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 시대 젊음의 모습들과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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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김사과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케이의 모습이 누군가와 닮았다고 느꼈다. 잠깐 다녀온 뉴욕이 마치 오래전부터 그가 살아온 고향인 듯 그리워 하는 모습과 그가 바라고 추구하는 모든 것이 뉴욕에 있음을 예전부터 알았다는 듯한 그의 말투. 뉴욕에 비하면 대한민국은 시시한 것 투성이라는 단호한 발언. 그렇다. 어디서인가 듣고 어디서인가 본 듯한 인물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았고, 기억을 떠올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케이의 모습은 고등학교 때 단짝이었던 내 친구의 모습이었다. 그는 케이와 같이 뉴욕에 어학연수를 1년간 다녀왔고, 다녀온 직후 뉴욕 향수병에 걸려 오랜 기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를 보며 친구들은 우습고 기가 차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실상 그런 친구들은 주변에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케이와 그의 집안 식구들은 스스로가 원하는 소소한 것들을 어려움없이 가질 만큼 어느 정도 선에서 만족하는 삶도 살아보았고, IMF를 맞아 큰 위기에 처해보기도 한, 지금은 먹고 살만한 삶을 살고 있는 이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는 자신보다 멋진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써머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가 하는 행동들이 멋있고 여유로워 보인다고 생각한다. 이런 케이의 모습에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사실 주변에 이런 친구들이 많이 있다는 깨달음에 새삼 놀라움을 느끼며 소설을 읽어갔다.

뉴욕에서 돌아와서도 뉴욕을 잊지 못하던 케이가 뉴욕을 공유할 수 있는 인물 재현을 알게 되면서 그에게 빠져드는 장면에서 나는 케이를 좀 더 진지하게 보기 시작하였다. 라면가게에서 데이트를 시작하고, 데이트 비용을 케이가 많이 부담한다 하여도 그가 멋져보이는 것은 뉴요커스러운(아니, 엉뚱하게 뉴요커를 흉내낸 듯한) 재현의 말투와 행동들 때문. 그런 케이와 재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쓴 웃음이 났다. 그러나 결코 가볍게 웃을 수 만은 없다. 웃음 뒤에 남겨진 씁쓸함이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케이는 재현의 이기적이고 독단적임에 싫증을 느끼던 차에, 초등 동창 지원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지원은 재현과 판이하게 다른 인물로,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벅찬 이 시대 또 다른 젊음을 대변한다. 지원은 그 스스로가 느끼기에 더 이상 떨어질 수 없을 만큼의 위치에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현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지만 그가 속한 현실이 그의 힘보다 더 큰 힘이 누르고 있으며, 그의 노력만으로는 도무지 벗어나지지 않음을 인식하고 허망해한다. 더불어 그보다 상류 계층에 속한 여자친구 케이가 부담스러워지고, 그와의 만남 후에 찾아드는 초라함이 못 견디게 힘겹다. 지원과의 이별을 이해할 수 없는 케이, 케이가 싫지 않지만 케이와의 만남이 힘겨운 지원, 그들을 보고 있는 지금에야 나는 느꼈다. 아, 케이, 써머, 재현, 지원. 그렇다. 이들이 지금 이 시대 젊음들이구나, 그들은 소설 속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들은 어쩌면 지금 바로 내 옆에 있는 친구들이었고, 혹은 나도 모르는 앞집 내 또래였을 수도 있었다.

비로소 김사과가 말하고자 한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나는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힘겨웠다. 나와 내 주변을 포함한 이 시대의 젊음들의 모습. 그들의 현재와 미래, 그것들을 생각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생각한 젊음, 우리의 모습이 이랬단 말인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모습이 아니다 머리를 흔들었지만, 김사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군더더기없이 정확하게도 우리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