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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눈물이 소리없이 흘렀다.

방울방울 떨어진 눈물이 책 끄트머리에 선명하게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아, 오랜만이다.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를 만난 건.

 

황석영, 두 남자, 여울물소리.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황석영 이라는 이름 석 자였다.

황석영 작가의 신간이라는 것이, 작품을 다시 볼 정도로 기대하게 하는 건 무엇보다도 ‘우리’ 이야기를 ‘우리식’으로 풀어내고자 했던 작가의 그동안의 행보 때문이다. 그는 심청, 바리데기 등의 작품을 통해 구전되어오던 우리 이야기를 우리식으로 풀어내 보인 적 있다. 여울물 소리라는 제목과 표지에 그려진 두 남자를 보며 작품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읽어 보았다.

 

 

1. 연옥, 그리고 그녀의 남자에 관한 이야기.

 

‘연옥’은 마치 곁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듯, 그녀의 남자, 19세기 이야기꾼 ‘이신통’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과연, 황석영 작가답다 싶었다. 끼워맞춘 듯, 이 이야기에 적격인 형식이면서도 ‘우리식’인 방법이었다. 연옥의 목소리로 그녀와 신통의 속사정을 들으면서, 사이사이 신통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소리꾼의 ‘소리’를 듣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리얼하게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작가는 왜 하필 화자를 연옥으로 설정하였을까.

어림짐작으로는, 연옥의 신분과 신통과의 관계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연옥은 기생의 딸로, 양반과 기생의 사이에 태어난 ‘서녀’의 신분을 가진 여인이다. 꼭 사랑이 전부인 이유는 아니었지만, 어찌되었건 미련없이 3년 만에 스스로 소박을 맞고 집으로 돌아와 재가하지 않고 가슴에 품은 연정인 ‘이신통’을 기다리는 그녀의 성격을 고려하여 생각해보았을 때,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행복은 ‘사랑’과 ‘평범한 가정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그녀의 남자 이신통은 하필이면 세상에 할 말 많은 남자, 평범한 행복보다 신념이 먼저인 남자이다.

그녀는 단 한번도 그와 ‘평범하고 소소한 가정’을 꾸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정을 통한 즉시로 그를 떠나보냈으며, 심지어 후에 그를 찾았을 때 그를 따라나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 스스로 자신이 짐이 되지 않으려 돌아서고 만다. 결국 그녀는 단 한 번도 그와 함께 살지 못하고, 사별하고 만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남편을 품에 안을 수 있었던 그녀가 화자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당시의 상황 자체가 애시당초 연옥이 행복을 품을 수 없었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닐까. 사랑하는 이와 생을 함께 하는 것. 어쩌면 당연한 행복임에도 불구하고, 눈물나게 그 당연한 행복을 쫓는 모습으로 당시 기본적인 행복도 누리지 못했던 어렵고 힘들었던 민초의 삶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혼란의 소용돌이 같았던 격정의 시대를 살아내야만 했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행복한 날이 도대체 언제 오냐며 속으로 외치던 연옥을 통해 보고있자니 그들의 암울했던 삶에 눈물이 절로 났다.

 

 

2. 이야기꾼의 이야기,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

 

이야기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생겨나나.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어떤 것이 남고 어떤 것이 사라지나.

 

 

‘이야기’란 범주는 참으로 크고도 작다. 그 범위를 정하는 건 생각하는 이가 머리 속에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의 범위일까. 책 소개를 보니 이야기꾼의 이야기라 하던데, 19세기 이야기꾼의 삶에 대해 그린것인가. 그렇다면 이야기꾼의 직업적인 면모와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인가 내심 기대를 하며 짐작해보았다. 한참 궁금했던 주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이야기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이야기꾼의 이야기 - 즉, 이신통이 몸담았던 천지도에 관한 내용- 이 더욱 깊이 이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이야기꾼의 이야기에 대하여 더 깊이 이어졌더라면, 어쩌면 소설의 분위기 자체도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여 보니, 19세기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야기꾼-지식층이지만 벼슬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계층이 많았던- 이 시대의 숙제를 못 본 체 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야기가 천지도와 그 배경에 대해 깊이 흘러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애시당초 이야기란 것은 시대를 반영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을 향해 하고자 하는 말들, 해야만 하는 말들이 모여 문학이 된다. 배경이 된 시대가 무거움에 따라 이야기의 무게 또한 무거워질 수 밖에 없었다. 재기발랄한 이야기꾼의 이야기가 아쉽긴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또한 우리네 현실이었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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