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