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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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니 '젊은이' 혹은 '청년'에 대한 정의를 하기가 망설여진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그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현재 '행복하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행복 대신 '불행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사정은 쉽게 짐작이 가는 바다. 스무 살 전후에는 입시 때문에 불행하고 입시를 거친 이후에는 비싼 학비 때문에 불행하며 그렇게 고생해서 공부를 마친 이후에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기가 너무 힘들고 따라서 경제적 도움 없이는 연애며 결혼, 출산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너무 진부해서 부끄럽고 민망하기만 하다. 그러나 더욱 진부하고 낯부끄러운 사실은 아무도 어떠한 전망을 약속하지 못하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고 또한 지속될 거라는ㅡ비록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인간들이 푸른기와집 근처 및 여의도에 상주하는 것 같긴 하지만ㅡ사실이다. 앞으로 생활이 더 나아질 전망이 없으므로 젊은이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너무나 자명해 보인다.

 

일본이라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을 출간할 당시 스물여섯이었던 사회학 연구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절망적인 사회의 상황에 대해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자기 세대보다 훨씬 많은 수의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 물론 정규직 취직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늘 그렇듯이(?) 자신의 젊은 시절만을 기억하는 어른들의 꼰대질(이질적인 타자론) 내지는 젊은 세대를 편리할 대로만 동원한(편리한 협력자론) 국가의 간섭까지 종종 감내해야 한다.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현재의 젊은이를 둘러싼 담론들이 백여 년 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내셔널리즘과 무관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 후 젊은 세대를 두고 어른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이 얼마나 자기들 입맛대로 그들을 재단하는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런 다음 실제로 지금의 젊은 세대는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정규직이 되기는 어렵지만 비정규직으로도 당장의 나날을 보내는 데 큰 경제적 어려움은 느끼지 못하며 굳이 현실 사회가 아니더라도 '마음 둘 곳'을 찾아 승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까? 이 지점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쩌면 한일 양국 간의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지금의 젊은이들은 중국의 농민공과 같이 새로이 나타나는 계급사회에서 하층민의 자리에 있더라도 자족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며, 또한 '이제까지의 일본'이 멸망한다 해도 그것이 뭐 어떠냐고, 그것이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시대가 비록 어른들이 말하는 '좋았던 옛 시절'만큼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을 불행으로 여길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이 세대는 과거 세대가 상상한 이상의 '미래'를 살고 있는 것이다. 돌아갈 과거 따위는 존재하지 않지만, 미래는 확실히 불안한, '왠지 행복하고 왠지 불행한' 그런 삶을 이들은 살고 있다. 이것이 동 세대의 연구자가 자신의 세대의 삶에 대해 내린 객관적 평가이다.

 

이에 비하면 역시 한국은 '돌아갈 과거'라는 게 '어른'들에게도, 또한 젊은이들에게 너무나 명확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정규직-중산층의 삶을 확보하기 어려워질수록 온 집안이 똘똘 뭉쳐 입시며 취업이라는 불안한 확률에 매달렸고 지금도 대개는 매달릴 수밖에 없는 지경이기 때문이다. 이 게임의 가장 큰 당사자가 되는 '자식'일수록 부모에게 기대거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 구도는 집 안에서만 그치지 않으며 사회로까지 확장된다. 여기에는 과연 '어떻게 해야 나는 행복한가'라는 의문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인다. 획일화된 사회 진출의 궤도에서 벗어난 행복이나 만족은 '어른들'의 눈에는 없으며 그들의 손아귀에 미래를 볼모로 잡힌 젊은 세대 역시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다. 불행과 불안의 조건은 눈에 훤히 보이지만 그 역은 누구도 제시하기 힘든 지금, '세상은 엉망이지만 그래도 나는 그럭저럭 행복하다'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이 사회는 또 어떤 시간들을 거쳐야 할지 상상하게 된다. 일본과 같은 경제적 부를 누린 적도 없고 제대로 된 개인주의의 발달도 맞지 못한 이 사회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낼 세대는 영영 나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이야기한 대로 국가의 존속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문제이다. 이 나라가 망하더라도 이 물음만은 계속 던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의무는 당연히 젊은 세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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