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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날이었던가,
처음 본 물건을 살피기 위해 무심코 손에 쥐었을 때, 경험이라는 두 글자가 머리를 번뜩 스친다. 이거 예전에 만져보았던 거야, 손에 쥐인 그 감촉 끝에 기억이 매달려 있다. 저 멀리 대롱대롱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기억을 간신히 건지고 건져서 살펴보았더니, 아아 예전에 그런 경험도 있었구나, 다시 그 기억이 꽃을 피웠다
그렇다, 무엇이든 흘러간다. 흘러가는 것은 언제나 새로움과 직면한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새로움이기에 그 새로움을 경험하는 어려움을 과거의 것을 바탕으로 한 힘으로 이겨내기도 하고, 또한 매일 새로움을 대하는 그 벅참 속에 과거를 잊기도 한다.
파과, 냉장고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뭉클어져 있는 무엇을 떠올리며 가슴이 아려온다. 그래서일까, 파과를 쉽게 열지 못했던 것은.
한편 작가를 믿었다. 언제나 그랬듯 작가의 신뢰도를 책 선정의 가장 첫 번째 이유로 삼는다. 구병모가 늙은 여자 킬러를 내세워서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이러저러한 감정의 얽힘 속에 ‘조각’을 만났다.
조각은 반전투성이의 인물이었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의 노부인, 지나치게 검소하지도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않은 선을 지키는 그 노인은 프로의 냄새를 풍기는 킬러이다. 그의 사고방식은 언제나 냉정하다. 조금의 감정이입도 허용되지 않는 직업의 특성상, 그 직업에 몇 십년 몸 담아온 그녀였기에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냉정하기만 한 프로페셔널한 킬러로써의 조각만을 그려냈다면 파과는 이렇게 매력적이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여러번 하였다.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직업, 태도, 말과 행동에도 불구하고 ‘조각’이라는 인물에 진심으로 마음을 열게 된 것은 그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녀가 냉정하지 않다는 데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개의 저녁을 걱정하는가 하면, 자신의 목표가 눈앞에 있는데 생면부지 파지 수거 노인 때문에 목표를 놓친다. 호감이라는 것인가 하며 물음표를 떠올렸을 때, 그의 딸이 납치되었다는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내놓고 딸을 구하는 것만 생각한다. 그것이 조각이다.
구병모는 어떻게 하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아는 작가이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때,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상은 펼쳐진다. 구병모는 그것을 잘 알고, 활용하고 있는 작가라 생각된다. 또 하나, 구병모에 대해 신뢰를 가지게 된 것은 끊임없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머물러있지 않다는 것이다. 작가는 <파과>를 통해 새로운 문체를 보여주었다.
조각이라는 인물을 보여주기 위해, 이 문체는 반드시 필요한 장치였다고 생각된다. 섬세함이 끝없이 늘어지는 이 만연체는 왠지 모르게 ‘조각’과 참으로 닮았다. 알 수 있을 듯, 알 수 없음도,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이 문장들은 조각의 삶을 말해 주는 하나의 장치였다고 이해되었다. 그래서 불편함에도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파과,
흘러간다는 것에 대한 경험, 남겨진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