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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만에 읽는 일본사 3일만에 읽는 시리즈 20
타케미쓰 마코토 지음, 고선윤 옮김 / 서울문화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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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마 원저의 제목이 '3일만에 읽는 일본사'였던 것 같다. 일본인이라면, 또는 일본사를 비교적 잘 아는 사람이라면 3일만에 가볍게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일본사를 쉽게 접해보고 싶다는 것이었고, 그 점에서는 다소 실망스러운 책이었다. 사실 내가 일본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우리 역사에도 다소 영향을 준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라든지 토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 같은 사람 정도이고, 어렴풋이 도쿠가와 막부라는게 있었다는 정도였다. 그래서 이왕이면 일본인들이 보는 일본의 역사를 공부하고 싶었다.

우선 이 책의 첫번째 실망스러운 점은 책 머리에서 저자가 제대로 된 대중 역사서를 지향한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역사의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일본 독자들이 이미 잘 알고 있을 사실들을 설명하면서 색다르고 재미난 뒷얘기 등을 소개하려고 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고대사 부분은 특히 지루했는데, 최근 들어 언론에 알려진 고대 유적 조작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씌어진 것인지 이미 의문시되는 일본 고대사 학설들을 사실로 기술한 것 같았다. (이 부분은 역자가 조금만 더 신경을 써서 주를 달아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편 중간 부분에서 전국시대와 막부를 중심으로 펼쳐진 일본 중세 및 근대사 부분은 여러 인물들간의 상당히 복잡한 암투 과정을 간결하게 서술하려고 노력한 듯하여, 어느
정도 배운 것은 많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일본의 인명, 지명과 용어 등에 익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주요 단어들이 처음 등장할 때만 한자가 병기되고 그 후에는 일본 발음으로 적혀진 경우가 많아서 이해에 어려움이 조금 있었다. (이 부분도 역자가 조금 신경을 써 주셨더라면...)

이 책이 '3일만에...'라고 제목 붙게 된 가장 큰 특징은 아마 많은 도표의 사용과 짧은 단위로 나누어진 구성일 것이다. 고등학교 참고서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상상이 될 듯하다.

한 이야기에 2쪽 내지 3쪽을 할애하여 짧게 서술한 것은 읽기에 부담이 없어서 좋기는 하였으나 역사서로서 흐름을 보는 데는 좀 어려움이 있었다. 한편 풍부한 도표라고 제시된 것들은 지도를 제외하고는, 본문 내용을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식으로 요약해 준 것에 불과해 큰 도움이 안 되었고, 심지어 도표에는 등장하는 내용이 본문에 설명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았다. (아마 잘 알려진 사건들이었나 보다.)

결국 일본사를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부담 없이 읽어보기에 적당한 책이라고 생각되고, 나같이 일본사에 입문해보려는 이에게는 많은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책의 뒷표지에 선전문구로 기입된 많은 질문들...(일본 천황의 조상은 한국인이었나...등을 위시해서..)은 사실상 책의 내용에서 그다지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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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일본의 근대 이산의 책 14
마루야마 마사오+가토 슈이치 지음, 임성모 옮김 / 이산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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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번역 왕국이라고들 한다. 사실 출판물 중 번역물 비중을 비교해 볼 때 유럽 국가들에 비해 크게 높지도 않을 뿐더러, 최근에는 번역물 비중이 떨어지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발빠르게 서양 문물을 번역을 통해 받아들인 것은 사실이다. 일본의 번역 역사는 근대화 이전부터 중국(과 우리나라?)의 문헌들을 들여가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 변방의 섬나라로서 불리한 위치를 적극적인 번역과 문화 수입으로 극복하고 나름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하겠다.

사실 이 책은 매우 독특하다. 일본의 사상사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집필을 맡았던 한 노학자가 건강의 이유로 또다른 (약간 젊은?) 노학자에게 이 임무를 넘겼고, 두번째 학자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선임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방향을 잡기 위해 그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기록이 바로 이 책이 되었다고 한다. 책의 탄성 과정상 내용의 진행은 자유로우면서도 나름의 질서를 갖추고 있어 대담의 주인공들의 안목에 놀라게 된다. 이들은 단지 번역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번역을 매개로 하여 일본이 어떻게 외부 문물을 받아들이고 근대화의 길로 걸어갔는지를, 몇몇 주요한 사상가들을 위주로 놀랍도록 상세하게 이야기한다.

사실 나는 일본의 역사에 대해 그리 아는 바가 없어서 낯선 인물, 낯선 사건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이 책의 번역자가 매우 상세하게 첨부한 역주 덕을 좀 보기도 했다. 하지만, 상세한 역주 자체는 일종의 학문적 업적인 것 같고, 나같은 평범한 독자는 그저 두 노학자의 대화를 대강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한문을 읽고 있는 자신이 번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던 일본의 중세 사상가로부터, 역자 후기에 수록된 에피소드에서 '문민'이라는 표현을 만들기 위해 토론하는 전후 일본 국회의원들의 논의까지, 진지하게 낯선 문화를 대하는 일본의 모습을 보았다. 너무 빠른 시간에 수동적으로 근대화를 맞아버린 우리 사회의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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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사 산책
쓰지 유미 지음, 이희재 옮김 / 궁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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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는 번역가들이 걸러준 많은 책들을 읽는다. 원전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는 번역자가 맘대로 내용을 고치더라도 알 수가 없다. 명쾌한 원전의 필치를 전혀 살리지 못하는 딱딱한 번역도 난무하고, 한편으론 원전을 뛰어넘는 감칠맛 나는 번역도 가끔 볼 수 있다.(조그마한 책이지만 번역서를 한 권 출판해보기도 한 경험자로서) 가끔 원서를 읽으며 취미삼아 번역을 해보기도 해보는데, 그때마다 번역이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인류 문명의 역사가 번역의 역사와 얽혀있음을 이 책은 알려 준다. 프랑스의 번역사를 중심으로, 그것도 인물들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그 출발은 고대로부터 시작하며, 유럽이 르네상스시대에 그리스 원전을 찾게되기 전까지 학술적 업적을 유지해온 아랍권의 번역사도 다루고 있다.

정말 흥미로운 부분은 중간부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저작들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잘 알려지지 않은 번역가들의 이야기이다. 한 때 번역은 창작과 동일한 정도의 예술로 인정받았던 적도 있고, 단어 대 단어로 기계적 번역을 해야할지, 혹은 시대사회상과 번역자의 이해를 바탕으로 '역동적' 번역을 해야할지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 그 와중에 나름대로의 열정을 가지고 문명사, 사상사, 번역사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해 온 몇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정말 산책 삼아 들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일본 여성으로서, 번역자들 중에서도 여성들에 대해 특히 흥미를 보이며, 종종 일본의 상황과 프랑스의 상황을 비교하기도 한다. 특히 이 책이 보통 역사서와 다른 점은 저자가 거리낌없이 화자로 등장한다는 점인데 (가령, 어떤 부분을 설명하다가 어느 도서관에서 이 자료를 찾았다는둥, 누가 이 부분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둥 하는 이야기들이 주석이 아닌 본문에 담겨 있다), 오히려 친밀하게 느껴지는 화술로 제목대로 '산책'이 되게 해준다.

다만 마지막 장에서 다루고 있는 번역가 조직의 역사 부분은 책의 나머지 부분과 다소 동떨어져 있고 흥미가 덜한 듯하다. 앞부분까지 번역가의 정열, 번역철학 등을 논하다가, 갑자기 직업인으로서 번역가의 이해 관계를 보호하는 등의 이야기로 돌아섰다고나 할까.

저자 후기에 따르면 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편집했다고 하는데, 잡지글처럼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작은 책이다. 번역에 대한 책인만큼 이 책의 번역은 상당히 매끄러웠다는 것을 지적해두고 싶다. 또 관련된 책으로 일본의 번역사를 상당히 심도있게 대화 형식으로 논한 <번역과 일본의 근대화>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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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준 선물, 감자 이야기
래리 주커먼 지음, 박영준 옮김 / 지호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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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게 있어 역사를 읽는 즐거움은 지금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들이 전혀 그렇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고, 한편 요즘 나타난 특이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예전에도 있은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요즘 많이 소개되고 있는 '미시사'류의 책들은 특히 첫번째 부류의 즐거움을 많이 선사한다. 무심코 당연히 받아들이던 우리의 식생활이 현재의 모습을 띄게 되기까지 뜻밖에도 여러 상황과 사건들이 연루되어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은 알려 주고 있다.

지금 우리가 당연히 먹고 즐기는 감자, 특히 밥과 반찬식의 구분이 덜 분명한 서양에서는 거의 필수 메뉴로까지 보이는 감자가 서양 여러 나라들(이 책에서는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와 미국)의 식탁에서 당당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기까지 온갖 사회적 편견들-종교적, 도덕적, 영양학적, 계급적 등등-을 이겨냈어야만 했다는 것을 차근히 보여주는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사실 이 책의 강점은 어찌보면 '감자' 이야기보다는 감자를 둘러싼채 펼쳐지는 네 나라의 식생활, 더 넓게는 사회생활 전반에 대해서 보여주는 모습들이다. 예를 들자면,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불과 얼마 전까지 유럽의 서민들이 매우 단조로운 식단으로 근근히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고, 또 근대 의학의 도래 이전에는 서양 의학이 오히려 요즘 대안 의학이라 불리는 동양식 접근을 본래부터 닮아 있었다는 점 등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은 미시사답게 당시 실생활을 들여다보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 예를 들어 당시 주부들의 일기, 여행자들의 기록 등을 통해. 서술 방식은 주요 대상국인 네 나라를 차례로 기간별로 다루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다소 반복적인 내용도 등장하고, 간혹 몇몇 인물들이 불쑥불쑥 나와서 혼란스럽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번역은 매끄럽기는 하지만 생생하지는 않은 듯하여 조금 아쉽다 (내가 초판을 읽은 탓이겠지만 오탈자도 제법 눈에 많이 띄었다).

책 말미에 우리 나라의 감자 도입에 대한 장을 간결하게나마 붙인 것은 유익한 시도였다고 생각되어 높이 사고 싶다. 결론적으로 일반적 흥미를 불러 일으키기에는 조금 역부족인 듯 하지만, 미시사 또는 문화사 등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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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02년을 보낼 때가 왔습니다. 한해를 돌이켜보니 가정에서 직장에서 정신 없이 보냈지만 그래도 솔솔히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네요. (오히려 작년보다 권수로는 더 많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언할 만한 히트작은 또 없었다는 것이 아쉬움입니다. 그저 그런 책들만 실컷 읽은 이런 허탈함이란... 따라서 작년과 달리 올해는 구태여 순위 매김 없이 내 인생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던 책들 나열해볼까 합니다.

1. David Salsburg, The Lady Tasting Tea
제목만 봐서는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기 어려운데, 20세기 통계학의 역사를 인물 중심으로 풀어놓은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교과서로만 알았던 확률분포, 유의수준, 구간추정, 가설검정 등등의 굵직한 아이디어들을 생산해낸 사람들의 이야기. 한 가지 아쉬움 이라면 통계학 개념들을 조금만 더 깊이 설명해주었다면 거의 개론 수준 교과서로 쓸 수도 있을 텐데, 대중서로 수준을 낮추다 보니 잡기적 내용이 대신 자리를 차지한 점. 저자는 통계학자로 제약회사인 화이저에 근무했던 사람인데, 글솜씨가 제법입니다.

2. JK Rowling, Harry Potter and the Goblet of Fire
해리 포터 씨리즈는 지금까지 4권이 나왔는데, 그 네 권을 연초부터 한 해동안 다 읽었습니다. 개인적인 선호도로는 아무래도 처음 읽었던 1권이 가장 신선했고, 2권은 다소 진부했으나 3권은 다시 흥미로와졌고 4권은 새로운 차원으로(환상-오락추리물에서 공포-엽기추리물로) 진화했다는 느낌입니다. 가장 나중에 읽어서인지, 가장 분량이 많아서인지 (4권은 1권의 거의 두 배 분량) 모르겠으나 4권이 가장 기억에 남는 군요. 톨킨의 The Lord of the Rings도 이제 읽고 있는데, 재미 있군요. 허지만 역시 팬터시문학이라면 루이스의 나르니아를 무찌르기는 어려울 듯.

3. Deidre McCloskey, How to be Human (Though an Economist)
맥클로스키 교수의 이름은 원래 Donald였는데 몇 해전에 Deidre로 바뀌었습니다. (하리수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결혼해서 처자식을 두고 있던 50대 경제학 교수가 어느날 갑자기 여성이 되었습니다. (성전환 스토리도 따로 책으로 나왔음) 하버드에서 계량경제사를 전공하고 시카고대 교수로 소위 주류의 길을 걷던 그는 아이오와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갑자기 문학비평과 과학철학 등 인문학을 건드리기 시작하고 경제학계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을 일으킨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경제학의 본질을 수사rhetoric로 봅니다. 절대적 진리의 발견이나 검증보다는 학자들간의 대화와 설득으로 이해하는 거죠. 제가 약간의 논란을 일으켰던 기학연소식지 기고문에서 Economics is what economists do라고 정의했던 것도 아마 맥클로스키가 원래 했던 말일 겁니다.)
   저자 소개가 길어졌는데, 이 책은 맥클로스키가 교수가 썼던 칼럼을 중심으로 묶은 것으로, 이전의 경제학 저술이나 수사학 관련 저술에 비해서는 한결 읽기 쉬우며, 학자(scholar)의 삶을 논하는 내용입니다. 진정한 학문의 자세는 무엇인가에서부터, 학자 세계의 지배 논리와 이에 대한 비평, 그리고 심지어는 글쓰는 방법, 세미나 운영하는 방법, 학회 조직하는 방법 등도 논하고 있습니다.
오래도록 읽어왔던 독자로서 예전의 다소 냉소적이면서 화려했던 중년 남성 경제학 교수의 독설이 다소 누그러지면서 여전히 열정과 섬세함을 지닌 아줌마 교수로의 변신이 느껴졌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가 이 책의 글을 편히 읽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올해 읽은 책 중 기억에 남는 책입니다. (특히 과학철학과 인문학 분야에서 읽어야 할 책 목록을 제시하고 있어서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4. Michael Card, The Walk
마이클 카드 역시 제가 많이 찾아읽은 사람 중 하나입니다. 소위 싱어송라이터이자 성경교사인 그의 최근작인 이 책은 작고 아담합니다. 카드는 이 책에서 자신의 멘토였던 레인 박사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간의 멘토링 관계를 "함께 걷는 것(the walk)"으로 표현하고 레인 박사가 생전에 이야기하고자 했던 예수와 제자도의 메시지를 레인 박사의 삶의 단편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지만 감동적인 책입니다.

5. 조나단 와이너, 핀치의 부리
최근 생물학 관련 책들을 계속 읽고 있는데, 사실 어렵습니다. 가장 어려운 건 짐작이 안 되는 여러 동식물 이름들이 난무하는 건데 우리말이름도 어렵고, 영어이름도 어렵고, 정식 학명도 어렵고...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생물학자들의 연구 또한 어렵습니다. 단지 난해하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런 연구를 할 수 있는지 상상이 잘 안된다는 거죠. 다윈이 며칠 머물며 종의기원의 영감을 얻었다는 갈라파고스 군도에 서식하는 7종의 핀치들을 수십년의 세월 동안 직접 관찰하면서 연구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피터와 로즈메리 그랜트 교수 부부가 주인공인데, 이들이 지난 세월 동안 데리고 들어갔던 학생들은 몇년 거기서 살면서 새로운 관찰을 해낼때마다 학위 하나씩 받아 챙겨가더군요. 연구진들에 대한 경외심에서 일단 이 책은 추천할만합니다. (분량이 많아서 뒤로 가면 좀 지루하더군요).
   관련하여 매트 리들리의 "붉은여왕"은 성과 진화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처음 몇 장(chapter)에는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중반부에 접어들면서부터 진화심리학 내지는 사회생물학 류의 서술들은 (저에게는) 새로운 내용도 적고 지루하더군요.

6. 권복기 외, 아빠 뭐해
작년에 기억나는 책 중에 임신과 출산에 관한 것들이 있었다면, 올해는 당연히 육아에 대한 내용이 빠질 수 없죠. 이 책은 적극적이던 소극적이던 육아와 가사에 동참하려고 노력하는 다소 진보성향의 아빠들의 수기를 모아 놓은 겁니다. 필진 중 다수가 기자들이라 일단 글빨이 좋습니다. 시시한 내용의 글도 간혹 있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아빠 뿐 아니라 요즘 시대를 사는 젊은 부부들에게 육아와 가사노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글들입니다. 일단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편안하게 방에 엉덩이 붙이고 있을수는 없더만요. 애 한번이라도 안아주어야지.

7. 마오, 오일러가 사랑한 수 e
이 책에서 '오일러'는 중요한 인물이긴 하지만 전부는 아닌데 제목이 그렇게 붙었습니다. 이 책은 수 e의 역사입니다. e와 관련된 중요한 발견들을 인물 중심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많은 수학 대중서가 있지만 일단 e정도 되면 로그함수부터 나와야 하기 때문에 사실 전달하기 쉽지는 않습니다. 이 정도로 쉽게 재미나게 풀어쓴 저자가 존경스럽습니다.

8. 에드먼즈, 에이디노, 비트겐슈타인은 왜
이 책의 저자는 영국BBC의 다큐멘터리 전문 PD와 작가입니다. 한마디로 비트겐슈타인의 부지깽이사건을 다큐멘터리로 다룬 책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부지깽이사건이 뭐냐구요? 칼 포퍼가 비트겐슈타인이 주최하는 세미나에 와서 서로 논쟁을 벌이다가 비트겐슈타인이 부지깽이 던지고 나가버린 사건입니다. 사실 별거 아닌데 흥미를 끌기 위한 도구이고, 철학과 지식에 대한 큰 두 흐름이라 할만한 칼 포퍼와 비트겐슈타인을 평행으로 놓고 짜놓은 다큐멘터리를 상상하면 되겠습니다. 근데 미묘하게 비트겐슈타인은 비범한 천재로 포퍼는 괴팍한 고집쟁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깊이는 모르겠으나 재미는 있습니다.

9. 이경덕, 역사와 문화로 보는 일본기행
일본은 사실 우리와 매우 가까우면서도 잘 모르는 나라입니다. 언제 한번 꼭 가보고 싶기도 하구요. 이 책은 일본의 주요 관광지들을 중심으로 풍부한 사진들과 함께 문화재들과 배경이 된 역사들을 설명합니다. 사진만으로도 가치가 있습니다. (저자가 찍은 건 아니고 일본 관광청인지의 공식 자료...)

10. 싱,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와일즈가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했다고 떠들썩했던 때가 생각나는군요. 페르마의 정리와 관련된 여러 수학자들의 이야기, 개념들의 이야기...솜씨좋은 이야기꾼이 흥미진진하게 써놓은 대중 수학서입니다.

< 기타 >

- 에코, 바우돌리노-하 : 장미의이름으로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바우돌리노는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중세 유럽의 배경을 잘 알지 못하면 즐기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즉, 제가 읽으면서 어리둥절한 적이 많다는 뜻) 상권은 그래서 상당히 지루한데, 하권은 나름대로 재미 있더군요

- 프리드만,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1 : 세계화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의 이 책은 일단 제목만 잘 이해해도 어디 가서 써먹을 정도는 되겠죠. 근데 같은 얘기 반복이 지겨워서 2권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고 1권의 첫 두세 장 정도 읽어두면 괜찮을듯.

- 유시민,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 사실 이 책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은데 (틀린 내용이 너무 많아서), 그래도 우리 개혁당 유시민 대표(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를 존경하는 뜻에서 여기 올립니다.

- 이식, 전원경,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연수하면서 영국과 사랑에 빠진 부부가 써놓은 영국 예찬론입니다. 가볍게 읽어볼만.

- Lazear, Personnel Economics : 음...이건 경제학전공자가 아니면 별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책이긴 한데, 어쨌든 기존의 인사관리와 관련된 주제를 놀라운 안목과 재주로 미시경제학으로 탈바꿈시킨 작은 저서입니다.

- Tolkien, The Lord of the Rings : 이건 아직 읽는 중이기 때문에 2003년의 책에 1순위로 올라가겠습니다.

- Pinter, Set Theory & Churchill-Brown, Complex Variables and Applications : 학부 시절 샀다가 올해 와서야 읽은 수학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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