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피엔스, 새로운 도약 - 대한민국 대표 석학 8인이 신인류의 지표를 제시하다 코로나 사피엔스
김누리 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온 나라가 난생처음 접하는 바이러스에 벌벌 떨었고,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선진국이라 여겼던 나라들의 일상이 멈추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다른 나라에 견주어 일찌감치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접한 한국은 작년 이맘때 큰 공포와 혼란 속에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 정부는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잘 억제했고, 대대적인 셧다운에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팬데믹 상황을 비교적 잘 헤쳐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온 나라가 '올스톱' 해야 했던 미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다. 한국이 순항만 해온 것은 아니다. 일자리를 잃거나 비자발적 휴직 또는 수입 감소로 빈곤한 상황에 내몰린 평범한 사람들. 상대적으로 열악한 노동 환경에 내몰린 사람들.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 듯 보였지만 조금씩 곪아온 사회 문제들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젠 코로나19와 함께하는 일상이 제법 익숙하다. 외출할 때 마스크를 찾는 건 당연한 일이 되었고, 오히려 집 밖에서 마스크를 벗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마주치면 머릿속에 '앗!' 하고 느낌표가 떠오르니 말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 사회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은연중에 느끼고 있다. '우리의 어디가, 어떻게 이상한 걸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한 번쯤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은 이유다.

<코로나 사피엔스, 새로운 도약>은 방송사 CBS의 '지식GSEEK콘서트' 시리즈 중 여덟 개 강연을 보강해 엮은 책이다.

독일어, 경제, 환경, 외교, 트렌드, 의료 분야의 전문가가 저마다의 관점으로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한다.

<오늘부터의 세계>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던 2020년 7월에 출간된 책이다.

<오늘부터의 세계>가 '코로나 시대를 맞이해 인류를 돌아보는 책'이었다면

<코로나 사피엔스, 새로운 도약> '코로나19를 발판삼아 더 나은 미래를 그려보는 책'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은 공평하지 않았고,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하고 가속화했어요. 코로나19가 특정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에게 더욱 위험하다고 하는데, 그에 못지않게 위험한 사람은 불평등 구조의 최하단에 있는 사람들이었죠. 소규모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등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 길이 막막한 그들 역시 '빈곤'이라는 치명적인 기저질환을 피할 길이 없었던 겁니다.

(1장 '라이피즘, 신인류의 이념', 김누리, 원문 31쪽)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본 적 있을 거다. 불평등 구조의 최하단에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하다는 사실 말이다.

1장에서 김누리는 자본주의를 '자전거 페달을 멈추면 넘어지는 것과 같이, 생산을 멈추면 쓰러지는 체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개인 차원에서는 인간의 삶life, 사회 차원에서는 개인의 생존life, 생태 차원에서는 인간의 생명life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라이피즘lifism을 제안한다.

장하준은 앞으로의 복지 정책이 '선별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선별적 복지는 행정비용도 많이 들고 정치적으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복지와 성장은 상충하지 않는다. 복지가 강할수록 새로운 성장동력을 잘 만들어낼 수 있다'는 부연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기술 혁신이 가속화하고 평생직장 개념도 없어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이 전직하기 쉽고, 구직하기 쉽고, 재교육도 받기 쉬운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경제가 잘 적응하고 발전할 수 있어요. 자꾸 보수적으로 생각해서 "옛날식으로 노동권도 없이 복지도 없이 살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럴 거면 지난 70년 동안 땀 흘리며 경제 개발을 왜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2장 새로운 성장동력, 장하준, 원문 60쪽)

최배근기본소득 이야기도 낯설지만 흥미로웠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이전부터 꾸준히 있었다지만 '기본소득이 있으면 괜찮을 것도 같은데?'라는 생각을 사람들이 해보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전 국민 재난기본소득' 지급일 것이다.

요즘 들어 자주 언급되고는 있지만 기본소득 이야기는 여전히 낯설고 궁금한 주제다. 각국의 기본소득 실험과 결과,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하는 근거를 차근차근 설명하는 대목에서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중요한 것은 청년들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복지'나 '퍼주기'의 관점이 아닌 '투자'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왜 '투자'인가 하면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만들 수 있어야만 그 사회의 미래도 지속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노동력이나 자본 투입의 증가를 통해 성장을 만들 수 있는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향후 성장은 생산성, 즉 혁신의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4장 혁신의 조건, 최배근, 원문 125쪽)


한편, 김준형은 지금 세계가 '팍스아메리카나'가 몰락하고 '뉴노멀' 상황에 들어섰다며, 새로운 질서 속에서 한국이 어떤 자세를 취하면 좋을지 고민한다.


코로나19 이후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보았을 겁니다. 뉴노멀은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 등장합니다. 아직 새로운 질서가 명확하게 확립되기 이전이므로 뉴노멀의 기대에는 불안정성, 불평등성, 불확실성 등의 비정상적 현상이 지속되죠. (중략)

국제질서가 코로나19로 인해 본격적인 '뉴노멀' 상황으로 진입한 것입니다.

(6장 탈세계화의 가속, 김준형, 원문 173쪽)

사실 우리는 이미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어요. (중략) 이제 언제라도 새로운 팬데믹이 올 수 있겠구나, 하는 경각심을 갖게 됐죠. 그런 점에서는 코로나19가 좋은 기회를 제공한 것입니다. 이제라도 의료체계와 사회안전망의 취약점을 개선해서 또 다른 감염병의 대유행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해요.

(8장 위드 코로나 시대, 이재갑, 원문 235쪽)


'백신만 맞으면 코로나19는 종식되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앞으로 인플루엔자처럼 우리의 일상에 머무르거나, 새로운 바이러스가 창궐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인 것 같다. 이재갑도 여기에 의견을 보탰다. 그러니까, '백신만 맞으면 문제 해결!'이 아니라는 거다. 코로나19 시대를 지나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모색해야 한다.

이 책에는 여러 분야의 이야기가 실렸지만 유독 경제 이야기의 비중이 크다.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가 조금 더 골고루 실렸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해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경제 이야기 비중이 높은 건 그만큼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게 경제 구조의 변화이기 때문이 아닐까. 코로나19 팬데믹을 통과해오면서 '잘 사는 사람은 계속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점점 더 척박한 환경으로 내몰리더라. 그러면 사회 전체가 위험해지더라'라는 공통된 문제의식이 우리 모두에게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이 책을 엮은 CBS 박재철 PD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민주화 시대'나 'IMF 시대'처럼 역사는 지금을 '코로나19 시대'로 명명할 것이라고.

코로나19는 기존 제도와 가치관에도 치명적인 바이러스여서, 근본적이며 전방위적인 진단과 처방을 요구하는 사태를 우리 앞에 펼쳐놓았다고.

코로나19 팬데믹을 1년째 경험하고 있다.

이젠 익숙해져 버린 코로나19 속에서, 이제는 더 나은 가치와 가치를 담아낼 틀을 다 함께 치열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