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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예보: 호명사회
송길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9월
평점 :
‘본업’이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주가 되는 직업’이다. 여기에서 드는 의문 하나. 무엇을 ‘주(主)’로 보아야 하는가.
나에게 쏠쏠한 돈을 가져다주는 일이 내 인생의 ‘주’일까, 돈은 몇 푼 되지 않아도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일이 ‘주’일까.
세간에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일, 소위 ‘벌어먹고 사는 일’을 ‘본업’이라 일컫는 듯하다. 아쉽지만 나의 본업도 정확히 여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물론 일의 의미를 찾는다면 이것저것 나열할 수야 있겠지만. 본업으로 삼고자 하는 일은 따로 있고, 지금은 땅을 단단히 다져가는 과정으로 본다. 느릴지언정 조급해하며 서두르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여전히 가끔은 ‘본업’이라는 말의 울림에 흔들린다. 그런 와중에 이 책에서 ‘본진’이라는 단어를 만났다.
전작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에서 ‘억압적인 기제로 유지되던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 개인이 상호 네트워크의 힘으로 자립하는 새로운 개인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렸던 저자는 후속작 《시대예보: 호명사회》에서 ‘자신이 한 일을 책임지고 온전히 자신이 한 일에 보상을 받는 새로운 시대’인 호명사회가 임박했다고 말한다.
처음 두 챕터에서는 우리가 몸담은 사회가 이제는 조직의 이름 뒤에 숨을 수 없고, 그럴 필요조차 없게 변모해 가고 있는 상황을 사회 전반의 현상을 통해 진단한다.
나중 두 챕터에서는 조직은 작아지고 사람은 커지는 호명사회의 문턱에서 장착해야 할 마음가짐을 이야기한다. 외부의 기준에 맞춰 시험 보고 평가받던 시대를 뒤로 하고, 이제는 자신의 호오(好惡)를 먼저 살펴 ‘본진’의 깊이감을 더해야 함을, 새로운 도구를 활용해 영역을 확장해 가야 함을 말이다.
저자가 말하는 ‘호명사회’란 조직 안에 가려진(혹은 조직 뒤로 숨는) 개인이 속한 조직이 세상을 움직이는 사회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활동하는 개인이 세상의 흐름을 이끄는 사회다.
특히 흥미로웠던 대목은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꽤 정밀한 렌즈로 관찰해 진단한 대목들이었다. 무한 탐색에서 비롯한 정보 과잉과 그로 인한 분석 마비의 무한 루프. 어떻게 하면 타고난 자질을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어떻게 하면 못하는 것을 잘하게 만들지를 고민하며 개인을 채근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 ‘이거 배우면 돈 벌 수 있어요’라며 막다른 곳에 선 이들을 손짓하는 각양각색의 학원들.
희미하게 냄새는 나는데 뭐라 콕 집어서 말하기 애매했던 것들을 ‘자, 보세요. 이겁니다’ 하고 핀셋으로 집어서 보여주니 통쾌하기까지 했다.
‘나’에게 귀 기울이고 집중하며 본진 다져가기.
걱정하고 두려워할 시간에 행동으로 옮겨보기.
세상으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어 나에게로 향하기.
이런 연유로 학창 시절 빠져 듣던 밴드음악을 보물 상자 열어보듯 조심스레 꺼내 들어보는 요즘이다.
p.9 [예보: 호명사회]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려 한 핵개인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안정적인 삶을 찾고자 하나, 어느덧 같은 목표를 지향하며 경쟁의 인플레이션을 겪습니다. 결국 자신의 길을 찾으려 한 개인은 핵개인으로 거듭납니다. 그 후 자립한 핵개인들이 대등한 연대를 통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호명사회가 도래함을 예보합니다.
p.134 [제2장 상호 경쟁의 인플레이션 / ‘이 꿈은 내 꿈이 아니었다’]
그런데 역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서 완전한 본업이 아닌 취미나 부업의 영역이라고 해도 타인으로부터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만큼의 조예를 쌓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영역을 ‘본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본진이란 뚜렷한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시간을 투자하여 경험을 쌓아가는 분야를 의미합니다.
p.292 [제4장 선택의 연대 / 출발선에 선 ‘나의 이름’]
정보의 과잉으로 지금 당장 한 걸음을 떼지 못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저 멀리 먼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 그다음은 ‘세상에 불릴 나의 이름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 조직과 관계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는 누구인가 정의하는 것이 출발선에 선 ‘나의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