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책 쏜살 문고
토베 얀손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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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도 외할머니와 이렇게 지낼 수 있었을까?'

나를 바라보던 내 순간 그러했듯이, 아마도 여전히 한결같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에서 세상을 굽어보고 계실 외할머니가 읽는 내내 떠올랐던 책.

(여담이지만 내가 사리를 분별하고 남들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외할머니는 귀가 많이 안 들리셔서 농담을 주고받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곳은 모두 정정하셔서 아흔이 넘도록 밭일을 하며 지내셨다)


머릿속에 떠오른 궁금증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보고 어른 앞에서도 할 말은 하는 당찬 아이 소피아, 부러질지언정 좀처럼 휘지 않는 성깔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손녀딸과 언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소피아의 마음만큼은 다치지 않게 석양처럼 소피아를 감싸주는 할머니.


매해 따스한 계절이 되면 소피아와 아버지와 할머니는 외딴섬에 있는 별장을 찾는다. 낯선 친구들을 별장에 초대하기도 하고, 할머니와 풀밭에 누워 하늘나라를 상상해 보기도 한다. 섬을 통째로 삼켜버릴 것 같은 폭풍우를 함께 겪기도 하고, 죽은 오리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이웃 섬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낯선 이들을 몰래 정찰하다가 부끄럽게 들키기도 한다.


예상을 깨는 어린아이의 당돌함이 읽는 내내 신선했는데, 그 당돌함은 아이의 언행을 어떤 방식으로든 포용할 수 있는 지혜를 지닌 할머니의 토양에서 싹텄을 거란 점은 굳이 말로 드러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토베 얀손'은 그 유명한 무민 시리즈를 연재한 작가다. 1914년 핀란드에서 태어나 주로 회화 작품 활동을 하다가 무민 시리즈를 연재하며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안데르센상을 수상했고, 인생의 후반부에는 다수의 소설 작품을 집필했다. 묵직한 여운이 있었던 토베 얀손의 다른 소설집 <두 손 가벼운 여행>과 영화 <토베 얀손(Tove)>(2020)까지 접한 뒤 이 책을 펼쳐보니 아무래도 <여름의 책>에 등장하는 천방지축 소피아와 담배를 좋아하는 소피아의 할머니는 모두 토베 자신을 글로 그려낸 것만 같다.


펼치고 싶은 것이 많을 예술가로서의 섬세한 내면과,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을 한 인간으로서의 내면.




"책은 안 되겠어." 소피아가 성을 내며 말했다. "맞춤법을 계속 고민해야 하면, 그것 때문에 방해가 돼서 생각을 할 수가 없잖아. 그럼 어디까지 썼는지도 기억이 안 나고. 그럼 다 뒤죽박죽이 될 거야!"
책은 여러 장으로 되어 있었고, 전부 엮어서 제본이 되어 있었다. 소피아는 책을 바닥에 던졌다.
"제목이 뭐니?"
"조각난 지렁이에 대한 논문. 하지만 못 쓸 거야!"
"앉아서 불러 보렴." 할머니가 말했다. "뭐라고 쓸지 네가 말하면 내가 쓸게. 시간은 많잖아. 안경이 어디 갔지?"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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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불 선진국 - 연대와 공존, 사회권 선진국을 위한 제언
조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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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은 뒤의 마음을 글로 정리하기 힘들 때가 있다. 이 책의 경우엔 술술 읽다가도 문득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아픔 위에 이 활자들을 쌓은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 먹먹했다. 독서 감상을 나중으로 미룰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은 이유다.


대한민국 앞에 붙는 '선진국'이라는 칭호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희생을 대가로 미리 당겨 받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소외되었던 자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인 '사회권'을 이제는 자유권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p.21

선진국 대한민국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급·계층·집단의 희생에 기초하여 이루어졌고, 불평등과 양극화라는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선진국이라는 칭호는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미리 당겨 받은 칭호다. 이 점에서 대한민국은 '가불 선진국'이다.


교수, 국가인권위원, 민정수석비서관, 법무부 장관 업무를 수행하며 오랫동안 고민해온 사안을 담은 책인 만큼 내용의 폭이 넓고, 사례는 구체적이고, 수치는 명확해서 읽는 맛이 있었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1, 2장에서 문재인 정부의 성과와 현재를 진단하고 3장에서 7장에 걸쳐 대한민국의 앞날에 놓인 과제를 하나씩 살펴보는 형식이다.

(3, 4장: 주거 및 지역 균형 / 5, 6장: 노동 인권과 경제민주화 / 7장: 사회적 차별)


세계 속 한국의 위상에 높아진 데에는 현 정권의 외교, 안보, 방역 성과가 큰 몫을 했고 정치, 경제, 민생 부문에서도 어느 정도 성과를 내었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언론자유지수는 높아졌고, 권력기관(국정원, 기무사령부)의 민간인 사찰이 폐지되었으며, 검경 수사권이 조정되고 공수처가 설립되었다. 건강보험 보장이 강화되었고 청년 정책의 폭이 넓어져 민생에 숨통이 트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소득·자산 격차가 심화했고, 집값은 여전히 오르고 있으며, 지방간 불균형도 여전하다.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산업재해도 잇따르고 있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 감염병으로 인해 정부 중후반의 역량을 경제 살리기에 쏟아야 했던 고충은 백번 이해하지만 아쉬움이 따른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p.87

양극화 자체도 문제지만, 계층 상승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2018년 OECD는 한국의 저소득 계층이 중산층으로 이동을 하려면 다섯 세대, 약 15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이는 OECD 평균인 135년보다 높은 수준으로, 미국, 영국, 이탈리아와 같은 수준의 시간이다).

p.90

2021년 7월 통계청의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도권 인구가 처음으로 2,600만 명을 돌파했다. 총인구 5,182만 9,000명 가운데 50.2퍼센트가 수도권에 사는 것이다. (중략) 우리나라는 GDP의 51.8퍼센트, 일자리의 49.7퍼센트가 수도권이 집중되어있는 상태다.


흥미롭게 읽었던 대목은 '주거'를 다룬 3장이었다. 내 집 장만은 갈수록 요원해지고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하는 상황을 타개할 방법으로 다양한 주거 형태를 제시한다. '사회주택의 천국'이라 불리는 네덜란드의 총 주택 대비 장기 임대 공공주택 비율은 무려 34%에 달하는데, 20세기 초반에 유명 건축가들이 '사회주택은 사회적 예술'이라 여겨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덕에 뛰어난 미적 감각을 뽐낸다. 공공주택에 대한 멸시나 선입견은 없다. <도시별 삶의 질 순위 보고서>에서 10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비엔나에도 좋은 입지에는 멋진 디자인의 임대주택이 자리 잡고 있다.

주거는 물량 공세로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닌 만큼, 주거 문제를 분석한 뒤 '지역 균형'으로 자연스레 초점을 옮겨가는 저자의 식견이 명쾌했다. 5천만 인구 중 50%가 수도권에 살고 있으며 일자리의 49%가 수도권에 몰려있다는 <2020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는 더 이상 놀랍지도 한다.


5, 6장 '노동 인권과 경제민주화'에서는 비정규직 문제(동일 노동 동일 임금, 사회연대임금제). 주 4.5일 노동제, 산업재해, 프랜차이즈 본사·플랫폼 기업의 갑질에 관해 고민해본다. 7장에서는 여성,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탈북민이 어떻게 사회권을 침해받고 있는지, '권리를 보장받을 권리'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세상에 맞서야 하는 이들의 현실을 살핀다.


맺음말에서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사회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자유권은 유명무실해짐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선진국 칭호를 가불한 대한민국에 꼭 맞는 제도를 만들어가려 해도 모자랄 텐데, 앞으로의 대한민국이 전진은 커녕 뒤로 가진 않을지 걱정스럽다.


p.217

사회권은 국가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다. 권리는 그 주체가 요구하고 주장해야 권리가 된다. 헤겔은 말했다. "의무만 있고 권리 주장이 없는 사람은 노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나치즘, 파시즘, 개발독재 등에서 발생한 자유권의 부재를 비판하고 넘어서면서도,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사회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자유권이 유명무실해짐을 직시해야 한다. 법철학자 존 롤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평등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새로운 '반성적 평형'을 이루어내야 한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의와 형평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새로운 규칙과 제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정경심 교수는 '사실과 법리 판단에 대하여 심각한 이견이 있지만'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수형 생활을 하고 있다. 부산대와 고려대는 딸 조민의 학위를 취소했다. 두 대학교는 작년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표창장, 생기부 일부 내용)이 대학교 합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지만 대선 이후 연달아 학위를 취소시켰고, 한 학생의 지난 10년과 앞으로의 미래는 송두리째 날아갔다. 고려대 학위 취소가 발표되자 뇌종양이 있는 정경심 교수는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곽노현 전 교육감을 비롯한 교수·연구자 2,500명은 '조민 입학 취소는 최악의 학폭'이라며 부산대와 고려대에 '연좌제 처벌'을 질타했다. '교수가 제자를 보호하는 데에 사용해야 할 대학 자율권이 발휘되기는커녕, 대학이 특정 학생의 미래를 박탈했다'는 취지다.


조국 전 장관과 그의 가족이 힘든 시기를 부디 건강하게 잘 버텨주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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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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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아가는 이상 후회는 피할 수 없다. 조금 전 입 밖으로 낸 말에 ‘아차’ 싶기도 하고, 몇 년 전 일을 곱씹으며 두고두고 후회하기도 한다.


여기, 노라 시드의 인생은 후회로 점철되어 있다.


학창 시절, 그녀는 올림픽을 내다보는 전도유망한 수영 선수였다.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루어줄 거라는 아빠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수영보다는 음악에 더 흥미를 느꼈고, 수영을 그만두고 친오빠와 함께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노라는 아빠를 실망시켰다.


노라의 밴드는 곡을 만들고 공연을 하며 제법 유명세를 얻었지만 남자친구 ‘댄’은 노라의 밴드 활동을 탐탁지 않아 했다. 댄의 꿈은 노라와 함께 펍을 운영하는 것. 그녀는 이제 막 궤도에 오른 밴드 활동 대신 댄과의 사랑을 택했다. 친오빠는 애지중지하던 밴드 활동을 접은 뒤 생활고에 시달렸고, 안부조차 물을 수 없을 만큼 소원한 사이가 되었다. 밴드 활동을 함께했던 동료의 원망은 덤이었다.


사랑하는 ‘댄’과의 미래를 그리며 밴드를 그만두었건만, 노라는 결혼식을 이틀 앞두고 일방적으로 결혼을 깼다. 그렇게 댄의 인생도 망쳤다. 함께 호주에 가서 살아보자는 단짝 ‘이지’와의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엄마는 투병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수영 선수가 되길 염원했던 아빠도 더는 세상에 없다.


이제부턴 그녀가 죽음을 선택하기 전 아홉 시간 동안 겪은 좌절들이다.


기르던 고양이 ‘볼테르’가 차에 치여 죽었다.

12년을 일한 동네 악기점에서 해고되었다.

한때 단짝이었던 이지에게 용기 내어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피아노 과외를 망쳤다. 그리곤 잘렸다.

옆집 할아버지 ‘배너지 씨’가 ‘이젠 자네가 내 약을 타오지 않아도 돼’라고 말했다.


이제 그녀를 필요로 하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살아가며 행한 모든 선택은 모두에게 불행한 쪽으로 흐른 것 같다. 아무래도 그녀는 이번 삶에 적합하지 않은 모양이다. 노라가 내린 모든 결정은 재앙이었을까.


이 소설에서 이야기를 움직이는 소재인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말 그대로 0시 0분 0초에 존재하는 자정의 도서관이다. 후회와 좌절로 가득한 삶 대신 죽음을 선택한 노라 앞에 미드나잇 라이브러리가 펼쳐진다. 여기에서 의문이 든다. 왜 하필 ‘자정’일까.

이따금 생각한다. 시침과 분침과 초침이 하나로 포개어지는 밤 12시는 인간이 만들어낸 기묘한 개념인 것 같다고. 세 개의 바늘이 하나가 되는 순간, 또각또각 흐르던 시간은 잠시 멈춰서는 듯 보인다. 자정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그 어딘가에 있다. 이때 초침이 정적을 깨고 오른쪽으로 아주 조금만 기울면 날이 바뀐다. 리셋. 새로운 날이 시작된다. 애들 장난 같기도 하지만 우리의 관념은 그렇게 돌아간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도 자정을 가리키는 시계처럼 묘한 관념의 경계에 잠시 존재한다. 삶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가능성의 공간. 노라는 모든 것의 경계에서 ‘이렇게 했더라면’이라는 많은 선택의 가능성을 더듬어본다.

“너에겐 선택의 경우만큼이나 많은 삶이 있어. 네가 다른 선택을 한 삶들이 있지. 그리고 그 선택은 다른 결과로 이어져. 하나만 달라져도 인생사가 달라진단다. 자정의 도서관에는 그런 인생들이 모두 존재해. 너의 이번 삶만큼이나 실재하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p.52
0시를 가리키는 시계와 노라 내면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물성을 같이한다. 날이 바뀐다고 해서 시계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듯, 다양한 삶의 형태에 내던져지는 노라 역시 자신의 호흡대로 살아갈 따름이다.

‘이것이 그녀가 살지 못해서 슬퍼했던 삶이었다. 살지 못해서 자책했던 삶이었다. 존재하지 못해서 후회했던 순간이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p.87
노라가 선택하지 못해 후회한 수많은 삶에 행복만 있는 건 아니다. 지독한 절망감도 따른다. 노라는 깨닫는다. 선택을 할 수는 있을지언정 결과까지 선택할 순 없다는 사실을. 후회와 절망으로 얼룩져 죽음을 택했던 노라는 아이러니하게도 꿈에 그리던 삶을 경험함에 따라 후회로 점철된 원래 삶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를 깨닫는다. 이야기 막바지에 이런 문장이 있다.

‘감옥은 장소가 아니라 관점이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p.401
마지막 장을 덮으며 떠오른 문장이 있다. ‘살다 보면 참 별일이 다 있어요.’ 몇 년 전 책을 읽다가 마음에 콩 박힌 문장이다. 살아가는 이상 후회는 어떤 형태로든 삶에 깃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노라나 마찬가지다.

그래, 대단할 거 있나. 우리는 순간을 산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우리는 매 순간 점을 찍고, 점들은 우리가 돌아볼 때 비로소 선이 되어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다. 언제 어떻게 돌아보느냐에 따라 선은 올곧게도, 삐뚤빼뚤하게도, 가늘게도, 두껍게도 보인다. 노라가 살아가며 찍은 점들은 그녀가 돌아볼 때마다 형태와 색을 달리하며 그녀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노라가 서른 살쯤 더 먹은 뒤엔 멋지게 주름 잡힌 얼굴로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너에겐 선택의 경우만큼이나 많은 삶이 있어. 네가 다른 선택을 한 삶들이 있지. 그리고 그 선택은 다른 결과로 이어져. 하나만 달라져도 인생사가 달라진단다. 자정의 도서관에는 그런 인생들이 모두 존재해. 너의 이번 삶만큼이나 실재하지. - P52

이것이 그녀가 살지 못해서 슬퍼했던 삶이었다. 살지 못해서 자책했던 삶이었다. 존재하지 못해서 후회했던 순간이었다. - P87

옥은 장소가 아니라 관점이었다. -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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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피엔스, 새로운 도약 - 대한민국 대표 석학 8인이 신인류의 지표를 제시하다 코로나 사피엔스
김누리 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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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온 나라가 난생처음 접하는 바이러스에 벌벌 떨었고,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선진국이라 여겼던 나라들의 일상이 멈추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다른 나라에 견주어 일찌감치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접한 한국은 작년 이맘때 큰 공포와 혼란 속에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 정부는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잘 억제했고, 대대적인 셧다운에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팬데믹 상황을 비교적 잘 헤쳐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온 나라가 '올스톱' 해야 했던 미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다. 한국이 순항만 해온 것은 아니다. 일자리를 잃거나 비자발적 휴직 또는 수입 감소로 빈곤한 상황에 내몰린 평범한 사람들. 상대적으로 열악한 노동 환경에 내몰린 사람들.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 듯 보였지만 조금씩 곪아온 사회 문제들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젠 코로나19와 함께하는 일상이 제법 익숙하다. 외출할 때 마스크를 찾는 건 당연한 일이 되었고, 오히려 집 밖에서 마스크를 벗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마주치면 머릿속에 '앗!' 하고 느낌표가 떠오르니 말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 사회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은연중에 느끼고 있다. '우리의 어디가, 어떻게 이상한 걸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한 번쯤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은 이유다.

<코로나 사피엔스, 새로운 도약>은 방송사 CBS의 '지식GSEEK콘서트' 시리즈 중 여덟 개 강연을 보강해 엮은 책이다.

독일어, 경제, 환경, 외교, 트렌드, 의료 분야의 전문가가 저마다의 관점으로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한다.

<오늘부터의 세계>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던 2020년 7월에 출간된 책이다.

<오늘부터의 세계>가 '코로나 시대를 맞이해 인류를 돌아보는 책'이었다면

<코로나 사피엔스, 새로운 도약> '코로나19를 발판삼아 더 나은 미래를 그려보는 책'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은 공평하지 않았고,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하고 가속화했어요. 코로나19가 특정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에게 더욱 위험하다고 하는데, 그에 못지않게 위험한 사람은 불평등 구조의 최하단에 있는 사람들이었죠. 소규모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등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 길이 막막한 그들 역시 '빈곤'이라는 치명적인 기저질환을 피할 길이 없었던 겁니다.

(1장 '라이피즘, 신인류의 이념', 김누리, 원문 31쪽)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본 적 있을 거다. 불평등 구조의 최하단에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하다는 사실 말이다.

1장에서 김누리는 자본주의를 '자전거 페달을 멈추면 넘어지는 것과 같이, 생산을 멈추면 쓰러지는 체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개인 차원에서는 인간의 삶life, 사회 차원에서는 개인의 생존life, 생태 차원에서는 인간의 생명life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라이피즘lifism을 제안한다.

장하준은 앞으로의 복지 정책이 '선별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선별적 복지는 행정비용도 많이 들고 정치적으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복지와 성장은 상충하지 않는다. 복지가 강할수록 새로운 성장동력을 잘 만들어낼 수 있다'는 부연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기술 혁신이 가속화하고 평생직장 개념도 없어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이 전직하기 쉽고, 구직하기 쉽고, 재교육도 받기 쉬운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경제가 잘 적응하고 발전할 수 있어요. 자꾸 보수적으로 생각해서 "옛날식으로 노동권도 없이 복지도 없이 살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럴 거면 지난 70년 동안 땀 흘리며 경제 개발을 왜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2장 새로운 성장동력, 장하준, 원문 60쪽)

최배근기본소득 이야기도 낯설지만 흥미로웠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이전부터 꾸준히 있었다지만 '기본소득이 있으면 괜찮을 것도 같은데?'라는 생각을 사람들이 해보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전 국민 재난기본소득' 지급일 것이다.

요즘 들어 자주 언급되고는 있지만 기본소득 이야기는 여전히 낯설고 궁금한 주제다. 각국의 기본소득 실험과 결과,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하는 근거를 차근차근 설명하는 대목에서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중요한 것은 청년들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복지'나 '퍼주기'의 관점이 아닌 '투자'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왜 '투자'인가 하면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만들 수 있어야만 그 사회의 미래도 지속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노동력이나 자본 투입의 증가를 통해 성장을 만들 수 있는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향후 성장은 생산성, 즉 혁신의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4장 혁신의 조건, 최배근, 원문 125쪽)


한편, 김준형은 지금 세계가 '팍스아메리카나'가 몰락하고 '뉴노멀' 상황에 들어섰다며, 새로운 질서 속에서 한국이 어떤 자세를 취하면 좋을지 고민한다.


코로나19 이후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보았을 겁니다. 뉴노멀은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 등장합니다. 아직 새로운 질서가 명확하게 확립되기 이전이므로 뉴노멀의 기대에는 불안정성, 불평등성, 불확실성 등의 비정상적 현상이 지속되죠. (중략)

국제질서가 코로나19로 인해 본격적인 '뉴노멀' 상황으로 진입한 것입니다.

(6장 탈세계화의 가속, 김준형, 원문 173쪽)

사실 우리는 이미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어요. (중략) 이제 언제라도 새로운 팬데믹이 올 수 있겠구나, 하는 경각심을 갖게 됐죠. 그런 점에서는 코로나19가 좋은 기회를 제공한 것입니다. 이제라도 의료체계와 사회안전망의 취약점을 개선해서 또 다른 감염병의 대유행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해요.

(8장 위드 코로나 시대, 이재갑, 원문 235쪽)


'백신만 맞으면 코로나19는 종식되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앞으로 인플루엔자처럼 우리의 일상에 머무르거나, 새로운 바이러스가 창궐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인 것 같다. 이재갑도 여기에 의견을 보탰다. 그러니까, '백신만 맞으면 문제 해결!'이 아니라는 거다. 코로나19 시대를 지나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모색해야 한다.

이 책에는 여러 분야의 이야기가 실렸지만 유독 경제 이야기의 비중이 크다.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가 조금 더 골고루 실렸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해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경제 이야기 비중이 높은 건 그만큼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게 경제 구조의 변화이기 때문이 아닐까. 코로나19 팬데믹을 통과해오면서 '잘 사는 사람은 계속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점점 더 척박한 환경으로 내몰리더라. 그러면 사회 전체가 위험해지더라'라는 공통된 문제의식이 우리 모두에게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이 책을 엮은 CBS 박재철 PD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민주화 시대'나 'IMF 시대'처럼 역사는 지금을 '코로나19 시대'로 명명할 것이라고.

코로나19는 기존 제도와 가치관에도 치명적인 바이러스여서, 근본적이며 전방위적인 진단과 처방을 요구하는 사태를 우리 앞에 펼쳐놓았다고.

코로나19 팬데믹을 1년째 경험하고 있다.

이젠 익숙해져 버린 코로나19 속에서, 이제는 더 나은 가치와 가치를 담아낼 틀을 다 함께 치열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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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의 세계 - 세계 석학 7인에게 코로나 이후 인류의 미래를 묻다
안희경 지음, 제러미 리프킨 외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 안희경이 제러미 리프킨, 장하준, 케이트 피킷을 비롯한 세계의 손꼽히는 석학들과 코로나 시대와 인류가 나아갈 길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가 여러 학자와 인터뷰를 하다 보니 각 인터뷰가 그리 길지는 않다. 그렇지만 석학들의 말엔 힘이 실려 있다. 간결하지만 묵직하다.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다.

책 제목인 <오늘부터의 세계>. ‘오늘부터의 세계=코로나19 이후의 세계’이겠거니 생각하며 책을 샀다.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석학들은 작금의 사태를 코로나19에 국한해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코로나19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할 뿐 원인은 아니다. 원인은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이 제공했다.’ 인터뷰에 응한 석학들의 공통된 견해다.


과학자들은 유엔에서 재구가 여섯 번째 멸종에 들어섰다고 발표했습니다. 인간이 출현하기 전 4억 5000만 년 동안 다섯 번의 멸종이 있었습니다. 때마다 빠르게 대규모로 진행됐어요. 새 생명들이 생기기까지 1000만 년이 걸렸고요. 인간은 머지않아 멸종할 것이고, 10년 안에 지구의 생물종 절반이 사라진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왔습니다.

제러미 리프킨-화석연료 없는 문명이 가능한가, 원문 23쪽

학자들은 메르스, 에볼라, 지카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창궐도 무분별한 개발과 생태계 파괴로 인해 숲속 생물들이 인간의 주거지역으로 등 떠밀려 내려오며 일어난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서라도 자연과 공생하는 삶의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의 성장 위주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 표준을 고민해야 한다는 학자들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성장을 안 해도 제도를 잘 바꾸고 복지를 잘하면 국민 생활의 질은 올라갈 수 있어요. 옛날에는 밥 먹고 사는 게 중요하니까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성장을 더 하자’라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단계가 아니잖아요. 국민 소득 3만 달러 나라에서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게 뭔가’를 생각해 봐야죠. 과연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느냐’에 대해서 제대로 얘기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어요.

장하준-왜 우리는 마이너스 성장을 두려워하는가, 원문 112쪽

경제적 박탈과 소수자 지위는 두 가지 방식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연결됩니다. 첫째는 앞서 언급했듯이 건강 상태가 사회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가난하고 비주류인 소수자일 경우 기저 질환을 앓는 인구가 더 많아 위중해지거나 사망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요. 둘째는 이들의 경우 주거 환경이 취약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케이트 피킷-우리는 질병과 죽음 앞에 평등한가, 원문 155쪽


사회의 불평등과 불안이 우리의 사회생활과 행복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는 원인이라면 이것도 숨 쉬는 공기만큼 정치인과 대중의 관심을 받아야 합니다.

케이트 피킷-우리는 질병과 죽음 앞에 평등한가, 원문 160쪽


작년, 그러니까 2020년 이 맘 때 쯤 돌이켜보면 우린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로 무척 예민해져있었다. 앞다투어 KF94 마스크를 구입했고, 마스크 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지하철 안 인파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공포심의 시작은 중국의 언론보도 영상이었다. 중국의 대도시는 텅텅 비었고, 길가에 나다니던 사람이 픽픽 쓰러졌다. 사람들은 집에 갇혔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건강을 잃을 것은 분명해보이고, 어쩌면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내가 유지해온 이 삶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공포는 스트레스가 되어 마음을 짓눌렀고, 스트레스와 두려움은 서서히 증오로 변모했다.


사태는 나아지기는커녕 심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은 사람을 보거나 종교시설에서 집단감염이 생겼다는 뉴스를 접하면 화가 치밀었다. 주로 ‘시국이 이런데 왜 저렇게 남을 배려하지 못할까’라는 답답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특정 대상을 향한 증오심이 섞여있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한편 요양원, 고시원, 사우나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는 마음이 늘 무거웠다. 그저 그곳에 있고 싶어서 있다가 코로나에 감염된 것이 아니다. 보호자가 돌봐주기 힘든 환경, 온전히 독립된 나만의 공간을 갖기 힘든 형편, 고된 노동을 마친 뒤 꼭 사우나에 들러야하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있다. 고시원에서 살아본 적이 있기에, 요즘 같은 시기에 고시원에서 살면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할지 생각만 해도 눈앞이 아찔해진다. 이밖에도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격차를 몸소 체감한 경험은 더 있다. 차마 다 글로 옮기지는 못하겠다.


저는 평론가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과 자주 토론을 했는데요. 그가 9.11 때 이런 비평을 했습니다. “나는 내 옆에 테러리스트가 있을까 봐 무서워요. 정부가 확인하도록 권한을 줄래요.” 지금은 이렇죠. “나는 내 옆에 코로나19에 걸린 사람이 있을까 봐 무서워요. 정부가 확인하도록 권한을 줄래요.” 그 결과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새로운 불가촉천민이 탄생했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무섭다는 이유로 서로를 증오합니다. 우리는 이 바이러스가 1퍼센트의 치사율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중략) 바이러스는 적이 아니에요. 바이러스를 죽일 수도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는 결과만을 만들 겁니다. 타인이 없으면 나도 살아남을 수 없어요. 이 두려움의 문화야말로 지금 가장 거대한 바이러스입니다.

반다나 시바-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 원문 209쪽

그럼에도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을 때 마음이 마냥 무겁지만은 않았던 이유는 무수히 많은 변화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에 매몰된다는 것. 그 시기를 지나고 되돌아보면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기 마련이다. 내 경우엔 ‘나’를 잃고 취업에 쫓길 때가 그랬고 코로나에 쫓긴 2020년이 그랬다. ‘2020년은 코로나가 삼킨 한 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다 읽고서 비로소 생각이 미쳤다. ‘나의 증오심과 두려움이 삼켜버린 한 해’는 아니었을까. 나를,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고 여러 가능성을 그려보는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앞에는 이미 충분히 많은 선택지들이 놓여 있다. 다만 정치적 선택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의 정치 대리인들은 외양간에 메인 소와 같다. 여물을 만들어 입에 넣어줘야 마지못해 씹어 삼킨다. 내일의 안전을 위한 선택은 결국 우리 손에 있다. 촛불을 들었던 피곤한 손을 끊임없이 혹사할 수밖에 없는 정치 구조다. 그런데 어쩌랴. 다행인 건 주인들의 고생한 만큼 조금이나마 변할 수 있는 질서라는 것 아닐까? 오늘 당신의 선택에 희망을 걸고 싶다.

안희경, 원문 223쪽




우리 앞에는 이미 충분히 많은 선택지들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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