ドルフィン·ソングを救え! (單行本(ソフトカバ-))
?口 毅宏 / マガジンハウス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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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미래인 2019년, 당신의 생은 이미 망했다. 비정규직으로 나이 먹고 이제는 써주는 곳도 없다. 애증의 관계였던 애인은 나를 학대하고 등치기만 하다 떠나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흔이 훌쩍 넘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에 희망을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어졌다. 그래, 죽는 것밖에 길이 없다. 그녀는 그렇게 죽음을 결심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자살을 기도한 그녀는 30년 전의 세계에서 깨어난다. 쇼와가 막을 내리던 바로 그때로. 잡지가 전성기를 구가하고, 대중음악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영향력이 있었으며, 쇼와 천황(히로히토 일왕)의 사망을 필두로 파나소닉 창업자이자 경영의 신으로 불린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만화의 아버지 데즈카 오사무 등이 줄줄이 사망하던 버블 붕괴 직전으로. 그녀는 생각한다. 나는 왜 죽지 않고 이 시대로 돌아왔는가. 이런 때 '당시에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떠오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그녀는 그것을 하리라 결심한다. 사춘기 시절 그녀의 모든 것이었던 2인조 밴드 <돌핀 송>의 불행한 최후를 저지하리라.

 

연재소설 같은 걸 읽어본 지가 까마득하니 이 소설을 읽게 된 건 전적으로 우연의 힘이다. 만약 <브루터스> 작년 신년호를 사지 않았더라면, 아니, 샀더라도 소설 첫머리에 요시다 다쿠로의 <오늘까지 그리고 내일부터>라는 노래 가사가 살짝 바뀌어 실려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소설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일본 대중문화에서 유명했던 고유명사들이 줄줄이 나오는 것을 보는 순간 단번에 낚이고-_- 말았다. 30년 전의 세계로 돌아온 그녀는 텔레비전에서 아이돌 그룹 '히카루 겐지'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등장하는 것을 보며, 당대의 여성 아이돌이었던 모리타카 지사토와 사카이 노리코의 운명이 곧 어떻게 바뀌는지를 떠올린다. 당시 그녀 또래 치고 요시모토 바나나를 읽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나중에 돌핀 송의 다큐를 만든 감독 가운데 한 사람은 무려 소노 시온이다. 그리고 돌핀 송의 가사는 "존 어빙, 레이먼드 카버, 샐린저에다 데릭 하트필드(!) 등 현대 미국 문학에서 막대한 인용"을 한 것으로 나온다. 맞다, 직접적으로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짐작할 수 없지만 당시의 일본문학을 이야기할 때 '그'는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당시 일본 대중문화를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면 분명 한번쯤은 흥미를 가질 만하며 역으로 이 책에 출몰하는 고유명사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작품이다(실제로 아마존저팬의 서평을 보면 살아온 시대가 달라 공감하기 힘들다는 내용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 어떤 것의 '실체'를 파악하기란 정말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원이라고는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몇 종 안 되는 잡지, 신문이 전부였던 것 같다(책은 일단 빼자). 원래 청소년기가 다 그렇기는 하지만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한 불안과 자신감이 교차했고 동경하는 대상에게는 또래들과 교환하는 소문을 제외하면 마음껏 망상을 부풀릴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정말 '그림'만 보며 생각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 일본 대중문화였다. 거의 모든 것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었고 알음알음으로 잡지나 카세트테이프를 손에 넣으면서 아마 나는 살면서 두 번 다시 없을 순수한 환상을 꿈꿀 수 있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물론 다 금방 꺼지는 망상이었지만). 곧이어 다리가 무너지는 것을 시작으로 백화점이 붕괴되고 나라가 부도가 날 지경에 이르며 취직이 전쟁이 되는 시대가 오리라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이 책에서는 비록 주인공이 죽음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을 온전히 사회 탓으로 돌리지는 않지만 실제로 버블 시대에 어린이-청소년 시절을 보낸 일본의 많은 40대들은 90년대가 닥치자마자 이전에 없던 박탈감에 시달리게 된다. 부모나 선배들처럼 살 수 없는데도 그들과 같은 생활 수준을 스스로도 원하고 또 요구받음에도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은 버블 붕괴 직전 아무도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풍요를 구가하던 시절에 청소년기를 보냈던 이들이 품었을 법한 환상을 대리 충족시키면서도 물정 모르던 과거의 '나'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까지 몰린 현재의 '나'를 영리하게 화해시킨다. 주인공은 역사를 다 알고 있는 자신의 입장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적절히 이용하기도 하면서 돌핀 송을 구하기 위한 여정에 나서기 시작하고, 그러는 한편 역사를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 것인가도 깨닫는다. 그리고 역사를 알고 있다 해도 '현재' 자신의 모험이 해피엔드로 끝날지 아닐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타임슬립을 통해 역사를 바꾸려 하는 것은 흔한 설정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단순한 과거 풍속지나 한풀이에 그치지 않은 것처럼 읽힌 것은 주인공이 얻고자 한 것이 결국 과거에 꿈꾸었던 찬란한 미래가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은 지금 내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우연히 깨달을 때가 있다.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실질적인 힘과 지혜가 되었음을 알고서야 비로소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멈춰 있던 성장이 시작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무언가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의 구분이 조금 더 명확해지기는 한다. 이 사실을 깨닫는 주인공의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일 년 가까이 기를 쓰고 잡지를 사본 보람은 있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나는 무언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천재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저주했다. 그러나 그게 뭐가 어떻단 말인가. 지금은 알고 있다. 나는 나밖에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사회활동가였던 부모에게 나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이 하고 있는 일은 모두 쓸모없다고. 전부 무의미하다고. 못된 딸이었다고 지금 새삼스럽게 생각한다. 부모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네 엄마도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란다."
그분들은 하지 않고서는 못 배겼다. 그러니까 한 것이다. 그랬을 뿐인 것이다.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나는 그분들의 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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