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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ㅣ 막스 베버 선집
막스 베버 지음, 박성수 옮김 / 문예출판사 / 199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막스 베버가 살던 당시(19세기 말~20세기 초), 서양은 자본주의적으로 크게 발달된 상태였다. 물론 모든 서양 국가들이 다 발달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가톨릭보다는 프로테스탄트를 믿는 나라들이 자본주의적으로 더 크게 발달하였고 세계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영국이다. 영국은 일찌감치 가톨릭이 영국 국교회(1534년)를 형성하였는데, 영국 국교회는 후에 프로테스탄트(루터파와 칼뱅파)의 영향을 받았다.
막스 베버가 보기에 이러한 현상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어떤 차이 때문에 생기는 것 같았다. 물론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단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어떤 차이만을 얘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분명 먼 과거로부터 소급되는 역사적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어떤 차이가 경제적 현상을 만들어냈다기보다는 경제적 현상의 차이가 각 국가나 사람들의 종파 상 소속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분리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자연이나 교통조건을 통해 번성하고 경제적으로 발전된 부유한 여러 지역, 특히 많은 수의 부유한 도시들은 16세기에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했으며, 그 결과 프로테스탄트는 오늘날(막스 베버가 이 책을 썼던 당시)에도 경제적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상태에 있게 되었다. 막스 베버의 이러한 설명은 그가 유물론적인 역사관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즉 왜 경제적으로 발전된 지역에서 종교개혁을 받아들인 것일까? 왜 그들은 가톨릭에서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한 것일까? 더군다나 당시(막스 베버가 살던 당시)와는 달리 프로테스탄트(당시 프로테스탄트들은 세속적이며 물질주의적이라고 비판을 받을 정도였다.)는 그 출발점이 배금주의나 진보적 계몽주의와는 거리가 있었다. 즉 초기 프로테스탄트는 교회가 더욱 강력하게 인간 개개인의 삶을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성경 중심의 원칙론을 내세웠으며 대단히 금욕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러한 프로테스탄티즘이 경제적으로 발달된 나라나 지역 그리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된 것일까?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바로 이 문제를 해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2. 막스 베버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 사이에 어떤 세력이 형성되면 그 세력은 자신들을 양적, 질적으로 확대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세력을 양적, 질적으로 확대하려고 할 때 쓰는 방법이 다양하게 있겠지만 그 중에서 집단의 결집력을 높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역사적으로 보건데 도시 국가, 부족 국가 든 아니면 거대한 제국이든 국가가 생기면 그 국가는 국민들을 통합하기 위해 하나의 사상을 원한다. 국가가 형성되던 초기에는 종교가 국민통합을 위한 하나의 정신적 가치 역할을 했다. 우리의 역사 시대 중 삼국시대에 각 국가가 국가를 정비하면서 불교를 받아들인 것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서구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로마제국은 거대한 제국을 이루면서 다양한 민족과 계층이 함께 살게 되었는데 지도층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국가를 통합할 만한 정신적인 가치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크리스트교를 국교화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세력은 자신들의 세력을 강화하고 성장시키기 위해서 집단을 통합할 수 있는 정신적 가치가 필요하게 되는 데, 16세기 유럽에서 새롭게 성장하고 있던 세력들, 즉 중소 상공인들(부르주아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 부르주아지들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정신적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일차 대상은 아마도 당시 유럽 최고의 정신적 가치인 가톨릭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을 부르주아지 세력들이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가톨릭은 교황이나 황제, 귀족들의 정신적 가치로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마침 종교개혁 세력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종교개혁 세력들이 만들어낸 정신적 가치가 우연히도(정말 우연이었을까? 이 점에서 막스 베버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내 생각에 종교 개혁 세력과 부르주아지 세력이 만나게 된 것은 어떤 거시사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내 실력으로는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부르주아지 세력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 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부르주아지 세력들은 종교개혁 세력들이 만든 정신적 가치를 자신들의 정신적 가치로 받아들였고, 부르주아지 세력들의 가치와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적 가치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막스 베버가 살던 당시 관찰되었던 프로테스탄트들이 지배하는 국가를 형성했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막스 베버는 16세기 유럽에서 있었던 종교 개혁 세력의 등장으로 발생된 새로운 정신적 가치와 새롭게 형성된 부르주아지 세력이 서로 잘 맞아 떨어져 공존하게 되었고, 그 공존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오늘날(막스 베버가 살던 당시) 부유한 국가에 프로테스탄트들이 많이 살게 되는 현상이 일어났다고 해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새로운 의문이 떠오른다. 종교 개혁 세력이 만들어낸 새로운 정신적 가치란 무엇이며, 부르주아지 세력들의 가치의 특징은 무엇이었기에 그 두 가지가 서로 잘 맞아떨어진 것인가? 막스 베버는 우선 각각을 이렇게 명명했다. 종교 개혁 세력이 만들어낸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 각각의 종교 개혁이 세력이 갖고 있는 정신적 가치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하여 -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라고 불렀고 부르주아지 세력들의 가치를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불렀다.
이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를 살펴보자. 각 종교 개혁 세력들이 만든 종파 간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종교 개혁 세력들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기존 가톨릭처럼 교회나 신부가 중간에 끼어 든 관계가 아닌 신과 개인이 직접적인 일대일의 관계로 보면서, 인간 개인의 구원을 개인의 문제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가장 핵심적인 윤리를 말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게 산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인데, 하나님과 직접 만나 구원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 삶이 좋다는 것만이 하나님의 은총이 내게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다양한 윤리들이 나오게 되는데, ‘성실’, ‘금욕’, ‘공리주의’, ‘이타주의’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렇게 산다고 해서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좋게 살기’ 라는 목적에 이러한 윤리가 도움이 되고, 그래서 좋게 산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하며 안심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좋게 산다’는 것이 부르주아지 세력들의 가치인 부의 축적과 연결이 된다. 또한 부의 축적을 위해서는 성실하고 금욕적으로 사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의 모든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연결되면서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이 발견되게 되는데, 그것이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다.
막스 베버는 이렇게 해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관계를 해명했다. 물론 여기까지의 설명은 어디까지나 내가 막스 베버의 해명을 이해하여 내 식대로 풀어 쓴 것이다. 그러므로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직접 읽어야 한다. 다만 이런 방식으로 막스 베버의 해명을 이해할 수도 있다고 제안하는 것이니 참고를 하면 좋겠다. 당연히 비판적인 관점을 가지고 말이다.
3. 평가하기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관계를 해명하면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가 원인이 되어 자본주의 정신을 형성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다. 다만 영향을 미쳤다는 것만은 사실이며,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오늘날 자본주의 부패 상황을 보면 과연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에 영향을 미쳤기는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가 전폭적으로 자본주의 정신에 영향을 미쳤다기보다는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즉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 같은 경우는 자본주의를 형성하는데 큰 도움을 주어서 부르주아지 세력들이 자본주의 정신으로 받아들였지만 검소한 생활이나 공리주의적 사고 등은 자본주의를 형성하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 자본주의는 적절한 소비와 이기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막스 베버의 통찰은 매우 훌륭하다고 본다. 서구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또 하나의 지배적인 가치인 자본주의 정신의 관계를 매우 자세하게 해명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막스 베버가 살던 당시의 자본주의 매우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며, 세속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테스탄티즘과 관계를 생각해보려고 했던 그의 가설 세우기 능력과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서 각 종파를 하나씩 살펴보고 분석해 보는 것은 매우 탁월한 능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