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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자오선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미국 서부 역사에 바친 핏빛 서사시
1846년에서 1848년에 미국와 멕시코는 영토 분쟁으로 인한 전쟁을 치렀다. 당시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전쟁에서 이겼고, 멕시코와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으로 맺었다. 이 조약으로 미국은 겨우 1,825만 달러를 지급하고 멕시코로부터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와이오밍 주 등을 할양 받아 한반도 넓이의 15배에 달하는 300평방킬로미터의 영토를 넓혔다. 당시 멕시코는 독립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력하게 전쟁에서 패배했고, 조약 이후에도 내부의 혼란과 더 많은 영토를 뺏으려는 불법적인 미국의 게릴군, 그리고 잔혹했던 아파치 인디언 때문에 안정적이지 못했다. 이에 멕시코 정부는 미국 용병을 고용해 아파치 인디언들을 잡으려고 했으나 오히려 그들은 얌전한 다른 인디언들이나 멕시코인들을 죽여 머리가죽을 벗기어서 멕시코 정부를 속이곤 했다.
극도로 혼란스럽고 피비린내가 자욱했던 시절이었다. 바로 이 시기를 배경으로 코맥 매카시는 『핏빛 자오선』을 썼다. 이 작품은 멕시코인들에게 고용되었던 한 용병부대원들에 대한 이야기다. 주요 인물인 대장 글랜턴, 판사, 가짜 신부 그리고 소년이다. 이들은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유린하고 학살했으며 피의 향연을 즐긴다. 매카시는 그들의 피의 여정을 시적인 표현으로 묘사해낸다. 흔히 생각하는 전개, 위기, 절정이 없다. 그저 시작이 있고 끝이 있을 뿐이다.
이 작품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작품을 읽어가면서 생각났던 의문은 작품이 다 끝나고도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런 교훈도 없고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인다. 굳이 찾아내자면 놀라운 '낯설게 하기'라고나 할까?
'낯설게 하기'. 작품에서 묘사하고 있는 수 많은 주변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은 작가의 놀라운 능력에 의해 매우 낯설게 독자에게 다가온다. 그의 묘사 하나하나가 독자의 눈동자를 강하게 자극한다. 어떻게 이런 표현이 가능할까? 놀라서 혀가 턱을 뚫고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다. 다음의 묘사를 보라.
말은 낯선 땅에 퉁명하게 발을 딛뎠고, 둥근 지구는 말발굽 아래에서 조용히 구르며 거대한 우주를 빙빙 돌았다. 그 일대의 중성적 금욕 속에서 모든 현상은 기묘한 균질성을 상속 받았고, 거미든 돌이든 풀이든 그 어느 것도 우선권을 주장할 수 없었다. 이러한 명징함으로 인해 그네들의 친숙함은 사라졌고, 명암에 아무차이도 없는 눈은 그 모두를 하나의 풍경으로 혹은부분으로 인식했다. 이러한 시각적 민주주의로 인해 선호라는 것은 일시적일 뿐이며, 사람과 바위가 뜻밖의 혈연으로 이어졌다. (322쪽)
묘사들은 끝이 없다. 숨막히게 낯선 묘사들의 잔치를 벌인다. 그러나.
그 외에는 뭔가? 그저 잔혹한 그들의 학살 행위와 사막의 모래와 먼지로 인해 목구멍과 눈구멍이 답답할 뿐이다. 피비린내에 코를 틀어 막고 책장을 마구 넘길 뿐이다. 도대체 뭔가?
그러다 미국의 서부 역사에 대해 알게 된 후에야 이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매카시는 『핏빛 자오선』을 통해 잔혹했던 그들의 역사를 구현함으로서 현재 미국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뿌리에 대한 반성적 사고를 하게 만든 것이다.
사실 자신의 핏빛 어린 과거를 알게 되었을 때,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해 인간은 얼마나 많은 감사를 하게 될까? 평온하고 풍요한 삶을 사는 자들에게는 지금의 삶이 당연한 듯 여겨지기 마련이다. 감사를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처절한 삶이 과거에서 자신들의 뿌리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마침내 현재의 삶에 대해 감사하게 될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잊을 수 없는 과거의 잔혹함. 그렇다. 이 작품은 미국인들에게는 무의식의 뿌리인 것이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한 부분인 것이다. 때문에 이 작품의 그들에게 의미가 있다.
놀라운 것은 이토록 잔혹한 역사를 서사시적인 묘사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또한 독특한 캐릭터(특히 판사)를 내세워 다큐멘터리식이 아닌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판사의 지적인 말들과 행위 그리고 그 신비스러운 폭력성 등은 이야기의 재미를 만들어낸다.
다만 내가 한국인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이 작품을 보면, 잔혹함에 대한 강렬한 묘사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닐 수가 있다. 도대체 이런 이야기들을 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펼쳐놓아야만 하는가? 그래서.
솔직히 재미가 없고 지루하기도 하다. <타임>에서 선정한 100대 영문소설이라고는 하지만(그래, 작품 속에 나타나는 묘사들은 정말 놀랍다), 한국인인 나에게는 그다지 위대한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 작품은 정말 미국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