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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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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이 소설에서 내가 꽂힌 대목은 별것 아닌 이 단어였다. 다 죽어가던 개운죽의 대나무에서 풀만 떼어내 2m 대형 화초로 키워내는가 하면 선물 받은 꽃다발에 꽂힌 나뭇가지를 뿌리내린 다음 흙에 심어 3년을 어르고 달래며 키워본, 나름 생명 보존(?)에 도가 튼 식집사라고 자부… 아무튼 대온실을 주제로 한 이야기가 막연히 궁금했다.


주인공 영두는 대온실 수리 보고서 작성을 맡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창경궁에 있는 대온실은 일제 강점기에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격하되어 훼손되는 과정에서 세워졌다. 창경궁이 있는 동네는 영두가 어릴 적 한때를 보냈던 곳, 원서동이다. 영두는 망설인다. 학창 시절 원서동에서 잠시 하숙 생활을 했지만 좋지 못한 기억을 잔뜩 안은 채 고향인 강화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영두는 보고서 작성을 수락하고, 원서동에 겹겹이 포개어진 채 잠들어있던 이야기가 하나둘 두둥실 떠오른다. 대온실을 만든 이들, 원서동에서 일제 강점기를 보낸 하숙집 주인 할머니, 원서동에서 한때를 보낸 어린 영두, 수리 보고서를 쓰는 오늘날 영두의 이야기가.


작가의 필력에 빠져들어 홀린 듯 읽었다. 읽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음에도 이야기의 3분의 1을 남겨둔 지점부터 마지막까지는 앉은 자리에서 엉덩이 한 번 떼지 않고 단숨에 읽었다.


누군가에겐 폭파해야 마땅한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누군가에겐 좋든 싫든 눈감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기억의 장소일 수 있다. 대온실이 지어진 사연, 하숙집 할머니와 친동생의 사연, 주인공 영두가 품은 사연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피해국과 가해국이 분명한 제국주의 시대의 험한 폭풍우 속에서도 개개인은 결국 별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등장인물들의 숨결을 통해 체감할 수 있기 때문 아닐는지.


‘사연(事緣)’이란 ‘복잡하게 얽힌 일의 앞뒤 사정이나 내용’이라는 뜻이다. 제국주의의 피해국과 가해국의 이야기는 기억해야 마땅하다. 가해국은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비극적인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 다만 시대의 풍랑 속에서 급하게 매장된 개개인의 복잡하게 얼키고설킨 사연을 살피는 건 온당한 일 아닐까.


이 소설이 드라마화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디 작가의 마음이 드라마에도 잘 묻어나기를.


📖 p.168

물론 기록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모든 일에는 정황이 중요하고 특히 식민지 초입이란 여러 이해와 계산이 얽혀 진실의 행방이 더 묘연해지니까.


📖 p.209

장과장 말처럼 그냥 지나가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사람들이 원하는 건 사면이 유리로 된 온실의 아름다움이지 그 아래 무엇이 있었는가가 아닐 테니까. 땅 밑은 수리와 복원의 대상도 아니니까. 하지만 질서에는 어긋날 것이다. 그렇게 묻은 상태로는 전체를 알기란 어려울 것이다. 공동과 침하가 계속되겠지. 개인적 상처들이 그렇듯이. 그렇게 한쪽을 묻어버린다면 허술한 수리를 한 것이 아닐까.


📖 작가의 말 <이해하는, 다만 이해하는>

“작업을 하는 동안 어떤 소설보다 ‘이해한다’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는 걸 깨달았다. 도서관과 공유 오피스와 카페를 전전하며 자료들을 읽다가 마침내 이해에 다다르면 슬픔이 차올라 자리를 박차고 나와 걷던 시간들이 이 건조한 목록에 담겨 있다. 내가 한 이해는 깨진 유리 파편처럼 그 시절을 자그맣게 비출 뿐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한참을 걸어야 감정이 식을 만큼 너무나 생생한 것이었다. 나는 자주 기도했다.

한때는 근대의 가장 화려한 건축물로,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대중적 야앵의 배경지로, 역사 청산의 대상으로 여러 번 의의를 달리한 끝에 잔존한 창경궁 대온실은 어쩌면 ‘생존자’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건축물과 함께 그 시절 존재들이 모두 정당히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신에게도 이해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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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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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

어느 날 아침 문득, 정말이지 맹세코 아무런 계시나 암시도 없었는데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책 첫 페이지부터 주인공의 포효가 울려 퍼진다.

주인공은 안진진. 자신의 삶을 두고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고 진단한 주인공이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의 인생을 탐구하며 살겠다 부르짖는다.


안진진의 아버지는 가정을 내팽개치고 밖으로 나도는 형편없는 인간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아들이 친 사고를 수습하느라 아등바등하며 주름살을 더해간다. 안진진의 이모는 어머니와 일란성 쌍둥이다. 외모는 판박이지만 가정을 살뜰히 챙기는 이모부 덕에 온실 속 화초처럼 안온한 삶을 영위한다.

안진진에겐 남자가 둘 있다. 모든 걸 계획대로 진행해야 성이 풀리는 나영규와, 세상 물정과 계획성은 밥 말아먹고 훌쩍 꽃 사진을 찍으러 떠나기 일쑤인 김장우다.


똑같이 생긴 엄마와 이모는 이제는 너무나 다르다. 행복의 기준조차도. 누구에겐 불행스러운 일이 다른 이에겐 차라리 행복이고, 누구에겐 행복으로 여겨질 법한 일이 다른 이에겐 한없는 불행이다.


하물며 쌍둥이도 이럴진대.

저마다 다르게 나고 자란 세상 사람들은 오죽하겠나.


“오! 그건 옳지 않아!”

이모의 딸 주리가 진진을 향해 내뱉은 이 대사를 우리는 매일 옆구리에 끼고 산다. 하지만 진진의 말처럼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누군가에겐 옳은 일이 누군가에겐 한없는 불행일 수도 있는 것을.


출간된 지 27년 된 작품이 꾸준히 독자의 선택을 받는 건 온전히 작가의 통찰과 아름다운 문장 덕이다.


10년 뒤에 꼭 다시 읽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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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예보: 호명사회 시대예보
송길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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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이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주가 되는 직업이다. 여기에서 드는 의문 하나. 무엇을 ()’로 보아야 하는가.

나에게 쏠쏠한 돈을 가져다주는 일이 내 인생의 일까, 돈은 몇 푼 되지 않아도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일이 일까.

 

세간에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일, 소위 벌어먹고 사는 일본업이라 일컫는 듯하다. 아쉽지만 나의 본업도 정확히 여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물론 일의 의미를 찾는다면 이것저것 나열할 수야 있겠지만. 본업으로 삼고자 하는 일은 따로 있고, 지금은 땅을 단단히 다져가는 과정으로 본다. 느릴지언정 조급해하며 서두르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여전히 가끔은 본업이라는 말의 울림에 흔들린다. 그런 와중에 이 책에서 본진이라는 단어를 만났다.

 

전작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에서 억압적인 기제로 유지되던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 개인이 상호 네트워크의 힘으로 자립하는 새로운 개인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렸던 저자는 후속작 시대예보: 호명사회에서 자신이 한 일을 책임지고 온전히 자신이 한 일에 보상을 받는 새로운 시대인 호명사회가 임박했다고 말한다.

처음 두 챕터에서는 우리가 몸담은 사회가 이제는 조직의 이름 뒤에 숨을 수 없고, 그럴 필요조차 없게 변모해 가고 있는 상황을 사회 전반의 현상을 통해 진단한다.

나중 두 챕터에서는 조직은 작아지고 사람은 커지는 호명사회의 문턱에서 장착해야 할 마음가짐을 이야기한다. 외부의 기준에 맞춰 시험 보고 평가받던 시대를 뒤로 하고, 이제는 자신의 호오(好惡)를 먼저 살펴 본진의 깊이감을 더해야 함을, 새로운 도구를 활용해 영역을 확장해 가야 함을 말이다.

 

저자가 말하는 호명사회란 조직 안에 가려진(혹은 조직 뒤로 숨는) 개인이 속한 조직이 세상을 움직이는 사회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활동하는 개인이 세상의 흐름을 이끄는 사회다.

 

특히 흥미로웠던 대목은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꽤 정밀한 렌즈로 관찰해 진단한 대목들이었다. 무한 탐색에서 비롯한 정보 과잉과 그로 인한 분석 마비의 무한 루프. 어떻게 하면 타고난 자질을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어떻게 하면 못하는 것을 잘하게 만들지를 고민하며 개인을 채근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 ‘이거 배우면 돈 벌 수 있어요라며 막다른 곳에 선 이들을 손짓하는 각양각색의 학원들.

희미하게 냄새는 나는데 뭐라 콕 집어서 말하기 애매했던 것들을 , 보세요. 이겁니다하고 핀셋으로 집어서 보여주니 통쾌하기까지 했다.

 

에게 귀 기울이고 집중하며 본진 다져가기.

걱정하고 두려워할 시간에 행동으로 옮겨보기.

세상으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어 나에게로 향하기.

 

이런 연유로 학창 시절 빠져 듣던 밴드음악을 보물 상자 열어보듯 조심스레 꺼내 들어보는 요즘이다.


 

p.9 [예보호명사회]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려 한 핵개인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안정적인 삶을 찾고자 하나어느덧 같은 목표를 지향하며 경쟁의 인플레이션을 겪습니다결국 자신의 길을 찾으려 한 개인은 핵개인으로 거듭납니다그 후 자립한 핵개인들이 대등한 연대를 통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호명사회가 도래함을 예보합니다.


p.134 [2장 상호 경쟁의 인플레이션 / ‘이 꿈은 내 꿈이 아니었다’]

그런데 역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서 완전한 본업이 아닌 취미나 부업의 영역이라고 해도 타인으로부터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만큼의 조예를 쌓을 수 있다면우리는 이 영역을 본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본진이란 뚜렷한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시간을 투자하여 경험을 쌓아가는 분야를 의미합니다.


 p.292 [4장 선택의 연대 출발선에 선 나의 이름’]

정보의 과잉으로 지금 당장 한 걸음을 떼지 못할 때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저 멀리 먼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세상에 불릴 나의 이름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조직과 관계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는 누구인가 정의하는 것이 출발선에 선 나의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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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우드락 키트 : 내가 만든 게
블루래빗 편집부 지음 /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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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놀러갈 때 쓰려고 샀는데, 너무 잘 놀았어요ㅋㅋㅋㅋ 아주 귀욥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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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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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건축가 뤼미에르 클레제는 파리 시테섬에 자신이 찾던 조건의 저택이 매물로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부동산으로 향한다. 그런데 좀 미심쩍다. 비싸기로 유명한 파리 중심지에 이런 헐값에 매물이 나오다니. 우여곡절 끝에 그는 저택의 소유주인 피터 왈처가 머무는 요양병원에 이른다. 그리고 받아 든 피터 왈처의 서한.


“왜 4월 15일인가? 그리고 왜 당신이어야 하는가?”


요양병원의 이름은 ‘4월 15일의 비밀’.

왜 하필 4월 15일일까?

이 요양병원은 파리의 고급 저택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중세와 현대가 뒤섞인 오묘한 건물의 신비함에 압도당한 뤼미에르는 건축가로서의 순수한 호기심에 이끌려 이곳의 비밀을 알아내리라 마음먹는다.


*


최근에 번역한 책이 공간과 건축에 관한 이야기였다.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한국어로 옮기면서,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보이지 않는 집》이라는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모를 책이 자꾸만 떠올랐다.


책에 적힌 글자는 변함없음에도 삶의 어느 단계에서 펼쳐보느냐에 따라 감상이 다른 게 독서의 묘미. 워낙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그때와 지금의 내 감상이 어떻게 다를지도 궁금했고, ‘추리소설 같은 환상적인 에세이’라는 감상 외에 작품에 대해 남아있는 정보가 없어서 다시 새기고 싶기도 했다.


처음 《보이지 않는 집》이라는 제목으로 읽었던 게 2015년. 《빛이 이끄는 곳으로》라는 제목으로 다시 읽은 게 2024년. 9년 만이다. 손에 잡힐 듯 말 듯 아련했던 제목은 훨씬 직관적으로 바꿔 달렸는데, 개인적으론 새로운 제목에서 작품의 여러 장면이 떠올라 더 마음에 든다.


저자는 건축가다. 책 속 소개에 따르면 ‘기억’이라는 주제로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면서 건축 설계 일을 하고 있다고. 빛을 따라가는 책의 스토리도 영화를 보듯 환상적인데, 8년 동안 직접 모은 ‘집’에 얽힌 많은 이의 사연을 하나의 이야기로 녹여낸 소설이라는 점을 알고 어느 한 분야에 열정을 쏟는 사람의 모습은 정말이지 경이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뤼미에르 클레제도, 프랑스와 왈처와 피터 왈처도, 이 이야기를 쓴 백희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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