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에 대한 복종
스탠리 밀그램 지음, 정태연 옮김 / 에코리브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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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은 자연스럽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논했을 때 사람들은 그녀의 생각을 비웃거나 적어도 의아해했다고 한다. 유태인인 그녀가 유태인 학살에 앞장 섰던 '아이히만'의 법정 진술 "명령에 충실했을 뿐이다"라는 말을 해명해주는 이론을 왜 말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태인들은 아마도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나도 왜 한나 아렌트가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른 자를 위한 변명을 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아니 무엇보다도 그녀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의심스러웠다. 어떤 사람이든 아이히만처럼 극악무도한 죄를 죄책감 없이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은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런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개운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아이히만처럼 극악무도한 죄는 아니더라도 작은 죄는 아주 쉽게 저지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는 그것에 대해 양심을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아주 쉽게 '남들도 다 하는데'하면 내 자신을 합리화 한다. 또한 국가를 위해서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들은 적이다. 내가 안 죽이면 그들이 날 죽일 것이다. 국가의 영광스러운 명령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 전쟁에 참여해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찾던 중 나는 바로 이 책, 밀그램의『권위에 대한 복종』을 알게 되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개념에서 출발한 나는 몇 년 전에 있었던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평범한 미군이 이라크인들을 학대했던 사건을 보면서 더욱 궁금증이 커졌고, 마침내 이 사건을 해명해 준 짐 바르도의『루시퍼 이펙트』를 통해 밀 그램의『권위에 대한 복종』을 만나게 된 것이다. 짐 바르도의 책도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인간이 상황과 그 상황에 맞는 명령에 얼마나 쉽게 악한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스탠포드 대학의 가상 교도소 실험 내용이 흥미진진하고 충격적으로 담겨져 있었다. 그러나 밀그램의『권위에 대한 복종』은 그 보다 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밀그램은 이 책에서 인간이 어째서 악의적인 상황 속에서 주제적으로 도덕적인 결정을 하지 못하는지주도면밀하게 짜여진 심리 실험을 통해 보여주고 해명을 하고 있다. 그가 최종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은 권위에 복종하고자 하는 경향을 가지고 태어나며 가정과 사회의 권위적인 구조 내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 경향이 강화되었기 때문에 악의적인 상황 속에서조차도 권위에 대해 복종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권위에 대해 복종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숨을 쉬고 음식을 섭취하는 것과도 같다.

  밀그램은 인간이 권위에 대해 복종하는 경향을 가지게 된 이유를 근본적으로 진화론의 입각해서 설명한다. 진화론적으로 인간은 혼자서 살아가기보다는 여럿이 함께 모여서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아니 자연에 의해 지금처럼 집단으로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는 인간 종이 선택된 것이다. 집단으로 사회 생활을 하는 모든 동물들에게 해당하는 얘기지만 집단에 속하는 각 개체들은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질서 속에 편입되어야만  한다. 만약 각 개체들이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질서를 거부하고 제멋대로 살아간다면 그 집단은 금세 파괴될 것이고 아마도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현재까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 이렇게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질서의 특징은 바로 위계적이라는 점이다. 즉 피라미드 구조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명령체계와 계층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위계적 질서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 개체는 명령체계와 계층 구조를 자신의 내부 질서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복종하고자 하는 경향이다. 

  밀그램의 이러한 설명은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별 설득력이 없겠지만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거부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나 자신에게도 그렇다. 이러한 밀 그램의 설명을 읽고 나서 너무 깜짝 놀랬다. 내가 그토록 거부하고자 했던 권위에 대한 복종이, 사실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니! 오히려 권위를 거부하는 행위가 부자연스럽고 비인간적인 것일 수 있으며, 나아가 심리적으로 매우 큰 충격을 준다는 점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밀 그램이 처음부터 이런 전제를 깔고 실험을 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실험을 자기가 원하는 결과가 잘 나오도록 계획하지 않았다. 오히려 밀그램 자신조차도 인간이 악한 행위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권위에 대해 거부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실험을 계획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던 것이다. 책에서 밀그램은 그 결과에 대해 자신조차도 충격적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더욱 철저하고 세밀하고 실험 조건을 조작해서 엄밀한 결과를 얻고자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조건 내에서 실험을 했다.

 <실험 조건>
1. 장소에서 나오는 권위 (스탠포드 대학 실험실 → 일반 사무실)
2. 희생자의 요구:피험자의 도덕적 성향에 호소하기(처음에 없었다가 → 차츰 강도를 높여 호소함)
3. 실험자 존재여부:권위자의 존재 여부에 따른 복종 상태
4. 여자와 남자, 즉 성별에 따른 권위에 대한 복종 상태
5. 피험자 스스로 충격 조건 선택하기 
6. 전기 충격을 희생자가 요구할 때(권위자가 아닌 사람이 복종을 원할 때)
7. 일반인이 명령할 때(상황에 맞는 권위를 가지지 못한 자가 복종을 원할)
8. 권위자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9. 동료가 전기 충격을 가하고 있을 때 또는 동료가 전기 충격을 주라는 명령을 거부할 때

  이 외에도 다양한 조건에서 실험을 했지만 결국 답을 하나로 모아졌다. 인간은 정당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권위자)의 명령에 복종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정당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이미 판단했다면 그 사람이 설사 내 도덕적 관념과 어긋나는 명령을 한다고 해도 인간은 그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더 편한게 여긴다는 점이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물론 모두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6:4 정도로 복종하는 사람이 많았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과연 유의미한 차이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이 실험이 복종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복종이 잘 이루어지지 않도록 실험 조건을 형성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복종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실험 조건(상황)에서도 피험자들은 6:4 정도로 복종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밀그램의 철저한 실험과 세밀한 분석은 심리 실험이 단지 그 실험 상황에만 맞는 결과라는 점을 부인한다. 실제로 밀 그램의 실험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반복적으로 실시 되었지만 그 결과는 엇비슷하다. 다시 말해서 밀 그램이 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와 그 결과를 근거로 해서 추론한 결론은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인간이 권위에 복종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어 복종할 때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현상인 것이다. 

  이제 밀그램의 설명을 통해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교도소에서 일어난 현상의 근본적 원인도 알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나 자신조차도 언제든지 악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족종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과연 그 사람들은 어떻게 불복종 할 수 있었던 것일까? 도덕적으로 더 뛰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그것은 아니다. 그들이 도덕적으로 뛰어났다기보다는 단지 불복종적인 인간이었던 것 뿐이다. 어쩌면 진화론적으로 그들은 위험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듯 처음부터 악하거나 선한 것이 아니다. 그저 복종하려는 경향이 있었을 뿐이다. 단지 자라온 환경에 따라 좀 더 잘 복종하거나 잘 복종하지 않을 뿐이다.  

   밀그램의 이러한 결론은 논쟁의 여지가 많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진부한 논쟁에서부터 시작해서 죄 지은 자를 처벌하기 위한 근거로서 개인적인 의지에 관한 문제를 처리할 때 상황을 얼마나 참고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 그리고 복종과 충성에 대한 도덕적 가치 판단까지 끝이 없을 듯하다. 아무튼 밀그램의『권위에 대한 복종』은 인간이 권위 체계 내에서 악한 명령에 복종하는 이유를 치밀한 분석으로 잘 설명해냈다. 근래에 만난 책 중에서 이토록 치밀하게 상황을 분석한 책이 없을 정도다. 제래드 다이아모든의『총, 균, 쇠』와 더불어 인간의 보편적인 행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데 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정말 강력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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