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논문 -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지적 수집품
산큐 다쓰오 지음, 김정환 옮김 / 꼼지락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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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게 뭐야! 얼마나 시간이 남아돌고 할일이 없으면 이런 것을 연구랍시고 내놓는단 말인가."

 

아마 이 책을 읽지 않고서 여기 소개된 논문들의 제목을 보았다면 분명 처음에는 나도 그런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사실 작년에 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정말 일반 세상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를 비판하는 책인가 싶기도 했다(그런 책이 있어도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의 독서를 끝낸 지금 '할 일 없어 뵈는 연구'에 대한 인상은 완전히 깨졌다. 이 책은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접할 일 없는 진기한 논문에 대한 소개서이자 그 논문들의 의의를 통해 '논문(연구)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훌륭한 안내서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몇몇 이상한 논문의 제목을 살펴보자. <경사면에 착석하는 커플에게 요구되는 타인과의 거리> <혼외 연애 계속 시의 남성의 연애 관계 안정화 의미부여 작업: 근거 이론 접근에 따른 이론 생성> <대학 축제에서 '고양이 카페'의 효과: '고양이 카페' 체험형 AAE(동물 매개 교육)가 내장객에게 끼치는 영향>. 제목만 보아도 웃음이 나거나 도대체 이게 무슨 연구인지 짐작을 쉽게 할 수 없으며 과연 정말 있는 논문인지 의심이 간다. 이 책은 연구를 하지 않는 일반 독자들에게 이 논문들의 '웃음 포인트'를 짚어주고, 무슨 연구인지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이 논문의 쓸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경사면에 착석하는 커플에게 요구되는 타인과의 거리>라는 논문을 쓰려면 경사면에 앉으려는 커플을 '관찰'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쉬운 관찰이 아니다. '훔쳐보기'에 가까운 행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그런 '훔쳐보기'에 가까운 행위가 어떻게 '필드워크'가 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하면 연구 윤리에 어긋나지 않은 행위가 될 수 있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이 논문의 동기인 '퍼스널 스페이스('타인의 존재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는 거리, 공간)의 주체가 두 사람일 때 어떻게 될 것인가'를 말한 다음, 이 연구의 쓸모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특정한 공간에서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자리 배치 등에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여기 실린 이상한 논문에 관한 이야기 열세 편을 따라가다 보면 진짜 있는지 없는지 모를 요상한 제목의 논문의 존재 여부에 대한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논문이란 무엇인가' '연구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쪽으로 바뀌게 된다. 제목만 보면 어이없어 보이더라도 한 논문 안에는 새로운 사실을 알고자 하는 인간의 탐구열과 이를 위해 엄정한 과정을 거쳐나가는 노력이 배어 있다. 언뜻 쓸모없어 보이는 연구더라도 나중에는 인간 생활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하고, 순수하게 '알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재미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이해하려 애쓴다면 우리 또한 세상을 보는 시각이나 '공부/연구'에 대한 시각이 조금쯤은 달라질 것이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일본어학을 전공한 연구자이면서 코미디언이다. 그는 자신의 논문과 연관 있는 논문들을 찾다가 이런 '이상한' 논문들을 발견하고 모으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모은 논문들을 자신이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소개하기도 하다가 이 책을 쓰게 됐다. 이 역시 '매우 이상한' 일이라면 이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도 결국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왜 이런 논문이 있는가)'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이 논문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라는 출발점에서 시작된 것이니 도대체 세상에는 왜 이렇게 쓸모없는 논문들이 많은가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한번쯤 권하고 싶은 훌륭한 '연구 성과'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덧 1) 내가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은 두번째 칼럼 <연구에는 네 종류가 있다>이다. 그가 연구의 종류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 눈여겨봐야 한다. 공부를 많이 했을수록 자기 얘기에 바빠 이런 '요약글'을 못 쓰는 양반들이 많다.

 

덧 2) 지은이가 젠더 문제를 전혀 생각지 않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곳곳에서 모태솔로 분위기를 풍기며 여자! 여자!를 외칠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개그'가 마음 불편한 사람도 많다는 것을 다음 책에서는 좀더 고려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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