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터스>라는 일본 잡지가 있다. 다루는 분야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관심 있어 할 만한 분야 전부랄까. 보기 시작한 지는 몇년 되지 않았지만 대중문화, 책, 그리고 먹거리 관련 호는 거의 대부분 사보고 주택이나 잡화, 기타 예술 분야가 특집일 때도 가끔 사본다. 여행, 남성복 등이 특집일 때는 한번도 사본 적이 없다. 여기서 열거한 분야만 봐도 알겠지만 가히 '종합문화잡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하지만 본색은 남성지라는...).

 

그림만 보고 지나가는 호도 꽤 되지만 '책'이 특집일 때는 눈에 불을 켜고 보는 편이다. '꼭 읽고 싶은, 딱 들어맞는 한 권'이라도 건지고 싶기 때문이다. 여러 권을 사서 다 보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따르니까 어떻게 해서든 정말 읽고 싶은(다른 목적도 있기는 하지만) 한 권만 만나도 족하다. 물론 대개는 책이 특집인 이 잡지 한 권만 달랑 남게 되지만.ㅠㅠ(다행히 이번 호에서는 관심 가는 책이 몇 권이나 있었고 또 주변 사람들과 같이 이야기해보고픈 책도 있었다.)

 

 

<아래는 작년과 올해 발행된 책 특집호들ㅡ제목은 각각 '책, 남자에 대해 알 수 있는 책, 여자에 대해 알 수 있는 책 212권', '헌책방이 좋다', '책 특집 2014ㅡ이 책만 있으면 인생은 대체로 걱정없다'(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다...)>

 

 

 

 

 

 

 

 

 

 

 

 

 

'입문'이란 내게는 일종의 마법 같은 단어이다. '전문'이 없고 이것저것 찔러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제 시작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고 접근해야 하는가는 일하는 데나 살아가는 데 내겐 무척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혹은 '시작하게 만드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다는 걸 늘 실감하기도 하니까. 아마 독서도, 각 사회의 환경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일 터이다. 그리고 '편집자의 말'을 빌리자면 일본 사회 역시 서점도, 독서 인구도 줄어드는 것을 반영하기라도 하듯이 '책 특집'이 아닌 '독서 입문 특집'이라는 것을 브루터스에서 내놓았다. 책이란 늘 당연한 듯 존재하는 물건이지만 독서란 더 이상 사회 구성원들이 당연히 여기는 행위가 아니게 되어가는지도 모른다(하지만 여기서 개인적으로 오버랩되는 건 존 다우어의 <패배를 껴안고>에 나오는, 전후가 되자마자 독서에 굶주린 대중이 아귀같이(?) 책에 달려든 풍경이자 가이조샤와 이와나미 외 출판사[연맹]가 경쟁적으로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을 내놓고 서로 자기네 전집을 읽어야 한다며 내놓은 1920년대 말 <동아일보> 광고와 기사이다. 이런 단편들이야말로 '국가적'으로 몰아붙여봤자 쉽게 만들 수 없는 것이며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닐까. 그것이 곧 책과 독서의 미래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한 세기 가까이 형성된 책과 독서 행위의 레퍼런스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레퍼런스는 한번 갖춰지면 중심을 잃었을 때 손쉽게 되돌아갈 수 있는 지점이 된다는 점에서 무서운 것이다).

 

'입문'이 주제인 데다 잡지의 성격상 안 읽히거나 하는 어려운 글은 없으며, 초등학교 4학년 아역배우부터 서평가, 전문 연구자들까지 골고루 갖춰진 스무 명 필진(대담자도 있지만)의 다양한 독서 방법에 대해 읽어보는 재미가 있다. 독서의 개인적 정의를 내리는 것부터 시작해서(호시노 겐-배우, 문필가) 책을 어디에 두고 읽느냐를 이야기한 사람도 있고(가쿠타 미쓰요, 작가) 책을 딱 한 상자만 보관한다는 사람도 있고(다가와 긴야, 디자인 회사 대표), 자신의 밑줄 긋는 법을 소개한 이가 있는가 하면(후루이치 노리토시, 사회학자), '낭독의 발견'을 이야기하는 시바타 모토유키(영문학자, 번역가) 같은 이도 있다. 같은 책을 백 번 이상 읽었다는 이가 있는가 하면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읽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있다. 일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연기 전에 원작을 읽는다는 배우도 있다(한국에도 이름이 알려진 아오이 유.^^). 그 가운데 '세계문학'에 대한 글과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는 방법'는 몇 군데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옮겨놓는다(사실 이 글들은 전문을 다 옮겨놓고 싶긴 하다).

 

(* 밑에서 두번째 밑줄긋기에 언급되는 사토 마사루는 '독서'와 관련되는 책을 아마존저팬에서 찾으면 반드시라도 해도 좋을 만큼 자주 마주치는 저자라 읽어볼까 하다가도 국내에 나온 책들이 대개 안 팔리고 있어서ㅠㅠ 흥미를 갖지 못했는데 <현대사상(겐다이시소)> 최근호에서 무려 가라타니 고진과 대담을 하고 있어서 다시금 급 흥미가 생겼다. 아마도 그 <현대사상>이 내가 처음 만나는 사토 마사루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대담 내용을 다 이해한다는 보장은 언제나 그렇듯이 없다...ㅠㅠ)

국경 없는 문학과 접해보기 _고지 도코(영문학자, 번역가, 와세다대 교수)

세계에는 실로 많은 언어가 있는데 일본어로 쓰인 것과 그 이외의 것으로 나누는 것은 왠지 기묘합니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세계문학전집은 나라별로 편집된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이상합니다. 왜냐면 작가가 태어난 장소와 살고 있는 장소, 그리고 소설의 무대와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세계를 돌아보면 이들이 전부 제각각인 작가는 매우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어느 나라의 문학이라고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다면 언어라든가 국적 같은 기존의 지표를 일단 리셋하여 문학을 파악하여야 하지 않겠는가ㅡ이것이 제가 책 등을 통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세계문학`입니다.(36쪽)

생각해보면 음악은 비교적 하나의 장르로서 받아들이는 방식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 방식이 가벼운 마음으로 해외에 나갔다 온다거나 정보를 외국어로 받아들이게 된 오늘날 우리 생활에도 딱 맞는다고 봅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문학만은 거기서 뒤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큽니다. (같은 쪽)

인터넷 시대야말로 독서하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_하야미즈 겐로(저술가, 편집자)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누구라도 쉽게 접속 가능한 인터넷상의 정보는 금방 진부해지기 때문이다.
공업적 생산 중심의 시대에서 지식집약형 산업의 시대가 되면서 다른 사람과는 다른 정보, 아이디어만으로 비즈니스=돈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오늘날 다른 사람과 다른 정보를 어디에서 얻는가로 가치가 이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내 주위에서 어쨌든 책을 많이 읽는 직종은 작가나 저술가, 대학 강사나 교수, 학생(학생들은 놀라울 정도로 책을 안 읽는다!)이 아니라 아이티업계 종사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이다. 이 사실이 그야말로 현대를 상징하고 있다. (74쪽)

우선 자신의 인생관이나 철학 등에 영향을 끼치는 `교양`으로서의 독서 방법이 있다.
최근 몇 년간 `인문학`을 몸에 익히는 것의 중요성이 이야기되고 있다. 인문학이란 기본적인 교양을 말한다.
박람강기형 저술가를 대표하는 사토 마사루의 책을 읽으면 옛 번역, 새 번역 성서부터 마르크스까지 종교, 철학 등의 고전의 내용이 재해석되어 있어 놀랄 만한 독서 방법을 보여줄 때가 많다. 새로운 지식은 새로운 책에 쓰여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전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75쪽)

마지막으로 이 독서 방법에 대한 책에 관한 글을 전부 부정하는 듯한 변화구와도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 <사고정리학>의 저자로 친숙한 도야마 시게히코의 <난독의 세렌디피티>이다.
이 책은 난독, 속독을 권장한다. 아니, 오히려 책 같은 건 제대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쭉 훑어보는 편이 오히려 얻는 게 많다는 것이다. (중략) 책을 읽으면 사람은 자기 분야에는 정통해도 다른 부분에서는 상식조차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데 이는 창의성을 잃어가는 일이기도 하다고 이 책은 말한다.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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