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페이퍼에서 나는 신경숙의 문학에 대해 아무런 가치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의 현황이며 이전의 표절 논쟁 역시 오래전 <외딴방>을 읽던 학생 때만큼의 관심도 없고(그때도 뭘 알았겠냐마는) 잘 아는 바도 없다. 아는 게 없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면 설익은 판단은 내비치지 않는 것이 맞다. 다만, 내가 보고 읽었으며 가능한 한 정확한 논리와 근거에 의거해 할 수 있는 얘기를 했다. 문제의 대목과 비교되는 앞선 작품이 있으며 이들의 유사성을 밝혔고, 명백히 표절이 의심된다, 그리고 표절은 옳지 않은 일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얘기의 전부이다.

 

작가가 지금까지 받아온 상찬이나 상업적 성공과 한국문학의 문제 사이의 관련성, 그리고 지금 이와 관련한 모 출판사의 대응에 관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말보다 다른 이들이 해줄 수 있는 말이 더 많을 것이고 나는 그것을 '먼저' 읽는 입장이어야 할 것이다. 작가의 문제에 관해, 그리고 한국문학의 문제에 관해 내 생각과 행동은 앞서도 말했듯 변함이 없다. 구구절절 떠들기보다, 어설픈 가치 판단 한마디를 보태기보다 안 보고 안 사는 것이다. 그리고 책이란 게 여타의 상품과는 좀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로서 '안 사겠다'는 언급이나 행동이 소극적으로 보이기는 해도 그다지 위력 없는 것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지금 신경숙 관련 기사에 줄줄이 달린 ㅊ사 책은 앞으로 안 사겠다는 언급이나 내 돈을 돌려달라는 불평들을 생각해보라. 그리고 전반적인 '상품'으로서의 '한국문학 작품'이 '소비자'에게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죽었다 깨어나도 '비교 경쟁 우위' '시장 점유율 상위권'을 점하고 있다고는 말 못할 것이다.

 

덧붙여 최근 읽은 우에노 치즈코의 글 가운데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어서 여기 적어둘까 한다. 이것은 문학의 차원에서 생각할 게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이지만 울림이 크다. (그러니 이런 걸 옮겨놓는 의도가 이거냐 저거냐 물어보지는 마시길.)

 

이처럼 연구 영역이 넓어져가는 학문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는 우리의 둘도 없는 경험을 타인에게 전달되는 말로 만들어 공유하는 것이다. 듣는 이가 없으면 언어화될 수 없으므로 청자인 동료에게 들려주고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는 말로써 근거를 보여주어 언어화한다. 그럼으로써 처음으로 타인에게 전달되는 '지(知)'라는 것이 생겨난다.

 

학문이란 우리의 경험을 전달 가능하며 공유할 수 있는 지로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지의 공유재'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학문과 문학은 어떻게 다른가? 문학은 단 한 사람의 언어이다. 물론 사람들에게 전달이 안 되면 문학이 아니지만, 타인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한다면 그 사람의 문학은 이미 문학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학문이란 타인과 공유 가능한 언어를 사용하여 타인에게 자신의 경험과 발견을 전달해나가는 것이다.

 

ㅡ우에노 치즈코, <젠더 연구를 권장하며>(2010, 201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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