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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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보아도 나무랄데 없는 응태와 백옥같이 아름다운 여늬

그러나 그들은 지독한 운명의 굴레를 안고 태어났다고

스님은 말한다.

"소화꽃을 들고 들어오는 날 내쳐야 합니다."

이 말에 흥분하여 곳곳에 심어져 있던 능소화 덩굴을 베어버렸지만

베어버렸기에

운명은 그들을 따라오고 만 것이다.

붉디 붉은 소화꽃에서 나는 접시꽃을 떠올렸다.

크고 붉은 꽃, 능소화 덩굴처럼 키가 큰 줄기에서 피어나는 접시꽃.

접시꽃은 약으로 쓰인다. 능소화는 독이 있다.

접시꽃은 하얀색도 있다. 능소화는 오로지 붉다.

타협이라고는 없는 능소화.

 

정혼한 여자가 궁금하여 낯선 마을로 들어선 응태의 눈에

처음 보는 화려한 꽃이 그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응태의 눈에는 소화꽃의 화려함과 그 화려함을 짓누를 만큼 아름다운 여자가 동시에 들어왔다.

소화꽃으로 인하여 두 사람은 잊혀지지 않는 채 그리움을 달랜다.

결혼식이 있던 날, 예복을 입은 신부가, 사모관대를 입은 신랑이

능소화 꽃 사이에서 보였던 그 얼굴이라는 사실에 감사한다.

그들의 연애는 결혼과 함께 시작된다.

여늬의 아름답고 정갈한 품성에 녹아들고

응태의 늠름한 용모와 포근한 품성에 빠져들고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봄이면 봄인채로

여름이면 여름인채로

가을이면 가을인채로

겨울이면 겨울인채로

계절에 맞는 사랑을 담으면서

응태와 여늬는 달짝찌근한 행복속에서 춤을 춘다.

그러나 이제 팔목수라는 그런 행복을 거두어가려한다.

응태에게서 여늬를, 여늬에게서 응태를.

 

응태 아버지 이요신은

자신의 마당에서 여름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보이던 능소화를 뽑지 말았어야 했다.

심술궂은 마녀의 저주를 받고 왕이 온 나라의 물레를 감추었기에

공주는 생전 처음 보는 특별한 물레에 손을 찔리고 만다.

마찬가지다.

만약 여름이면 마당에서 늘 보던 그런 꽃이었더라면....

여름이면 능소화 옆에서 뛰어놀던 그런 추억이 있었더라면

여늬를 처음 봤을 때, 능소화와 함께 찬란하게 빛나던 그 아름다움을 비껴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박색을 일부러 찾지 않았더라면...그랬더라면...

응태 아버지 이요신은 운명을 거스른 것이 아니라

운명을 고스란히 받아 고스란히 행하고 만 것이다.

물 흐르듯 살았다면 어땠을까...

한쌍의 원앙처럼 흐뭇한 모습으로 살다간 응태와 여늬

몇백년이 지났어도 변하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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