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 이회영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드라마를 보았다. 

신채호, 김구 선생 만큼 알려지진 않았지만, 귀에 익은 이름이었다. 

우리 민족이 나라를 잃고 고통과 설움속에서 몸부림칠 때 

이회영 선생은 엄청난 재산을 처분하여 일가친척들을 데리고 

만주로 가셨다.  

그 유명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젊은이들에게 자주독립의 중요성을 알리고  

자주독립을 위한 훈련을 체계적으로 시켰다. 

그러나 기세등등한 일제의 기는 꺾일줄 모르고 

이회영 선생의 가세는 기울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일제의 표적이 되어 

몸을 사릴 수 밖에 없었다. 

나라를 잃은 그 순간부터 독립을 위하여 뛰어왔던 선생이었지만 

굶어 죽어가고 있는 형님을 대하는 순간 

그 당당한 자세는 어디로 가고 

가문과 형제들에 대한 회한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비록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한 일이었다고는 하나, 형제들과 가문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죄, 갚을 길이 없습니다...라며 울부짖던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지독한 일제 치하에서 우리 민족은 살아남았다. 

우당 이회영 선생같은 독립투사가 있었기 때문이고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잊지 않은 수많은 민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36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건만, 우리는 독립을 이루었다. 

다만, 우당 이회영 선생은 물론 온 백성들이 원하던 자주독립이 아니었기에 

우리 민족은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가 되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념으로 대립각을 세우며 지금도 싸우고 있다. 

사상이 무엇이건간에 하나의 민족이 시시각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난리가 나서 시체가 둥둥 떠내려와도 

구호물자를 보내기 위한 실리를 따져야하는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우당 선생이 그토록 바라던 우리 민족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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