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 나영석에서 김태호까지 예능PD 6인에게 배우는 창의적으로 일하는 법
정덕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가족끼리 밥먹을 때
주말 예능 프로그램을 본다
응답하라 시리즈랑 꽃보다할배와 누나를 보고 1박2일이랑 런닝맨과 우리 결혼했어요, 개그콘서트 ㅡ
잠들기 전에는 라디오스타와 비정상회담도 빼놓을 수 없다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는 예능 프로그램 ᆞᆞ
나를 웃게 해줘서 좋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희극과 비극에 대해서 말했던가
일상생활에서 텔레비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큰 것 같다

재미를 주면서도 뭔가 내 인생을 되돌아볼수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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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사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드레스를 만들었습니다.

헌데 엄마는 드레스를 공작부인에게 갖다줄 수 없을 만큼 피곤해요.

하지만 공작부인 댁의 파티는 바로 오늘 밤입니다.

 

아이린은 엄마를 대신해서 눈보라를 헤치고 드레스를 공작부인 댁으로 가지고 갑니다.

밖은 춥고, 눈보라가 몰아치고, 바람이 휘돌아치고, 점점 깜깜해집니다.

아이린은 저 길쭉한 옷 상자를 들고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바람이 말합니다. '집으로 돌아가.... 집으로 돌아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어찌 이런 일이...

바람 때문에 그만 아이린은 상자를 놓쳐 버리고,

상자 속의 드레스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어요.

 

이제 아이린은 어떡하나요?

아이린은 빈 상자라도 들고 가서 엄마를 대신해서 이야기를 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아이린은 너무나 힘이 들고 지쳤습니다.

눈 속에 파묻히기까지 하지요. (이 대목을 읽을 때면 아이이 눈에는 눈물이 반짝 맺힙니다.)

'아... 이렇게 끝나는 게 낫겠어. 너무 힘들어...'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죠.

'그럼 이제 다시는 엄마를 못 보는 거야?'

그럴 순 없어!

 

아이린은 다시 힘을 내서 눈 속을 헤쳐나옵니다.

그때 멀리서 불빛이 보입니다. 공작부인 댁이 가까워 온 것이에요.

아이린은 어떻게 머리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옷 상자를 타고 쭈르르 미끄러져 내려옵니다.

 

그리고 아이린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지요.

공작부인 댁 나무에 바람이 엄마가 만드신 예쁜 드레스를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아이린은 드레스를 들고 공작부인 댁 문을 두드립니다.

 

다음 장면의 그림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힘든 심부름을 마친 어엿한 아이에게 따스한 불가에서 맛난 음식이 주어지거든요.

아. 그런 게 행복 아니겠습니까...

 

공작부인 댁에서는 멋진 파티가 열립니다.

공작부인은 엄마가 만드신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있어요.

아이린도 여러 신사분들 틈에서 춤을 춥니다.

 

그 다음 이야기는 안 들어도 뻔하죠.

 

-------

 

윌리엄 스타이그는 아이의 마음을 참으로 잘 알아주면서

유머와 위트로 원형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자바자바 정글>이라는 작품 역시 이 이야기의 메시지와 비슷합니다.

 

힘든 일을 해낸 아이에게 진심으로 보내는 박수!

 

<자바자바 정글>이 남자 아이 버전이라면,

<용감한 아이린>은 여자 아이 버전이라고 할까요?

 

저는 작가가 선택한 설정이 참 마음에 듭니다.

 

아이린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는 재단사입니다.

부자도 아니고, 귀족도 아닙니다.

하지만 아주 예쁜 드레스를 만드는 사람이죠.

그 엄마는 지금 아픕니다.

그래서 아이린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드레스를 배달하는 임무를 자청합니다.

 

엄마를 도우려는 기특한 아이 아이린은

엄마를 자랑스러워 합니다.

 

또 아이린은 혼자 역경을 겪어냅니다.

그것은 눈보라, 바람, 어두움, 넘어짐, 포기하고 싶은 마음 들입니다.

그 속에서 아이린을 다시 일어나게 하는 것은?

바로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작가는 역경을 겪어낸 아이에게 이렇게 박수를 보냅니다.  

반짝이고 흥겹고 맛있고 즐거운 파티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님과 따로 독립된 아이린이 경험할 수 있는 잔치의 공간이지요.

 

아이린이 의사 선생님과 함께 집에 도착했을 때,

공작부인의 편지를 들고 옵니다.

아이린이 성숙했다는 영수증 같은 것이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죠.

하물며 아이들이야... 

사랑과 칭찬으로 힘든 일을 스스로 해 내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저는 맛있는 밥을 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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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각자의 각자인 것

 

  말썽꾸러기 어린이가 있다. 어른인 작가는 그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른이 보기에 이 아이는 6학년도 되었으니, 이제는 말썽 부리지 말고, 철 좀 들었으면 좋겠다. 성질이 급한 엄마는 이 아이의 말썽을 마주칠 때마다 매번 잔소리를 할 것이다. 혼을 내보고 때려도 보다가 스스로 지칠지 모른다. 사려 깊은 할아버지는 이 아이를 관찰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생각을 헤아려 때때로 던지는 한마디 말로 아이와 공감을 나눌 수 있다. 과묵한 아버지는 아이가 스스로 철이 들 때까지 침묵으로 기다릴지도 모른다. 아이보다 조금 크다고 느끼는 누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이와 대화를 나눌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줄곧 살핀 것은, 저자 야마나카 히사시는 <내가 나인 것>이라는 멋들어진 제목의 이야기를 통해, '어린이 독자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쓴 이야기인 동화는 아이들과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어린이를 위한 문학 작품에서 때때로 재미와 감동 속에 어쩌면 어른의 잔소리를 담는 것을 아닐까? 그것이 부모됨의 발로이거나 교육적 의도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작가가 어린이인 독자를 어른과 마찬가지로 독립된 주체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그 태도 면에서 어린이의 주체적인 자아를 존중하고, 마주보며 이야기를 건네는 듯했다. '내가 나인 것'이란 자기 고유의 독립된 정체성을 말하며, 우리 각자는 각자의 정체성을 지닌다. 개인의 그것이 묵살될 때 고민과 갈등이 생기며, 그것이 사회와 세계 속에서 억압당할 때 비리와 불의가 생긴다. 이 작품의 주인공 히데카즈는 이야기 속에서 가출과 모험과 갈등 속에서 스스로 그것을 찾아나간다.  

 

1. 말썽꾸러기 주인공 히데카즈

 

  '가장 뛰어난 아이'라는 이름의 히라타 히데카즈는 늘 엄마한테 혼나는 아이다. 일일이 잔소리를 해 대는 엄마 앞에서 히데카즈는 언제나 작은따옴표 안에 딴 생각을 하고 있다. 늘 집에 들어가기 싫고, 없어져 버리고 싶고, 집은 폭삭 내려앉았으면 좋겠다. 고자질쟁이 동생 때문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까지도 잔소리 세례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히데카즈는 생각한다. '나는 야단맞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 워낙 입이 싸고 진지함이 없어서 가출을 하겠다고 해도 놀라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얼마나 생생한 말썽꾸러기 캐릭터인지... 이런 아이를 감당하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고충에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주의 산만하고 성적 나쁘고 자신에 대한 진지한 생각이 없이 몸만 커다란 아가다. 이 아이에 대해 처음 알게 되면서 의문이 생겼다. 작가는 이 대책없는 말썽쟁이에게 어떻게 충고를 할 것인가. 뭐라 말할 것인가. 
  그런데 읽다 보니 히데카즈는 어른의 눈을 가리고 앙큼을 떠는 여동생 미도리에 비해, 솔직하고 어수룩한 녀석이다. 그래서 히데카즈는 가출을 하겠다는 생각도 참지 못하고 동생에게 말해 버리고, 수다쟁이 동생을 통해 히데카즈의 가출은 사람들 사이에 '양치기 소년 이야기'같은 농담이 되어 버린다. 결국 히데카즈는 체면 때문에 실제로 가출을 하게 된다.

 

2. 자아를 찾는 모험 - 가출

 

  히데카즈는 가출을 통해 잔소리를 들어야 뭘 하는 집과 학교를 벗어나, 날것 그대로의 세계를 만난다. 이 모험에서 히데카즈는 두 가지의 외부 세계를 경험한다. 가출 소년에게 호의적인 세계와 비리와 악으로 가득 찬 세계이다. 호의적인 쪽에서 히데카즈는 엄마 없는 가정에서 사는 성숙한 여자아이 나츠요를 만나고, 다케다 신겐의 보물에 대해 알고 있는 무뚝뚝한 할아버지를 만난다. 그곳에서 히데카즈는 스스로 일하고, 밥하고, 공부하는 나츠요와 비교하여 의존적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악의적인 쪽에서 히데카즈는 사람을 차로 치고 도망치는 마루진의 마사나오를 목격한다. 그는 엄마를 만나고 싶어하는 나츠요에게 거짓 엄마를 데려다 주고, 할아버지를 죽게 한 뒤 할아버지의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 그것은 명백한 악이다. 히데카즈는 이 악에 맞서서 선한 나츠요를 돕고 악을 물리쳐야 함을 배우게 된다. 
  히데카즈의 가출은 그리하여 이야기로서는 흥미진진한 모험이며, 주제 면에서는 자아를 찾는 통과의례가 된다. 그런데 작가는 여기에서 '말썽꾸러기 아이'로 시작된 이야기의 실체를 한층 더 깊이 파고든다.

 

3. 갈등하는 가족과 불의에 찬 사회

 

  히데카즈가 집으로 돌아오자, 의존적이었던 자신이 미처 보지 못했던 '관계의 형태'를 보게 된다. 엄마는 히데카즈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엄마 자신의 의지대로 아이를 움직이려 한다. 그것은 남편에게도, 다른 형제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한 돌아온 탕아, 히데카즈를 데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인사를 시킨다. 그리고 팥빙수를 사주며 가출했던 동안 무엇을 했는지 말하라고 한다. 여동생 마유미를 시켜서 히데카즈를 관찰하게 하고, 결정적으로 나츠요에게 보내는 편지를 빼돌리고, 히데카즈가 하려는 일을 몰래 막아버린다. 
  가출을 통해 성숙한 자아 히데카즈는 엄마의 억압에 저항한다. 그 과정에서 형 마사카즈 역시 엄마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츠요가 편지로 부탁한 엄마건에 대해 용감하게, 때로는 신문팔이소년으로 위장하는 기지를 발휘하여 '나카에 아야'와 마사나오의 속셈을 알아낸다.
  그런데 히데카즈의 엄마는 아들과 나츠요의 편지를 보고, 히데카즈가 나츠요의 일에 끼어든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막으려 한다. 엄마는 어린이인 히데카즈가 현실의 불의와 악에 맞서서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엄마는 어린이 히데카즈를 독립된 인격체로서가 아닌, 자신에게 속한 어린애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이런 행동은 일면 타당성이 있다. 가출했다 돌아온 초등학교 6학년짜리 아이의 엄마라면, 아이가 가출했다 만난 친구와 비밀스런 편지를 주고받으며, 술집여자의 집을 기웃거리는 것을 좋게 보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이런 엄마의 태도가 가진 문제점을 아프게 꼬집는다. 평범하고 당연해 보이는 엄마의 행동은 사실은 위법이며, 인격체에 대한 무시이다. 불의의 현실에 맞서지 말고 상관하지 말라는 엄마의 태도는 사실 두려움 때문이며, 자기 가족만 물질적으로 잘살고자 하는 이기심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학생 운동하는 친구 때문에 덩달아 경찰서에 끌려갔다 온 큰형의 입을 통해 작가는 어머니의 이러한 태도를 정면으로 공격한다. 소시민적인 안락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공부와 출세를 강요하는 어머니의 태도가 부정과 비리로 썩은 사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무관심이며, 본질적으로 '나의 나인 것' 곧 자신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강요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작은형 마사카즈의 사건을 통해 학생의 자율을 인정하지 않는 교사와 마찬가지이며, 큰형 요시카즈를 통해 힘없는 자들을 짓밟는 권력과 마찬가지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4. 내가 나인 것

 

  가출 전 철부지였던 히데카즈는 지진이 나서 집이 폭삭 무너지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곤 했다. 작가는 결국 갈등에 휩싸인 히데카즈의 집을 불태우고, 재만 남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게 한다. 그곳에서 어머니만의 집은 남편과 아이들이 자신의 자아를 찾고, 서로에게 자신을 이해시킬 수 있는 곳으로 다시 출발하게 된다.
  말썽꾸러기 히데카즈의 문제는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니, 부모의 문제, 사회의 문제인 것이었다. 어린이를 부모에게 딸린 존재로 보아, '말썽꾸러기들아, 말썽 부리지 말자'로 머물지 않았다. 작품 속에서 어른들의 세계와 현실의 모순을 어린이에게 솔직히 드러내고, 문제를 깊이 통찰하는 작가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계 속에서 불의의 현실을 타파해나가는 것은 히데카즈의 이야기에서처럼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자신을 직시한다는 것은 히데카즈의 어머니와 같은 대다수의 반성할 줄 모르는 어른들에게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내가 나인 것', '나의 나 됨됨이'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또한 '결국 말썽꾸러기 아이의 문제는 어른들이 말썽이라는 소리구나.' '가족과 사회와 아이를 불행에 빠뜨리는 엄마가 되어서는 안되겠구나.' 등등 굉장한 교훈을 주었다. 하지만 읽는 동안에는 그렇게 한 수 가르쳐줄 줄을 몰랐다. 생생하고 사랑스런 말썽꾸러기 캐릭터, 흥미진진한 모험, 팽팽한 갈등과 현실 인식 등 노련하게 짜여진 재미난 작품이다.
  말썽꾸러기에게 무슨 말을 할까?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이 작품에서 히데카즈라는 인물에 대해 작가가 깊이 - 히데카즈라는 아이는 물론 그 아이를 둘러싼 관계와 사회까지 이해하고 있음을 느꼈다. 아이들에 대한 진실한 이해로 아이들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은 얼마나 멋진 대화인가?   

 

- <내가 나인 것> (야마나카 히사시, 사계절, 2003)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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