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참나무 숲에서 아이들이 온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218
최하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9월
평점 :
품절


집으로 가는 길 / 최하림

많은 길을 걸어 고향집 마루에 오른다
귀에 익은 어머님 말씀은 들리지 않고
공기는 썰렁하고 뒤꼍에서는 치운 바람이 돈다
나는 마루에 벌렁 드러눕는다 이내 그런
내가 눈물겨워진다 종내는 이렇게 홀로
누울 수밖에 없다는 말 때문이
아니라 마룻바닥에 감도는 처연한 고요
때문이다 마침내 나는 고요에 이르렀구나
한 달도 나무들도 오늘 내 고요를
결코 풀어주지는 못하리라

#시읽는_신학도

*이젠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고향집에 들렀는데, 마루만 덩그러니 있어 거기 누웠다. 차가운 마룻바닥에 등을 대고 있으니 처연하고 고요하다. 그저 그것만 표현했을 뿐인데, 이 시는 삶의 어떤 적막한 진실 가운데로 우리를 데려간다. 인생은 혼자이고, 죽음은 피할 수 없다. 한순간,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사라지고 고요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겨우 이렇게 고백해본다. Forgive me all my trespasses And take me to your glory*.

*본회퍼의 시 제목.
*레미제라블 Epilogue 가사 중 일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